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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맥-가게 맥주’에 대한 단상 - 강찬구
강찬구 기자  |  phil62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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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7.31  16:3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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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맥-가게 맥주’는 전주만의 독특한 현상이다. 전주 외에 다른 곳에서는 가맥을 접하지 못했으니 단정지을 일은 아니지만, 어떻든 전주가 가맥 현상의 발상지임에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 나는 전주에서 가맥을 오래 전부터 사랑해 왔고, 지금도 변함없이 사랑하고 있다.

전주의 가맥이 전국적 유명세를 타고 있는 모양이다. 주말이면 전주 유명 가맥집 앞에 늘어선 줄을 보고 놀라곤 한다. 가맥이 무엇이라고 이러는가...? 특별한 가용주도 아니고, 공장에서 나오는 똑 같은 술을 파는 허름한 가게에 왜 이리 열광하는가...? 가맥을 아는 사람이나, 모르는 사람이나 이해 못할 일이다.

 

   
강찬구 전북포스트 발행인

1980-90년대 전주 가맥집은 기자들의 토론장이었다. 당시 기자들은 손으로 기사를 썼다. 14칸짜리 원고지에 펜으로 썼다 지우고 썼다 지우고... 기사를 만들어 데스크에 제출하면 다시 몇 번의 빨간 펜 '칼질'이 이어졌고, 수정과 삭제를 거치고 난 뒤에야 승인이 났다. 그렇게 기사를 마감하고 나면 진이 빠졌다. 그날 일을 그렇게 마치고 누가 뭐랄 것도 없이 가맥집으로 모여들었다.

부딪치는 술잔 사이로 말이 난무하고, 밤 11시가 넘으면 다음날치 지면 1쇄가 신문사에 전달됐다. 그날 당직자는 신문사앞에 설치된 게시판에 이를 붙였고, 신문 기사를 기다리던 독자들은 그 앞에 서서 신문을 훑었다. 방금 찍어낸 신문의 그 뜨끈뜨끈함이라니... 당직자가 마지막 의무를 다하고 신문을 가맥집으로 가져오면 그날 신문에 대한 토론이 이어졌다. 그렇게 새벽까지 날을 새기도 했으니...

 

가맥은 가격이 싸다는 맛 외에도 장점이 많다. 소매가로 파는 술값은 가맥을 ‘스테디셀러’로 만든 일등 공신일 것이다. 이에 못지않게 소박한 분위기, 그리고 자유로움이 술맛을 더한다. 구멍가게 한쪽 빈자리에 마련된 탁자. 술집다운 치장이나 서비스는 없다. 술은 냉장고에서 집어다 마시면 된다. 과자 부스러기를 안주 삼아도 되고, 주인에게 부탁해 손이 가는 안주 하나를 주문해도 되고...

덜컹거리는 탁자와 삐걱대는 의자에 마음대로 앉아 마시는 술. 격식이 없다 보니 대화의 틀도 없다. 막힘도 없는 공간에서 삼삼오오 술을 마시다 보니 자연히 목소리가 커지고, 옆 자리 목소리가 커지니 내 목청도 살아나 정처 없는 말들이 뒤섞인다. 술자리 말이라는 게 사실 뻔한 것인데... 귀 기울여도 들리지 않으니 마음에 둘 것도 없다. 그냥 고개만 끄덕이면... 큰 소리로 떠들다 보니 속도 개운하다.

 

외지인들이 전주 가맥을 가지고 갔다가 실패한 경우들이 있다고 한다. 이는 가맥의 형식만 본땄을 뿐 본질을 놓쳤기 때문이라고 본다. 누가 뭐래도 가맥의 생명은 안주다. 빈속에 술을 들이붓는 손님을 위해 개발하고 발전시킨 안주. 허름한 탁자 하나 놓았을 뿐인데 거기 앉아 술을 마시는 손님을 위해 뭐라도 안주 될 것을 만든 것이 오늘날 명품이 됐을 것이다.

초원편의점의 명불허전 마른 명태, 전일슈퍼의 갑오징어와 계란말이, 영동슈퍼의 튀긴 닭발과 최근의 청양고추 닭튀김, 임실슈퍼의 촉촉한 명태와 수제비... 다른 어디에서도 맛보지 못할 그 집만의 안주가 만들어진 것이다. 손님들의 요기를 채워주면서 맥주를 부르는 촉진제가 된다. 몇 십년의 내공이 만들어낸 안주들... 나는 이 안주 맛을 따라 가맥을 찾는다.

전주에도 가맥이라는 이름을 붙인 집들이 많지만 정작 전주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가맥집은 모두 슈퍼나 편의점이라는 이름을 고수하고 있다. 굳이 ‘가맥’이라고 내세우지 않아도, 인심 가득한 맛있는 안주가 있는 곳은 어디라도 ‘가맥’인 것이다. 가맥에는 서민을 생각하던 그 소박한 문화가 깔려 있다.

 

내가 자주 가던 가맥집에서 제법 많은 양의 안주를 포장하고 있어 물었다. “어디 택배로 보내시려는 거예요...? ” “택배로 주문하는 게 여기서 파는 것보다 많아요...” 항상 손님으로 북적이는 집이다. “어디서 그렇게 주문을 해요?” “여기 와서 먹어 본 사람들이 전화로 보내달라고 해요. 공무원 연수 받으러 왔다가 맛을 본 사람들이 자기네들 회식한다고 보내달라는 게 많아요...” 이 집은 마른 명태를 아직도 연탄불에 노릇노릇 구워내고 있다. “택배로 가면 맛이 다를 거 아니예요...?” “여기하고 똑같이 만들어서 진공 포장해서 보내니 큰 차이 안 난다고 해요. 소스도 따로 보내주고...“

가맥에서 또 하나의 전주를 발견한다. 전주가 내세울 수 있는 맛. 전주 정신인 인심과 정이 들어 있는 아이템. 전주 가맥축제가 곧 열린다는 말을 듣고, 가맥에 얽힌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된다. / 강찬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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