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찬구 전북포스트 발행인

모자 하나 때문에 대한민국이 떠들썩하다. 하림은 그것만으로도 본전을 뺀 듯싶다. 아무리 나폴레옹의 모자라지만 모자 하나가 26억원에 한국인에게 낙찰됐고, 낙찰 당사자가 하림의 김홍국회장이라는 것까지... 놀람이 연타로 이어진다. 언론은 이 틈을 타 하림 신화와 김회장의 결단을 추앙하지만 과연 그렇기만 한 것일까...?

하림의 모자 낙찰 건은 보는 사람에 따라 다를 수 있다. 나는 내 시각으로 말하고자 한다.

내가 기억하는 김홍국회장은 항상 감청색 점퍼를 입은 청년 사업가다. 1990년 하림이 설립되었으니 나도 ‘병아리기자’시절이다. 하림은 이듬해 국내 최대의 도계 가공공장을 전북 익산에 설립했다. 1일 최대 도계량이 30만수에 달했으니 당시로서는 어마어마한 규모였다. 털이 벗겨진 닭이 거꾸로 매달린 채 천정의 컨베이어 시스템을 타고 이동하는 뉴스 영상은 누구에게나 충격이었다.

김회장은 당시 신화적 존재였다. 정부와 언론의 주목과 찬사를 한 몸에 받았다. 어릴 때 외할머니가 준 병아리 10여마리를 4천마리까지 늘렸고, 뜻한 바가 있어 고등학교 다닐 때 사업을 시작했다. 닭 한가지를 중심으로 사육과 가공, 제품화를 계열화하고, 인근 주민들에게 사육을 위탁해 농가소득에도 도움을 줬다. 1999년에는 대한민국 신지식인에 선정되기도 했다.

하림은 그러나 대기업 반열에 오르면서 지역 사회와는 간격을 둔 행보를 보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위탁 사육농가들과 갈등도 보였고, 가공공장에서 일하는 근로자들에게 야박하다는 비난도 돌았다. 지역 사회의 사회단체에 대한 기부에도 인색하다는 소문도 들었고, 대외적인 평판도 좋은 것만은 아니었다. 김회장의 신화는 더 이상 신화가 아닌 현실로 자리잡았다.

이런 김회장이 난데없이 나폴레옹 모자로 주목을 받고 있는 것이다. 한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서 2-3일새 검색되는 관련 기사만도 1천개에 육박한다. 언론은 찬양 일색이다. 이 모자의 역사와 의미에서부터 하림이 모자를 사게 된 경위, 앞으로 이를 신사옥에 전시해 모두가 볼 수 있도록 한다는 내용으로 넘쳐났다. 심지어는 벌써 웃돈을 주고 사겠다는 사람이 있다는 보도까지 나왔다.

김회장도 문화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평소 나폴레옹의 도전 정신을 높이 사왔다. 기업가 정신을 다시 한 번 일깨우는 의미에서 경매로 나온 모자 등을 개인 재산으로 구매하게 됐다”면서 “이번에 모자를 낙찰 받은 직후에 30%를 더 줄 테니 팔라는 국내 인사가 있을 정도였다”라고 자랑하는 등 하지 않아야 될 말까지 하고 있다. 하림은 이날 모자와 함께 나폴레옹이 사용한 은잔과 칼, 유품, 나폴레옹을 그린 그림 등 11억여원을 추가로 쓴 것으로 전해진다.

검소한 이미지의 김회장과는 어울릴 것 같지 않은 26억원의 나폴레옹 모자. 게다가 이 모자의 당초 낙찰 예상 가격은 50만유로(한화 약6억9천만원)였으나 일본 수집가와 경합이 붙으면서 4배 가까이 낙찰가가 높게 형성됐다고 한다. 하림이 언론을 통해 선방(善防)에 나섰지만 SNS에서는 이미 이 사건에 대한 부정적 의견들이 나오고 있다.

이석종씨(데카엔지니어링 부사장)는 자신의 SNS를 통해 “2013년에는 프로야구단 창단도 검토했던 하림이 연간 4억원이 없다는 이유로 전국 체전을 2개월여 앞두고 전북 유일의 남자 양궁실업팀을 해체했었다. 하림측은 경기불황으로 계열사의 재정압박이 지속돼 팀 운영에 부담이 발생했다고 했지만 연간 운영비가 다른 실업팀의 절반 수준인 3억7천700만원에 불과해 과도한 재정 부담에 대한 설득력이 떨어진다.”라고 토로했다.

정진숙 전 전북도의원은 “불쌍한 병아리 팔아 번 돈 거액으로 나폴레옹 모자를 샀다고? 진짜 누구님 사전에는 불가능이 없다. 조류독감으로 온 국민이 마음을 졸이고, 전북에서는 그나마 좀 해 보려는 기업이라 필요한 일만 있으면 비벼 보려 안달인데 번번이 거절 당하고... 위탁 양계농장 농민들 허탈 하겠다.”라고 글을 올렸다.

박명규 새전북신문 대표는 “하림 회장님의 ‘나폴레옹 모자’, 어떻게 생각하세요?”라는 제목 아래 “회사측은 김회장 개인이 산 것이고, 불가능은 없다는 불굴의 정신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한데 많은 분들이 '화재로 부도위기에 몰렸을 때 도민들이 나서 성금을 거두어 회생시킨 회사인데 도민에 대한 보은이나 지역 기여는 외면한 채 천문학적인 가격에 모자나 사들일 수 있느냐?'고 말합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라고 불씨를 던졌다.

댓글도 이어지고 있다. ‘근로자 작업환경 열악하고 돈 없다고 징징거린다는 소문은 진짠가?’ ‘몇 개 안 되는 기업 중에 자기만 아는 기업’ ‘나폴레옹 모자 값으로 양계농 경영 혁신 세미나 포럼 등을 열어 협력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게 존경 받을텐데...’ ‘그 동네에서 가공한 닭은 먹지 않으려 합니다. 돈 쓸 일이 그리도 없나.’ ‘그 돈으로 직원 사기진작과 동기 부여, 복지에나 쓰지 무슨 짓인지.’ 등 안타까워하는 탄식이 흘러나오고 있다.

한 네티즌은 ‘사회 공헌 남 몰라라 하는 대표적인 기업입니다. 얼마나 짠소금인지... 사회공헌 프로그램 들고 찾아간 분이 얘기해 주었어요. 기업 자체에 그런 마인드도 없고, 할 의사도 없답니다. 전북 기업이라고 혜택을 주고, 부도난 회사를 살려냈더니 이제 배가 부르니 저런 허망한 짓을 하네요.’라고 꼬집었다.

물론 하림 같은 대기업을 일구고, 그런 대기업의 회장으로서 사비를 들여 나폴레옹의 모자를 얼마에 구입하든 간에 왈가왈부할 자격은 없다. 하지만 가진 사람일수록 주변을 배려해야 하고, 행동도 가려야 한다. 하림측은 도전정신으로 포장하고 있지만 일반인들에게는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일이다. 사람 사이에는 인지상정이라는 게 있고, 도의라는 게 있다. 사회적으로 상식이라는 것도 있다.

하림은 서민들 속에서 성장해 왔고, 내 아이들은 지금도 하림의 ‘용가리치킨’을 보면 사족을 못 쓸 정도다. 그리고 김회장은 아직도 내 가슴속에 감청색 점퍼를 걸친 수수한 청년 사업가로 남아 있다. 나폴레옹의 모자라고 해서 26억원을 거는, 그런 도박사 이미지는 상상할 수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