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프롤로그

고미숙 고전평론가

동의보감을 읽은 한국인은 열에 하나가 아니라 만의 하나 정도 될 거다. 어쩌면 그보다 더 적을 수 있다. 읽어봤자 쓸 데가 없다고 생각해서다. 고전이라 불리는 대부분의 책들이 우리들 일상에서 그저 ‘회자’만 될 뿐 ‘실용서’로 읽히는 경우는 거의 없는 이유다.

우리가 토익책, 직장에서 살아남는 법 따위를 읽는 것은 모두 당장 현실에서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알기 위해서다. 그런데 그가 쓰는 책은 이런 얄팍한 실용서가 아니다. 토익 만점, 상사에게 아부하는 법 등을 가르쳐 ‘사회인 코스프레’가 정교해지도록 만드는 게 아니라, 내가 바라보는 사회상을 바꿔 ‘내 사회적 유전자’를 바꾼다면? 그의 책이 실용서이자 현대사상서인 이유다. 게다가 누군가에겐 위험한 책이기도 하다.

고전평론가 고미숙(53) 씨를 11월 7일 전주시청 강당에서 만나보았다. 고 씨는 최근 고전과 관련된 인문학 강연으로 젊은이들로부터 잔잔한 호응을 이끌어내고 있다. 전주전통문화연수원이 최근 주최한 2014 인문학 콘서트에 강사로 참여했다.

#2 고미숙과 윤성희의 만남

▲ 왜 고전에 파고들었나?

"현대의 문제를 풀어가는 게 지성이잖아요. 현대 안에서는 출구가 나온다는 생각이 안 들었어요. 여기서 답이 나올 수 있으면 굳이 멀리 갈 게 없는데, 현대 이 안에서 내 근본적 문제들이 해소될 가능성이 전혀 없었어요.”

▲ 얼마 전에 낸 책엔 청년백수 문제를 풀어냈다. 선생 역시 대학 졸업 뒤 백수, 대학원 졸업 뒤 백수. 우리 시대 백수의 고통을 누구보다도 잘 알았겠다. 책엔 ‘평생 한 가지 직장과 노동에 붙들려 있는 것, 그것이 노예의 저주받은 숙명’이라며 왜 우리는 자발적으로 노예가 되려고 하는가를 묻고 있던데...

“그니까, 왜 청년백수가 이렇게 많은데 열등하다하고 억압을 받아야 하는지 질문을 해야죠. 인간이 정말 그렇게 직업을 원하나?”

▲ 사회가 불안하니까.

“다들 직업직업 하니까 따라서 직업직업 한 건데. 사회에서 백수가 많으니 어떻게 일자리를 줄까,라며 백수를 동정하고 더 열등하게 만들잖아요. 그렇다고 백수가 해결되는 것도 아니예요. 청년 백수가 없으면 중년이 백수가 되는데 어떻게 다 되요? 청년, 중년, 노년 모두가 일자리를 갖는 게 가능해요? 어떤 정치인도 해결할 수 없어요.”

▲ 그럴 때 필요한 게 백수의 의미를 바꿔버리는 것?

“좋은 정규직을 못 얻으면 열등하게 살아야 하나요? 그럴 때 고전의 지혜와 현대의 이 문제가 결합하는 거죠. 결국 자유의 문제란 말이죠.”

▲ 자유로워진다는 의미가 정확히 무엇인지 모르겠다.

“돈이 많으면 자유로울 것 같은데 그렇지 않고 더 많이 사랑하면 될 줄 알고 더 많이 사랑하는데 그러면 죽어요. 이걸 풀려면 돈, 사랑 등을 통찰할 수 있는 기회가 필요한 거죠. 그게 동양고전에 있어요. 어떻게 하면 인간이 자유로워질까. 왜냐하면 인간이 살아가는 이유나 삶이 목적이 자유 이상이 나올 수 없어요. 돈이나 사랑 모두 자신을 옭아매야 해요. 다 구속이 되기 때문에 거기서 삶의 근본적 의미를 찾을 수 없어요. 그런데 고전은 동서양에서 인간이 어떻게 희노애락, 사랑, 욕망에서 자유로워지는가가 핵심이거든요”

▲ 구조적으로 취업이 어려운 현실은 현실, 그 현실에 코를 박고 겨우 숨만 쉬지 말고 고개를 들어 스스로를 자유롭게 하는 지혜, 이를 고전에서 찾자는 거다.

#3 짧은 인터뷰가 끝난 뒤 윤성희의 고민.

일본의 프리타가 알고 보니 정규직이 안 되는 사회에서 알바로 살아남는 걸 스스로 자유롭다며 ‘프리타’라 규정한 것인데. 이건 자기객관화도 아니고 그저 현실도피. 선생이 말하고 싶은 건 이런 식의 현실도피가 아닐 것이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스스로를 속이는 게 아니라 스스로를 객관화하는 능력이다. ‘아프니까 청춘이다.’ 등의 마음을 보듬어주는 어른들의 말이 아니라 돈이 어떤 의미인지, 정규직이란 게 정말로 좋은 것인지를 통찰하고 스스로 자기 삶의 방향을 결정할 수 있다면 그게 자기 객관화이고 내면의 힘일 것이다.

그러고보니 나는 3개월에 한 번씩 10일 이상 해외에 나가는 걸 좋아한다. 나부터 정규직에 적합한 인간인지 고민해봐야겠다. / 윤성희 기자

▲ 전주전통문화연수원이 주최한 2014 인문학 콘서트 (왼쪽 고미숙 고전평론가, 오른쪽 조석중 사회자) 사진출처 : 전주전통문화연수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