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 사회엔 독특한 관행이 하나 있다. 기자들끼리 식사나 술자리를 할 때는 그 자리의 가장 상관인 소위 ‘캡’이 지갑을 연다. 누가 특별히 교육한 것도 아니지만 불문율처럼 이어져 오는 전통이다. 부지불식간에 ‘캡’도 아닌 후배가 지갑에 손이라도 댔다가는 ‘벼락’이 난다. ‘왕좌’를 넘보는 ‘하극상’으로 받아들여지는 분위기다.

아마도 어렵던 시절부터 선배가 후배들을 챙기던 관행이 이어진 것으로 짐작된다. 일할 때는 갈구지만 일이 끝나면 풀어 주는 게 선배의 역할이라 그런 관행이 생긴 것으로 보인다. 다른 독특한 문화도 많지만 이 관행에 거부감은 적었다. 후배 시절에는 선배들이 사주는 대로 먹고, 또 선배가 되면 후배들에게 사 주는 게 당연한 문화로 자리 잡았다.

‘김영란법’이 헌재에서 합헌 판결을 받고, 법률 제정이 확정되면서 생각난 한 대목이다.

강찬구 전북포스트 발행인

이 법률의 본명은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이다. 지난 2012년 김영란 전 국민권익위원장이 추진했던 법안으로, 그동안 많은 논란을 겪었다. 당초 법안에서 많은 부분이 손상되긴 했지만 결국 4년만에 결실을 보게 된 것이다. 이런 것을 꼭 법으로 규제해야만 하는가라는 생각도 들지만 오죽했으면 이런 것을 법으로 만들어 바로잡으려 하는 것일까라는 생각이 앞선다.

우리 사회는 권력을 갖고 있는 ‘갑’이 중심이 되는 사회였다. 특히 일부 공직자들은 그 권력을 손에 쥐고 위세를 떨었다. 청탁에는 으레 접대가 따랐고, 선물이라는 이름으로 금품이 오갔다. 앞으로는 그러나 ‘갑’이 ‘을’에게 밥을 사는 상황이 됐다. 이 얼마나 기특한 발상인가...

김영란법이 시행되면 공직자는 어떠한 경우에도 식사 3만원, 선물 5만원, 경조사비 10만원 상한을 염두에 둬야 할 것이다. 몇몇 예외조항이 있기는 하지만 이는 생각하지 않는 것이 신상에 좋을 듯하다. 일일이 계산하고 따지느니, 그냥 단순하게 '3-5-10'을 염두에 두고 사는 것이 편할 것이다.

사회적으로 많은 논란이 있고, 이익단체별로 불만이 나오고 있지만 이 법의 근본 취지는 부정 청탁을 예방하자는 데 있다. 이는 우리 사회가 그만큼 부정 청탁과 금품 수수에 노출돼 있고, 나아가 만연해 있다고 해석할 수도 있다. 이같은 각 단체와 계층의 입장은 시행령을 마련하는 단계에서 최대한 반영될 것으로 본다.

이같은 청렴성의 제도화는 다른 선진국에서도 오래 전부터 시행하고 있다고 한다.

미국은 지난 1962년 '뇌물, 부당이득 및 이해충돌 방지법(Bribery, Graft and Conflict of Interest Act)‘을 제정했다. 공직자가 대가성 금품을 수수할 경우 15년 이하의 징역과 함께 벌금형을 받게 된다. 의도의 순수성을 담보로 1회 20달러, 연간 50달러 이하의 선물은 예외로 인정하고 있다.

영국도 '뇌물죄(Bribery Act)‘ 등 강력한 반부패 법령들을 채택해 공직자의 선물과 접대 수수 행위를 제한한다. 런던시 공무원의 경우 25파운드(약 3만7천여원)이상의 선물과 접대는 관리자의 승인을 받아야 하고, 외무부 공무원은 30파운드(약 4만4천여원)이상의 선물과 접대가 금지돼 있다.

독일 또한 '부패단속법(Gesetz zur Bekampfung der Korruption)‘을 통해 대가관계가 없더라도 금품 수수를 형사 처벌하고 있다. 연방정부는 25유로(약 3만1천여원) 안에서 선물 수수를 허용하고, 초과한 선물에 대해서는 사전 승인을 받도록 하고 있다. 기관에 따라 연방 내무부는 25유로, 연방 법무부는 5유로이하의 선물만 허용한다고 한다.

김영란법은 우리 사회가 선진국으로 한 단계 올라서는 디딤돌이 될 것으로 나는 생각한다. 그동안 현장을 가까이에서 지켜 본 입장에서, 우리 사회에 만연한 금품 수수 풍토를 없애는 계기가 될 것이다. 대한민국 사회가 보다 투명하게 나아가는 밑거름이 될 것으로 본다.

법이 제안되고, 이후 제정되기까지 많은 시간이 흘렀고, 또 앞으로 시행 과정에서도 적지 않은 갈등이 예상되지만 우리 사회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헤쳐 나가야 할 길이다. 우리 사회에서 ‘김영란법’이 제정된 자체를 '희망'으로 본다. / 강찬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