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남의 대작(代作) 사건이 불거지고, 그의 한 지인이 그를 옹호한답시고 ‘미술계 관행’이라고 언급하면서 이 문제가 미술계를 넘어 예술계 전반의 문제로 번졌다. 그게 미술계의 관행이라면 그동안 유명 화가의 작품 가운데에도 대작이 넘친다는 얘기인가...?

홍만표 변호사의 단기간 축재 과정도 우리 사회에 ‘관행’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법조계는 가뜩이나 ‘전관예우’로 국민들의 눈총을 받고 있는 조직이다. 한때 법조계에서는 ‘퇴직 후 2년 이내에 평생 먹을 것을 만들어야 한다’는 말이 있었다. 전관예우가 관행처럼 굳어져 ‘앞에서 끌어주고 뒤에서 밀어주는’ 미덕이 뿌리를 박았다는 말인가...?

강찬구 전북포스트 발행인

관행(慣行)은 그 사회에서 예전부터 해 오던 것을 일컫는다. 그 사회의 버르장머리. 개인으로 얘기하자면 “싸가지”다. ‘관행’이 ‘전가의 보도’처럼 횡행하고 있다. 나쁜 짓 해놓고 ‘관행’을 탓하고 있다. 개인의 ‘싸가지 없는“ 행위를 ’관행‘으로 위장해 우리 사회로 화살을 돌리고 있다.

사회적 심판을 ‘관행’으로 뭉그러뜨리는 것은 ‘나만 그런 게 아니다.’라는 항변을 담고 있다. 나아가 ‘너는 그러지 않느냐...?’는 준엄한 꾸중까지 내포하고 있다.

‘관행’이 변명이랍시고 이용된다는 것은 우리 사회가 확실하게 굴절돼 있는 것이다. 부정과 비상식을 ‘관행’으로 입막음 하려는 것은 우리 사회에 부정과 비상식이 만연해 있다는 반증이다.

사회적 명성을 이용해 대작을 하고, 전관예우가 횡행하고, 하청업체 직원을 종 부리듯 하고, 사람이 죽는 것보다 지하철이 멈추는 것에 더 큰 감점을 주고, 돈이면 뭐든 할 수 있다는 심리가 우리 사회의 관행으로 굳어졌다는 말이다.

대한민국은 경제적으로 부유해졌다는 것뿐이지, 발전했다고 말할 수 없다. 발전이라는 말은 균등이라는 전제에서 빛을 발한다. 돈은 많아졌지만 극소수에 편중되고, 부를 향유하는 부류 또한 일부에 국한돼 있다.

사회의 발전은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 과학적 진보 위에서 그 혜택을 골고루 나눠 가질 때 쓰는 말이다. 이런 의미에서 대한민국은 아직 선진국을 논할 수준이 아니다.

우리 사회가 굴절됐다면 이제라도 바로잡아야 한다. 소수에 집중된 부를 분배하고, 사회의 진보에 따른 혜택을 모두가 공유해야 한다.

OECD국가라고 국제 사회에 나가 큰소리치면서 생리대를 구매하지 못하는 소녀들을 방기한다는 것은 오히려 더 후진적이다. 분배가 이뤄질 때 건강한 사회가 가능하며, 이는 정치가 담당해야 할 막중한 임무이기도 하다.

정치가 바로 서야 사회가 바로 선다. 정치 이념은 우리 사회를 이끌어 가는 근간이며, 우리는 모두 국가라는 공동체 안에 묶여 있기 때문이다.

크든 작든 공적 기능이라는 것은 넘치는 곳을 덜어 부족한 곳을 메우는 기능을 해야 한다. 우리의 정치는 공적 기능을 다하고 있는 가에 대해 묻지 않을 수 없다.

우리 사회의 모든 개개인은 유기적으로 연계돼 있다. 농민들의 희생 없이 전자와 자동차 산업이 성장할 수 있었겠는가...? 우리의 전자 제품과 자동차를 팔아먹고, 대신 외국 농산물을 받아들이기 위한 FTA가 아니던가...

미국, 호주와의 FTA로 쇠고기가 물밀 듯 들어오면서 우리 한우 농가는 줄줄이 파산했다. 그 파장이 요즘 한우 값의 폭등으로 나타나고 있다. 공급이 없으니 가격이 오른 것이다. 이러다가는 한우를 맛볼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 발전한 나라, 성숙한 사회라면 전자제품과 자동차를 팔아 번 돈으로 축산 농가를 살려야 하는 게 마땅하다.

기업체들이 스스로 하지 않는다면 국가가 나서 이 기능을 해야 한다. 한국의 거대 자본은 국민들의 땀과 피를 기반으로 성장했다. 자급자족은 원시시대 논리다. 각 분야와 집단과 개개인이 거미줄처럼 엉겨 있는 세상에서 어떻게 ‘나’와 ‘너’로 이분화할 수 있단 말인가...?

긍정적인 ‘관행’을 세워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정치가 중심을 잡아야 하고 사회가 바로서야 한다. ‘노블레스 오블리제’는 고사하고, 최소한 나쁜 짓을 했으면 부끄러움은 아는 사회. 그래야 뻔뻔스럽게 대놓고 ‘관행’ 탓을 하지는 않을 것 아닌가...?  / 강찬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