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도 치열한 국회의원 선거를 치르느라 얼마전 온 나라가 들썩였고, 미국도 지금 대통령 선거로 시끄럽다. 나도 미국 대통령 후보 중에 맘에 둔 사람이 하나 있긴 하지만  Donation(기부)1$도 안했고, 투표 등록도 하지 않았으니 결과에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않을, 있으나마나 한 유령지지자일 뿐이다.

나는 정치엔 문외한이다. 그리고 정치가란 이 세상에 존재하는 직업 중에 가장 불필요한 직업이라 생각하는 사람 중의 한명이다.

정지월(Jiworl Seok) 은 현재 미국 애틀랜타에 살고 있다. 전주 성심여고와 전북대학교 불어불문학과를 졸업했으며, 미국에 건너가 필라델피아 무어 예술 디자인 대학(Philadelphia Moore College of Art & Design)을 졸업했다.

격동의 80년대에 대학을 다니면서도 그 흔한 데모 한번 안해보고, 대학 강의실에 앉아 있다 누군가 던지고 간 유인물이 우연히 내앞으로 떨어졌다 하여 사복경찰이 날 불러 꼬치꼬치 캐물을 때도 엄마랑 둘이서 벌벌 떨던, 내 한 몸 건사하기 바쁜  비겁자에 제도주의자였다.

그런데 지금 수십년이 지난 후 비교해 보면 그렇게 열심히 데모하던 그들이나, 내 한 몸 잘살아 보겠다며 살아온 나나 다를 게 없어 보인다. 

내가 잘살았다는 얘기가 아니라 투사가 이제는 한 때의 투쟁 이력을 내세워 직업 정치인이 되어 있기도 하고, 또 누구는 일천한 한때의 경험을 소재로 잘나가는 작가가 되어 있기도 하니 말이다.

김훈작가의 말대로 인간에겐 오직 입과  항문만이 있을 뿐이고, 나머지 기관은 그걸 돕기 위해 존재할 뿐이다. 그러니 태어난 이상 인간은 누구나 그 절체절명의 "업(業)"을 벗어날 수가 없으니 "직(職)"이 필요한거다.

한 인간이 태어나서 한 세상을 살아간다는 건 태고적부터 되풀이된 진부할 뿐인 'same old story'(그저 그런 이야지)다. 그래서 세상엔 영웅도 없고 죄인도 없다. 모두가 자신에겐 한번 뿐인 인생을 나름대로 치열히 살았을 뿐이다.

그래서 내겐 대통령이나 최고 성직자나 청소부나 동급이다. 그러니 세상을 바꿔주겠다고 큰소리치며 갑자기 내 관심과 늑골에 호소하는 인간을 믿지도 의지하지도 않는 정치 무관심자, 정치외면자가 되어버렸다.

지난 주말엔 아들의 대학졸업식이 있었다. 축사를 하는 유명인사나 답사를 하는 학생이나 사용했던 공통적인 어구가 있었으니 " 이제 나가서 세상을 바꾸라!" 는 말이었다.

듣고 있던 남편이 조용히 내게 속삭였다. "너희들이 세상을 바꾸기 전에 세상이 너희들을 바꾸어 놓을 걸..."  이것이 얼마나 맥빠지는 진실인지를 알기에, 눈한번 흘겨줬지만 내심 씁쓸히 공감했다.

누구든 젊을 땐, 사회초년병 시절엔  꿈도 사명감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다람쥐 쳇바퀴 돌듯 반복되는 하찮아 보이는 일상에, 자꾸만 나를 밀어내는 세월과 세상에 치이며 살다 보면 선명했던 목표도 가치관도 뿌옇게 흐려지고... (그래서 늙으면 시력도 약해지고 백내장이 오나 보다. 정신의 변절에 대한 육체의 징벌이다.) 한번 올라탄 인생이란 기차를 멈출 수 없어 그냥 실려가게 된다.

하지만 우리 모두가 개탄해 마지 않는 이 썩은 세상도 우리가 만들었다. 오로지 나와, 내가 겁도 없이 창조한 내 가족의 입과 원활한 배설을 위해 선을 넘고, 도를 지나치며 살짝살짝 밟은 금들이 쌓여 이 빌어먹을 세상을 만들어 버린 것이다. 그리고 이제 그 부조리한 세상은 부메랑이 되어 나와 내 아이들의 안전과 실존을 위협하게 된다.

이런 세상을 바꾸는 방법이 오직 하나 있으니 그것은 나만 바뀌면 된다. 그러면 세상은 천천히, 그러나 분명히 바뀔 것이다. 다른 누군가를 기대할 필요도, 의지할 필요도 없다.

내가 좀 불편해도 재래시장을 이용해 주고, 아들을 꼭 낳고 싶어도 딸도 낳아야 한다. 그래야 중산층이 늘어나고 아들이 장가 못가 여성혐오자도 되지 않는 것이지, 내 편한대로, 내 꼴리는 대로만 하고 산다면 세상 탓이나 신 탓을 할 자격이 없다는 거다.

미국도 거대 프랜차이즈만 남고 소상인, 개인 비지니스가 다 문을 닫는 추세다. 그러니 중산층은 사라지고 극소수의 Super Rich(초부자)와 수많은 빈민층이 양산되고 있다.

이렇듯 경제문제가 심각하다 보니 경제를 잘 아는 듯한 초부자급의, 모든 면에서 함량미달인 후보가 공화당 대선주자로 확정되는 듯하다. 역시 '목구멍이 포도청'인 것은 동서고금의 진리다.

하지만 한국은 벌써 속아봤지 않은가? 경제를 아는 듯한 대통령이 나라를 어떻게 말아 드셨는지...  이제는 미국인들이 속을 차례인가 보다. K- 정치를 보고 뭔가 배워가야 할 듯하다.

언뜻 우리가 사회와 제도의 희생자인듯  보이나 경제의 흐름과 트랜드를 만들고, 또 여론을 조성하는 것도 우리다. 

각 개인이 자신의 본능보다는 양심의 소리에 더 귀를 기울이고 , 좀 더 나은 사람이 되기로 결심한다면 우리 아이들에게 더 낙관적인 세상을 물려줄 수 있지 않을까?

정치는 싫어하지만 세상은 바꾸고 싶은, 정치는 모르고 부모의 마음만 아는 무식한 엄마의 바람이다. / 정지월 전북포스트 애틀랜타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