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인들이 내게 농담으로 하는 말이 있다. '대동여지도'라도 그릴 셈이냐고... 4년째 다녀온 길과 고개, 산을 이어보면 실로 지도 하나 그려봄직 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천만에 만만에 말씀이다.

강원도 태백의 두문동재.

말 나온 김에 대동여지도를 간략하게 소개하고 넘어 가야겠다. 대동여지도는 1800년대 김정호 선생이 스스로 만든 ‘청구도’, ‘동여도’와 다른 이들의 지도들을 바탕으로 완성시킨 지도다.

해안선과 산세, 물의 흐름이 현재의 지도와 견줘 손색이 없을 정도로 정확도가 높다. 더 높은 점수를 얻는 대목은 오늘날에도 쓰는 기호며 도표를 활용했다는 점이다. 지도 한 장을 보고서 가보지 않은 땅을 대략 파악할 수 있을 만큼 일목요연하게 만들었다.

아울러 그 것을 넘어 그 땅에 사는 사람들의 군사, 경제, 인구 등에 관한 정보와 인문학적 정보를 담고 있기도 하다.

우리가 잘못 알고 있는 사실이 하나 있다. 그가 조선 팔도를 돌아 대동여지도를 그렸다고 여기는 일이다. 조선 조정이 무능해 위대한 지리학자를 알아주지 않았다는 점을 왜곡하기 위한 조선총독부의 작품 이라는 것이 오늘의 정설이다.

선생이 직접 답사하고 그린 것이 아니라 많은 지도와 지리서, 그리고 여러 사람들의 도움을 얻어 만들었다. 재료가 되는 것들을 비교하고 종합하여 체계화하고 집대성한 역할이었다.

5년 전 겨울 1주일 가량 강원도 여행을 한 적이 있다. 평창, 정선, 영월을 돌아 다시 산맥을 넘어 태백으로 넘어 가던 길이다. 이 때만 해도 강원도란 눈 많고 산 높은, 우리 동네랑은 조금 다른 지역일 뿐이었다. 그러던 내게 강원도가 들어와 술렁이기 시작하였다.

태백산맥을 정점으로 정선과 태백이 나뉜다. 해발 1000m 넘는 곳에 고갯길이 있다. 두문동재(사실 엄밀하게 말하자면 내가 말하는 건 싸리재이다)라고 한다. 두문불출의 그 두문...

개성 땅에서 고려왕조에 대한 지조를 지키려 두문동 마을에 들어갔던 일부가 정선 땅으로 흘러 들어왔다고 한다. 정확한 기록이 남아 있을리 없으니 마을 이름과 고갯길로부터 추정된 추측이라 보인다.

그곳에 서보면 딱하니 느껴질 법 하다. 그곳이 왜 두문동이어야 하는지 말이다. 그렇게 두문동재를 지났다. 정작 놀라운 일은 여기서부터 벌어졌다.

경기도 땅까지 완만하던 지형이 강원도 영월 쯤에서 갑자기 산세가 험해진다. 그리고 정선으로 이어지면서 경사도가 급하게 높아져 이곳 두문동 터널에서 정점을 이룬다.

터널의 높이가 해발 1,000m 정도다. 그 위의 고개는 1,250m에 달한다. 그곳을 넘어서면 동해가 멀지 않다. 도계를 거쳐 동해나 삼척까지 짧은 거리를 달려 바다를 만난다.

터널을 지나 굽이쳐 내려가는데 조그만 역이 하나 보인다. ‘아니, 저기서 누구를 태우려 기다리고 서있지...?’ 싶을 정도로 생뚱맞다. 예기치 않게 만난 당혹감일 것이다. 여태껏 눈여겨 보지 않고 있었는데 산을 넘자 마자 기차와 역을 만나서 그럴 것이다.

한국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추전역.

기차역 뒤에 다시 홀로 우두커니 이마트가 버티고 있다. ‘아니 왜 이 산중에?’라는 의문은 배가 된다.이런 게 있을 법한 위치가 아니다 싶고, 보이지 않는 어느 곳에 사람들이 많다는 소리가 되지만 아직은 실감이 나지 않는다.

겨우 그렇게 내려와야 조그만 동네들이 보인다. 생선의 그것이라 묘사할 만하다. 등뼈가 심하게 굽어있고 등뼈로부터 난 가시들 곁에 집이 있고 길이 있는 모양새라고 해야 하나?

사람이 살 것 같지 않은 땅에 사람들이 있었고, 집을 지을만한 곳은 죄다 집을 지었다. 그리고 대형마트를 지을만한 땅은 없었을 테니 현대화된 건축기법으로 조금 떨어진 곳을 밀어서 후일에 지어진 것 같다.

태백을 지나 도계로 내려가는 길은 갈 길이 바쁘니 더욱 굽이친다. 길과 기찻길은 만나기도 한다. 길이 굽어 내리치듯 기차도 굽어 흘러 내려간다.

‘기차가 저렇게 굽은 길을 돌아 내려갈 수가 있나?’ 싶던 의구심은 흥전역과 나한정역 사이의 ‘스위치백’ 구간을 만나고서야 비로소 해소되었다.

차와 달리 기차는 곡선을 도는 최소한의 각이 필요하다. ‘스위치백’ 구간에서는 그것마저 나오지 않는다. 대신에 앞으로 가던 기차를 멈춘 후 열차를 분리한다. 분리된 객차는 다시 다른 열차에 연결되어 전진한다.

아까와는 반대 방향으로 앞이 뒤가 되고 뒤가 앞이 된 채 다시 달린다. 그래야만 동해와 강릉으로 달릴 수 있는 것이다. 지금은 산허리에 긴 터널을 뚫어 한 바퀴 크게 돌아 경사를 낮춰 내려간다.

두문동 터널부터 추전역, 황지(태백중심지)를 거쳐 통리역 앞을 지나 도계로 내려간다. 길 따라, 넓어야 폭 1km 안에 집들이 밀집해 있다.

지리 과목 같은 데서 분명 배웠다. 고산지대에 산맥, 그리고 탄전지대까지 모두... 한데 그곳에서의 삶이 어떻게 이루어 지는지 미처 상상해보지 못했다. 그런 상태에서 이 장면을 마주한 것이다.

남한 최대의 탄전지대가 모여 있는 태백 일대는 대한민국의 불이 되고 빛이 되는 최전선이었다. 정선과 영월에서 동해로 실어 날라야 하는 석탄도 태백을 통과해야 했다.

산꼭대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곳에 어떻게든 발을 딛고 살아갈 터전이 필요했던 것이다. 지을만한 곳이라면 어떻게든 찾아내 집을 지었고, 그곳에서 학교를 다녔다. 그리고 지친 하루를 달래며 내일로 이어가야 했다.

1960년대부터 시작해 70년대에 절정을 이루었고 80년대에 쇠락하기 시작했다. 지금은 떠나가고 빈 도시가 시간을 훌쩍 뛰어넘어 내게 갑자기 찾아든 것이다.

갱도가 막바지에 달한 지점을 막장이라고 한다. 그곳에서 삶을 일구어야 하는 사람들의 처지를 그렇게 부른다. '더 이상 갈 데가 없어 내몰린 사람'이라고 오해한다.

그들은 그 길을 결코 끝으로 두지 않으려 했다. 길을 내어 파고 들어가 다시 길을 내었다. 또 다른 길을 만들어 삶을 이어나갔다. 태백의 길과 철로와 집, 그리고 박물관이 된 그들의 삶이 한 덩어리로 들려줬고 동의하는 나의 확신이다.

큰 산이 솟아 있고, 이어 나가는 산줄기가 있다. 산줄기는 물을 흘러내린다.

계곡을 기르고 내를 이루고 강으로 모아진다. 때로는 교행하고 때로는 나란히 달린다. 산과 물 곁엔 길이 나 있고 사람들이 오간다.

산과 물과 길은 사람에 의해(또는 상호간에) 교차하고 때론 평행을 그리며 내달린다. 산과 물과 길은 바다에 이르러 한 몸이 된다.

태백탄광

김정호는 조선팔도의 산과 물과 길과 마을을 22개의 병풍 폭에 한 장의 그림으로 완성했었다. 팔도가 하나로 숨 쉬어야 윤택해지고, 외부로부터 조선을 지킬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세상이 어지러우면 이 지도로 쳐들어오는 적을 막아 광폭한 무리들을 제거하고 시절이 평온하면 이 지도로 나라를 경영하고 백성을 다스리는데 사용한다.’라고 지도유설에 남긴 말이다.

보다 정확하게 만들려 노력했고, 백성들의 삶을 윤택하게 만드는데 활용 될 수 있도록 혼신의 힘을 담아 그림을 고쳐 그리고 또 고쳐 그렸다.  

두문동과 태백에서의 느낌을 내가 아닌 김정호선생이 그려낸다면 어땠을까?

내가 사회과부도를 통해 배운 게 사람들의 삶이 아닌 글자였다. 그 길에서 나의 그것에 대한 배신과 감동을 동시에 맛보게 된 것이다.

강원도를 찾거든 두문동재를 넘어 태백을 들러볼 만하다. 아울러 반드시 굽이굽이 흐르던 옛날의 철길을 찾아보길 권하고 싶다. 그것만 바라보아도 막다른 길에서도 길을 내고자 애썼던 사람들이 보인다. 막다른 곳에서 안간힘으로 길을 내고자 애썼던 사람들의 삶을 그대로 읽어 낼 수 있다.

김정호 선생이었다면 분명, 훨씬 더 실감나는 두문동 너머 태백에서의 감동을 그려내지 않았을까 싶다. / 김길중 한의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