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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두 아버님과의 추억 '곰티재' - 길벗<자전거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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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05.03  12:2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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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容)자 만(萬)자 쓰시는 아버님을 여읜 지 33년이 흘렀다. 아직은 다 못할 아버님에 대한 이야기는 언젠가 다루도록 스스로에게 다짐해 두고 아버님에 관한 오래된 추억을 꺼내본다.

 

   
전주에서 진안으로 넘어가는 곰티재.

어릴적 어렴풋한 기억 속에 생생한 장면 하나가 있다.

어느 눈 내리는 날이었고, 좁디좁은 길을 구불구불 돌아 그야말로 눈 세상 같은 곳을 다녀온 기억이 그것이다. 후일에 헤아려  보니 진안군 안천면의 우체국에서 근무하시던 아버님을 찾아간 길이다.

봉동에서 전주로 넘어와 기린삼거리를 통해 안천을 찾았다. 지금의 용담호 정도를 어떻게 지나갔는지는 기억에 남아 있지는 않다. 완행버스에 탄 채 곰티재를 넘어설 때의 기억만은 생생하다. 5,6살 정도 때(대략 70년대 중반 가량)의 일 같다.

그 나이에도 눈 내리는 밤길을 달려 넘는 고갯길은 정말 아득한 세계로 접어드는 느낌이었다. 그 위에 펼쳐진 눈 풍경들이 생생하다. 신작로 위에 다져지고 쌓인 눈, 무릎까지는 빠졌던 것 같은 눈을 내가 살던 봉동에선 보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한분의 아버님으로부터 들었던 이 고갯길에 대한 이야기.

진안군 동향(아주 먼 곳이다)에서 멀리 전주의 사범학교로 유학을 왔던 청년이었다. 이제는 나의 장인어른이 되시는 분이다. 가끔씩 옛 시절의 이야기를 들려주곤 한다.

동향(진안)을 출발해 곰티재 넘어 전주에 이르던 길에 대한 이야기 이다. 쌀이 돈이고 쌀이 하루하루를 먹여 살리는 시절, 장인어른의 아버님께서는 하숙비로 약속된 쌀을 전주로 보내야 했다. 아래의 지도를 참고하면 이해가 더 빠를 것 같아 준비해 두었다.

여러 갈래의 길도 많았다만 그땐 그렇지 않았다. 전주를 출발해 진안을 거쳐, 안천, 적상 등을 통해 무주로 이르는 신작로 하나가 있었다고 한다. 동향 가까이를 지나는 신작로, 또 하나는 금산에서 안천을 거쳐 동향을 지나 장계, 장수 등으로 이어지는 길이다.

동향에서 전주에 오르기 위해서는(지금의 죽도 옆에 포장된 길이 있지만) 사람이 겨우 지날만한 소로의 산길을 넘는 길이 가장 빠른 길이었다고 한다. 지금 길로 22Km 정도 되니 그때 당시엔 30여Km는 되지 않았을까 싶다. 이 길을 통해 운반할 수 있는 수단은 소달구지 정도였을 터. 아마도 동향면 성산리와 상전면 죽도를 넘는 잔구먹재를 넘었던 것 같다.

가까스로 진안까지 와서 신작로를 오가는 차편을 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정기적인 차편이 마땅치 않으니 장작을 실어 전주로 내다 파는 트럭운전사에게 얼마간의 삯을 주고 이용 했단다. 나무위에 쌀을 싣고 그 위에 사람이 올라타야 했다.

터덜거리고 널뛰는 비포장길을 다시 40여Km는 족히 달려야 서낭당쯤에 도달 할 수 있었다. 장인어른의 연세가 올해로 77세이니 1950년대 후반의 시절 이야기 이다.

 

   
곰티재로 연결된 길.

완주군 소양면 신촌에서 진안군 부귀면 세동을 넘는 길목, 평야로 이어지는 땅이 산을 넘어 진안고원으로 접어들기 위해 넘어야 하는 곳이 곰티재다.

곰치, 곰티, 웅치, 웅치재, 웅령 이라고도 불렸던 이 고개는 전주에서 진안을 거쳐, 금산, 무주, 장수로 가는데 있어 중요한 고갯길 이었다.

모래재가 만들어진 것이 1972년이고 지금은 모래재 마저 보룡재(많은 사람들이 '소태정 고개'라고 잘못 부르는)로 대체되고 있다.

 

   
곰타재 정상, 웅치 전적비 아래서... 김길중 한의사 

이쯤 되면 요충지가 되는 곳임을 짐작할 수 있다.

임진왜란 당시에 부산으로부터 시작해 한양을 거쳐 멀리 평양과 함경도까지 진출한 왜군이 점차 위기에 처한다. 주요 성을 점령해 가면서 전국을 얻었던 왜국에서의 전쟁과는 달랐던 것이다.

조선 팔도 대부분을 휩쓸고 갔지만 전쟁이 길어지면서 보급로에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각지에서 출몰하는 의병과 전라도 남쪽 바다를 지키고 선 이순신장군으로 인해 전선상의 심각한 허점이 점점 드러나게 된 것이다. 중요한 전략적 가치가 전라도로 집중되며 공략이 시작된다.

 

충청도 금산(예전엔 이곳도 전라도였다.)에서 전주성을 공략하기 위해 왜군은 배티재(대둔산 아래의 운주와 금산을 이어주는 곳)와 곰티재로 나눠서 진출을 시도한다. 배티재에서는 왜군이 이기질 못했다.(사실은 금산에서의 의병으로 후방이 급해진 때문에 철수한 측면도 있다.)

곰티재에서 많은 수의 조선 군대가 괴멸 당했지만, 결국 전주와 전라도를 지켜낸 중요한 전투가 곰티재에서 벌어진 것이다. 약무호남시무국가(若無湖南是無國家)라는 중요한 대목의 이야기가 이순신 장군에 의해 발설 되었다.

바다의 조선 수군과 함께 전주 인근의 두 전투에서 지켜진 것이다. 곰티재와 배티재 전투가 호남을 지키고 조선을 지켜낸 셈이다.

 

세월이 흘러오면서 길은 반듯해졌다. 굽어진 길은 펴졌고 올라야 하는 길을 피해 터널을 뚫었다. 많은 고갯길이 지금은 밑둥에 터널 같은 걸 거느리고 있다.

수없이 많이 건너던 사람들은 고개였지만 이제는 인적이 드문 경우가 많다. 일부러 찾아야만 만나는 고개가 이제 유물과 같이 남게 된 것이다. 터널에 빼앗겼을 뿐 아니라 4차선 도로에 일부를 내어주고 길로서의 기능을 상실한 경우도 있어서 고립된 고개도 있다.

 

   
비가 내리는 최근의 곰티재 메타세콰이어 길. / 강연덕 시민기자

옛 상태가 잘 보존되어 있고, 추억을 되살려볼 만한 고개가 곰티재 라고 생각한다.

굽은 걸 펴고 막힌 데는 뚫어서 통하게끔 접근 하는 게 여태까지의 길이었지만 그것이 앞으로도 지속된다는 보장이 없다.

석유가 바닥나고 인류가 다시 걷거나 달리는 방식으로 살아가야 할 순간이 올지도 모른다고 하지 않던가... 그런 시절이 찾아온다면 우리는 다시 고개를 넘어 살아가던 옛 방식을 찾지 않으면 안되는 순간도 있을 수 있는 거다.

 

추억을 간직하고 어제로부터 오늘로 넘어와 내일로 가는 길이 이 곰티재에 있을 것 같다. 내가 그랬듯이 화심에서 출발해 곰티재를 넘고 모래재로 이어지는 메타세콰이어 길 까지 걸어보면 좋을 것 같다.

돌아오는 길, 20인승 미니버스로 변한 군내버스를 이용하게 되면 안골까지 30분도 걸리지 않는다.

차를 모는 경우에도 지금도 한 번씩 곰티재로 일부러 돌아오는 경우도 있다. 자전거로 넘어본 게 두 번, 걸어서 넘어본 게 한번이다. 어지간해서는 넘어서는 내내 차도 사람도 만나기 힘들만큼 고즈넉한 곰티재는 포장되지 않은 신작로 그대로다.

이 길을 추천해 본다면 자전거 보다는 걸어서 넘기가 더 어울릴법 하지 않나 싶다.

 

   
곰티재 주변

가족들과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면서 너댓시간을 걸어 보면 임진왜란이 나오고, 할아버지 할머니에 대한 추억이 재생될 것이고, 우리들의 유년시절이 아이들에게 건네질 법 하지 않은가?

신촌 갈림길에서 출발, 곰티재 넘어 메타세콰이어길 까지 16Km를 걸었고 3시간 30분 가량 소요되었다.

아이들과 우리들 사이의 넘어서기 힘든 고개가 있다면, 이런 정도의 넘어서기 한번 쯤은 괜찮다 싶어 권하는 걸로 이 이야기를 맺는다.

 

다만, 지금의 신작로는 그냥 그대로 두고 간직해야 한다.

추억을 지켜내고 아이들과 더불어 내일로 넘어가기에 딱 좋은 곳이 곰티재 넘기라면 더 손대면 안될 일임에 명확하지 않겠는가. 나의 추억이 곰티재에 담겨 있고, 또 누군가의 추억이 담기게 될 것이다. 굳이 추억이 없는 누구라도 이 길을 함께 넘어서는 것도 추억이 될 만하다.

다음 편에서는 곰티재와는 대조적인 의미를 가진 뱁재 라는 고개를 다룰까 한다. / 김길중 한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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