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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러두기 - 길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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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04.29  14:0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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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두기? 여행이란 내겐...
지난번에 쓴 글이 프롤로그 형식으로서 글에 대한 성격과 의도를 미리 밝혀둔 거라면, 이번의 글은 '나의 여행'에 관한 일러두기쯤에 해당할 것이다.


무주군 무풍면에서 설천면으로 넘는 오두재(해발 930m) 정상.
자전거를 타고 여행을 하거나 두 발로 여기저기 떠돌다 보면, 대단히 많은 것들이 눈에 들어오며 느끼는 바가 크다.

 

무주군 무풍면에서 설천면으로 넘는 오두재(해발 930m) 정상


속도가 빠르게 휙 지나가면서는 사물과 풍광, 특히나 사람들을 바라보며 해석하는 과정에 문제가 있다고 여긴다. 말하자면 세상에 대한 인식하는 과정을 통해 만들어야 하는 '세상위의 나'를 정립해 가는 게 어렵다는 것이다.
속도가 느리면 느릴수록, 대상과의 거리는 짧고 가까울수록, 나와 사물(또는 타인들)의 상호관계를 좀 더 깊이 이해 할 수 있다고 설파하곤 한다.
그런 점에서 자전거여행과 도보로 걸어보면 좀 더 세상이 잘 보인다고 말하는 것이다. 세상 속의 내가 더 선명하게 확인된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위대한 철학자인 독일의 칸트는 프로이센의 상업도시 쾨니히스베르크(현재 러시아의 칼리닌그라드)에서 태어나 생을 마쳤다. 그는 일생을 통해 100마일(160Km쯤) 밖을 벗어나 본적이 없다고 한다. 그런 그의 세상에 대한 견문을 오늘에 견준다면 얼마나 작았겠는가? 그가 하나의 철학적 견해를 완성시키는데 도움을 준 사람들의 폭이 얼마나 협소했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 공간과 범위에서 놀랍게도 세상을 읽어내고 해석했다. 그리고 잘 알려진 일화처럼 그가 주로 사유를 만들어낸 큰 힘이 매일 매일 이어졌던 동네에서의 산책에서 나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나는 간혹 내가 거닐고 달려본 길들을 사진에 담아 친구들에게 소개하곤 한다.
재주가 부족해서 일일이 담아내지 못해서 그렇지, 친구들이 감탄하는 아름다운 풍광들은 사실 특별한 곳에 존재하지 않고 벗들이 사는 곳곳에 널려 있다고 말하곤 한다. 포인트와 포인트 말고도 그 포인트를 이어주는 긴 선상에 널려 있다.
내가 올리는 풍경이 전주가 아닌 화순에만 있는 게 아니다. 전주에도 있고 완주에도 있고 임실에도 있다. 적어도 내가 다녀본 바로는 어느 고을이라고 아름답지 않은 고을이 없다고 말할 수 있다.
이것이 아름다움뿐이겠는가.
재주 많고 기발하며 또한 다양한 세계관의 사람들이 사람 많은 서울에만 있겠는가?
미처 생각지 못한 가까운 곳에 정말 위대한 이웃들이 곳곳에 숨겨있을지 모른다. 아직 내가 찾아내지 못했을 뿐 일거다. 지혜롭고 아름답게 살아가는 이웃들을 뒤져 멀리 볼 게 아니라는 소리다.

말이 너무 샛길로 샌듯 하다.
나는 여지껏 해외여행을 가본 일이 없다. 여행이라기보다는 어떤 일에서의 목적 아래 일본의 같은 도시 비슷한 기관을 두 번 방문한 적이 있지만 여행이라 할 수는 없다. 목적이 있는 연수였고 업무라 할수 있다.
핑계만은 아니지만 고소공포로 인한 비행기에 대한 두려움은 그냥 말하기 좋아 둘러대는 변명일거다. 그보다는 굳이 나는 이 땅을 떠나, 가고 싶은 호기심이 이는 곳이 아직껏 없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을 널리 알아 두는 것이 나쁠 것만은 없다. 내가 칸트처럼 위대한 철학을 만들어낼 그릇이 되는 것도 아니고, 기회가 된다면 굳이 조금 다른 세상을 찾아보는 것도 좋지 않겠는가.

그래서 시작된 게 지금의 나의 긴 여행인 것 같다.
여행의 목적지와 시간, 기간, 목적 등이 한정 된 게 아닐 뿐 많은 벗들은 내게 ‘길 위의 사나이’라고 까지 부르고 있다.
오늘은 하루쯤 시간이 허락해 벌교에서부터 득량만을 돌아 보성까지의 바닷가를 돌아보게 되었다. 그리고 내일이 아니어도 다시 기회가 될 때 보성에서부터 강진만을 돌아 장흥에 이르는 길을 이어가는 방식이다.
장흥에서 다시 길을 이어갈 필요가 꼭 있을까?
목포쯤으로 버스로 이동하거나 다시 2박 3일쯤의 시간이 주어졌을 때의 출발점을 목포로 해 진도나 해남 땅을 돌아 볼 수도 있는 거다.
지금은 망설이고만 있다만 유럽에서의 60일정도 자전거를 몰아 눈빛이 다른 이국인들 속에서 부대낌을 행할 수도 있을 거다.

그런 여정 중간에 이 글을 쓰게 되었다.
여행의 목표나 목적지, 그리고 그 여행의 종료를 어떻게 할까를 정해두지 않고 시작된 여행인 것이다.
어떤 삶을 이루어 갈 것인가, 언제까지 어느 지점까지는 도달할 것인가가 분명하지 않고 확고하지 않다.
이 길의 끝이 어디일지 모르지만 길을 이어 살아 내는 게 우리의 인생이지 않겠는가.


때론 나의 ‘여행’과 ‘삶’이 한곳에 같이 머물러 알 듯 모를 듯한 설렘으로 흥분하기도 할 것이다. 삶과 여행이 한곳에서 만나 주체하기 힘든 벅참 정도의 기분일까?
때론 막막하고 지루하게 걸어가는 길 마냥, 재미없고 힘겨운 세상살이에 조금이나마 이런 여행이 위로를 주기도 할 것이다.
여행이 삶이요, 삶을 여행처럼 이어가고자 한다.
자전거의 페달을 굴러 체인과 바퀴를 거쳐 땅에 전해지는 게 내 몸과 마음의 의지와 노력을 세상의 합치시켜 가는 과정이라고 어느 작가는 말했다.
여행과 삶을 하나로 만들어 가기 위한 목적으로 이런 글을 남겨내고 싶다.

그 사이 사이에 고개들이 있고 고개를 이어가는 길들을 다루는 것은 소재에 불과할 것이다.
사람들에 대한 이해와 세상에 대한 식견, 그리고 무엇보다 그 안에 내가 빠진다면 재미없는 관광기에 불과할 것이다. 남들 배아프라고 남길 것은 더욱 아니어야 하기에...
내가 직접 걷고 오르고 달려온 길들을 다룰 것이다.
그 '행함'(길을 걷는 것을 산경표의 저자는 이렇게 표현했다고 한다)에서 나누고 싶었던 나의 마음을 정리해가는 작업으로 이해하고 이 글들을 바라보면 좀 더 이해가 깊어질 것 같아 이 글을 통해 다시 한번 강조한다.
내 삶의 몇 번은 되었던 고갯길의 이야기들이 이런 고개들을 넘어 가면서 들려줄 이야기 속에 담아내고자 노력할 것이다.

강원도 정선에서 태백을 넘는 두문동재. 두문동 터널을 넘어서면 태백까지 이렇게 구불구불한 길이 이어져 있다. 아직 자전거로 넘지 못한 길을 곧 넘어서고자 한다.

 

강원도 정선에서 태백을 넘는 두문동재. 두문동 터널을 넘어서면 태백까지 이렇게 구불구불한 길이 이어져 있다. 아직 자전거로 넘지 못한 길을 곧 넘어서고자 한다.

 

태백산맥을 넘어 두문동재라는 험난한 고개 너머의 태백이라는 신세계를 마주했을 때의 폭발적으로 요동치던 감동을 나의 이야기, 우리들의 이야기로 엮어보고자 한다.
돗재며 뱁재, 송곳재, 오도재, 율치, 기타 등등....
수없이 많은 고개들을 넘나들 때 그들은 내게 이런 목소리로 조용히 소곤거렸다.

‘길벗의 이 고개 넘음을 환영하고 축하한다’고...
길들이 내게 들려준 이야기, 내가 길에게 묻고 들었던 이야기들을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해 보겠다. / 김길중 한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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