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당재, 마당재, 노루목 같은 이름들이 무엇인지 아시나요?

그럼 조금 넓혀서 보광재, 용머리고개, 쑥재, 유치와 같은 것들은요?

이쯤에서 눈치를 채신 분들이 계실 것 같습니다.

조금더 힌트를 주자면 곰치재, 모래재, 우금치, 문경새재와 같은 것들이 이 이야기의 시작이 되는 것들입니다.

산행으로 도보여행으로 그리고 자전거를 통해 많은 길들을 걷고 달리고 오르기 시작한지가 4년째입니다.

우연찮게 시작된 우리 동네 산들에 대한 관심은 커지고 넓혀져 이제 전라남북도와 충청도에 이르기까지 제법 많은 길들을 찾고 있습니다.

요즘은 특히 고갯길들을 찾는 걸 으뜸으로 여기며 시간이 허락 하는대로 길을 나서고 있습니다.

제가 오르고 넘은 고개들이 낮게는 50여 미터에 해당하는 언덕들로부터 높게는 1천미터를 육박하는 험산준령도 많았습니다. 그중 이름이 붙어있는 고개들도 있고, 아무리 찾아도 찾아지지 않는 무명의 고갯길들도 많습니다만 대략 헤아려보니 수백개 이상의 고개들을 넘은 것으로 확인됩니다.

고개를 부르는 이름이 우선 많고 다양합니다. 영(嶺), 현(峴), 치(峙), 점(岾), 항(項) 등 한자 용어로 되어있는 것도 있고, 고개, 재, 목, 퇴, 티와 같이 한글로 이름 지어진 곳도 있죠.

대관령, 황토현, 우금치, 쑥고개, 배재, 노루목, 곰티와 같은 게 그런 이름들입니다.

그중 전주사람이라면 그래도 많이 들어봤음직한 보광재에 대한 간략한 이야기로 이야기를 꺼내 보겠습니다.

동서학동 흑석골에서 학산을 넘어 구이면 평촌으로 넘어가는 300미터쯤에 달하는 고갯길이 보광재입니다. 지금은 남원이나 순창으로 가는 길이 매우 다양하게 있습니만, 전주를 빠져나가 이런 고을로 넘을 때 가장 가깝고 많은 사람들이 찾은 길이 보광재였다고 합니다. 좁은 목이나 장승배기를 통해 가는 길이 훨씬 멀었기 때문에 빠르게 오갈 수 있는 곳이 사람들이 오가는 길이 된 것이지요.

주막이며 산적 같은 단어들이 전설의 고향과 같은 오래된 이야기만 같죠?

80쯤 되신 어르신들의 경우에 이런 이야기들이 생생한 오래되지 않은 이야기들입니다. 구이면 평촌에 사는 사람들이 나무를 해서 보광재를 넘어 남부시장 싸전에서 쌀로 바꾸어 오가던 길이 보광재 였다고 하는군요.

고개는 얼마전까지 사람들의 삶의 이야기가 곳곳에 배어 있는 역사가 살아있는 곳입니다. 그리고 곰티재며 배티재, 심지어는 용머리고개와 같이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한 채 숨쉬는 공간이기도 합니다. 임진왜란 때 호남을 점령하지 못한 왜군을 진안과 운주에서 막아서며 지켜낸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곳들입니다.

그리고 120여년전 동학 농민군과 관군이 피로써 지키고 빼앗고자 했던 일들이 시간이라는 고개를 넘어와 여전히 전해지는 터널이 용머리 고개인거죠.

지금은 어지간한 도로는 터널로 이어졌고, 고개를 넘어가기 위해 빙빙 돌아 넘던 길들이 쭉 펴져 사람들이 찾지 않는 고개도 많습니다만 오래되지 않은 시절에 고개는 중요한 길목이었습니다.

이 동네에서 저 동네로 넘어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넘어야 하는 것이 고개였고, 세상을 넓혀 다른 세상으로 나아가기 위한 통로가 고개였습니다.

넘어서지 않으면 않될 삶의 길이었고, 역사를 만들어 내고 넘어서야 했던 시대를 이어주는 통로였던 것이죠.

고개에 올라서 보면 우리가 사는 세상이 훤히 내려다 보이는 곳이 많습니다.

저기 어디쯤에 누구네 집이고 그 옆은 아무개네 집이며, 그 집엔 요새 어떠한 우환이 있는지를 가늠해볼 만한 정도로 우리가 사는 삶을 바라보고 스스로의 위치와 좌표를 성찰해 가기 좋은 대목이 고개라고 할 수 있지요.

저는 자동차와 터널로만 이어지는 길들에서 간혹 좌표를 잃어버리곤 하는 우리들, 그런 우리가 살아가는 열악한 사회가 현대사회의 우리라고 생각합니다.

자전거로 고개를 오르다보면 정말 수없이 되뇌어지는 고민들이 있습니다.

여기서 쉴까? 조금만 더 가볼까? 아니면 도로 돌려 내려갈까?

쉬면 쉬는 횟수만큼 힘들어 지는 게 고갯길 오르기입니다.

인내하고 밟아 나아가는 것만큼 자신감으로 무장하고 힘을 얻어 한발 한발을 굴려 가는 게 고갯길을 넘는 가장 큰 원동력입니다.

넘지 않으면 안되겠다는 오기와 도전을 통해 저는 한 고개 한 고개를 넘어서, 고개 너머의 또 다른 세상들을 찾느라 분주합니다.

오기가 성찰로 이어지고 도전이 성취로 쌓여 가면서 저는 세상을 알고 나를 알게 되고 우리가 가는 길, 내일에 대해 능동적으로 만나가고 있다고 여깁니다.

이 글을 쓰는 '길벗'은 김길중 한의사입니다. 전주에서 일하고 있으며, 자전거 타기를 즐깁니다.

제가 넘어가는 고갯길들에 대한 소개가 될 수 있겠습니다. 그리고 그 안에 담겨진 옛이야기들일 수도 있고, 자전거를 타는 즐거움을 같이 나누는 이야기가 될 수도 있겠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에 대한 이야기 일수도, 내일로 넘어가기 위한 오늘의 우리들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그 속의 나에 대한 이야기들도 담겨지게 될 것 같습니다.

이 모든걸 이렇게 말할 수 있겠네요.

우리는 오늘로부터 내일로 넘어가는 수없이 많은 고갯길 넘기를 숙명으로 타고난 인생들이며, 그 인생 재미지고 알차게 넘어서 내일로 같이 같으면 하는 이웃들과의 동행...

그게 우리가 '잘 살아가는 법' 이라고 감히 그 출발선에서 말합니다. / 김길중 한의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