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조사 결과를 놓고 본격 출정을 앞둔 선거판이 뜨겁습니다. 언론사에서 잇따라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가 천차만별입니다. 지지율이 높게 나온 후보 진영은 홍보에 열을 올리고, 낮게 나온 후보측은 해명, 혹은 반박하느라 진땀을 빼고 있습니다.

전북에서 최근 보도된 한 여론조사는 응답률이 20%를 넘는 것으로 나왔습니다. 조사 결과의 신뢰도를 떠나 이같은 응답률은 불가능하다고 봅니다. 우리가 상식적으로 생각해 봐도 5번의 여론조사 전화 가운데 1번이라도 응하신 적 있나요...? 또 전화를 받은 5명 가운데 1명이 답변에 응하는 상황이던가요...?

강찬구 전북포스트 발행인

전화여론조사 응답률은 근래에 5%를 넘지 못합니다. 기계음으로 시작되는 ARS(전화자동응답)는 2-3%가 일반적입니다. 상담원이 전화를 한다 해도 10%를 넘기기 어렵습니다. 일단 조사대상자들이 전화를 받질 않습니다. 입력되지 않은 생소한 전화번호. 여러분은 의심 없이 바로 받나요...?

지금은 통신 환경상 전화여론조사가 쉽지 않습니다. 모르는 번호로는 전화 통화 자체가 어려우니까요. 일반전화나 모바일을 통한 조사나 마찬가지입니다.

전화여론조사의 가장 큰 적은 ‘보이스피싱’입니다. 전화를 통해 사기 당한 사람이 주변에 한두명씩은 있을 겁니다. 여론조사를 빙자한 보이스피싱도 있을 겁니다. 그래서 모르는 번호가 뜨면 보이스피싱을 먼저 생각하고, 이런 전화는 받지 않는 게 '상수'라는 생각이 만연해 있습니다. 거기에 기계음까지... 그래서 ARS 방식은 막을 내렸다고 봅니다.

모바일폰의 경우도 모르는 전화번호는 아예 받지 않기 일쑤고, 설혹 여론조사 전화를 받게 된다 해도 통화에 응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여론조사에 응할 정도로 한가한 시간들이 없습니다.

사무실에서 다른 사람들은 일하는 데 여론조사 통화를 하는 것도 멋쩍을 일입니다. 사람들 만나 식사나 술자리를 하는 경우에도 모르는 전화를 받고, 여론조사에 성실하게 응한다는 것은 여간 성의를 가지지 않고는 어렵습니다. 자동차 운전 중에 통화를 하면 도로교통법 위반입니다. 통화를 할 수 있는 기회와 여건이 쉽지 않습니다.

결국 여론조사에 응하는 사람은 특정 번호를 통해 여론조사가 실시되고 있다는 점을 알고 있으면서도 선거에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결국 선거와 직간접적으로 연관된 사람들에 국한된다고 봅니다.

여론조사 기관에서 여론 조사를 할 때는 모집단을 세밀하게 분석해 표본 집단을 만듭니다. 그나마 표본집단이 정확해야 결과의 신뢰도가 높습니다. 지역별, 성별, 연령별 분포에 따라 비율에 맞게 표본 집단을 추출하고, 이들을 대상으로 조사가 이뤄져야 하지만 현실적으로 어렵습니다.

전화상으로는 조사자의 답변에 절대적으로 의지하고 있습니다. 조사자가 의도를 갖고 왜곡할 경우 바로잡을 길이 없습니다. 이렇게 조사 결과가 나온다 해도 표본 비율이 맞지 않을 경우 가중치를 두고 다시 계산을 합니다. 이 과정에서 신뢰도는 툭툭 떨어지게 돼 있습니다.

여론 조사는 조사 시간대에 따라서도 큰 차이를 보입니다. 낮시간대와 밤시간대, 평일과 주말에 따라 조사 결과가 완전히 달라질 수 있습니다. 선거를 앞두고는 여론조사기관들도 ‘대목’이어서 각 조사마다 최선을 다한다고 기대하기는 어렵습니다.

조사 방식과 질문 배치에 따라서도 결과는 크게 다릅니다. 어느 후보를 앞에 두느냐에 따라, 어떤 후보와 대결 구도를 제시하는가에 따라 답변은 달라집니다. 후보에게 수식어가 붙을 경우 더욱 달라집니다. 대체적으로 교수와 변호사 등 전문직이나 공직자 출신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여론조사의 ‘허’와 ‘실’을 말할 때 전범으로 꼽히는 연구 사례가 있습니다. 오래전 사례이긴 하지만 교과서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미국시민을 대상으로 ‘미국에 소련기자가 상주하면서 자유롭게 취재하고 기사화 하도록 한다.’는 질문입니다. 먼저 이 질문을 단일항목으로 놓고 조사했을 때 38%가 지지했습니다. 이 질문 앞에 ‘소련에 미국 기자가 상주하면서 자유롭게 취재하고 기사화 한다.’는 질문을 배치하고, 그 뒤에 같은 질문을 놓았을 경우 지지도는 73%로 뛰어 올랐습니다.

이같은 조사 왜곡은 행정 기관 등에서 사업 명분을 찾을 때 주로 이용하는 기법입니다. 지자체가 추진하고자 하는 사업의 당위성을 만들 때, 그 전에 긍정적 답변을 이끌어낼 수 있는 질문을 먼저 던지는 겁니다. 단일 질문을 제시했을 때보다 지지도가 당연히 높게 나옵니다.

여론조사 전문가들은 조사자들의 의식 흐름을 잘 알고 있습니다. 결국 여론조사를 어떻게 설계하는가에 따라 원하는 결과를 유도해낼 수 있습니다. 선거 여론조사에서도 의도적으로 결과를 왜곡하고자 한다면 거기에 맞게 설계를 최적화할 수 있습니다. 설계자는 원하는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의미 없는 여론조사에 후보 진영은 왜 목을 매는 것일까요...? 이런 엉터리 여론조사에 연연하지 말고 자신의 길을 묵묵히 가면 되지 않을까요...? 그런데 이게 그렇게 만만히 볼 사안이 아니라는 것이 문제입니다.

선거여론조사에서 우위를 점하는 후보가 선거 과정에서도 유리하다는 연구 결과들이 나온 겁니다. 이는 커뮤니케이션 이론에서 얘기하는 ‘밴드웨건 효과’와 ‘침묵 나선의 이론’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밴드웨건 효과’는 다른 말로 ‘편승효과’라고 합니다. 말 그대로 '북 치고 장구 치는' 유인책입니다. 서부개척시대의 역마차 밴드웨건이 악대를 앞세우고 행진하면 사람들이 모여들어 뒤따른다는 데서 유래했습니다. 후보자들이 개소식을 하고, 출판기념회를 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대중은 다수가 지지하는 방향으로 이끌린다는 이론입니다. 1등에게 편승하는 경향이 강하다는 거죠. 약장수들이 물건을 팔면서 남발하는 ‘세계 최초“ ”남들 다 쓴다.“식의 수사도 편승을 유도하기 위한 의도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그래서 후보들마다 엉터리든 아니든 여론조사에서 우위를 점하려고 발버둥을 치는 것입니다.

‘침묵 나선의 이론“은 다수의 여론은 계속 상승하고, 소수 여론은 침묵하게 된다는 이론입니다. 이는 지난 ’<정치잡담 9> 말이 없다고 속도 없는 건 아니죠...'(http://www.jbpost.co.kr/news/articleView.html?idxno=5450)에서 자세하게 설명드렸습니다.

여론조사는 믿지는 말되 참고는 하시라고 누차 말씀 드립니다. 그렇다고 외면할 수도 없는 게 현실이긴 합니다. 

조사 과정에서 왜곡이 가능하기 때문에 선거법에서는 선거 여론조사에 대해 주목하고, 여론을 왜곡하는 여론조사에 대해서는 강력하게 단속합니다. 언론기관이 여론조사 결과를 공표할 때는 조사 내용과 방식, 신뢰도와 오차, 응답률, 질문 내용까지 구체적으로 제시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 강찬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