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우리 집 마당의 땅꼬마들 1

<땅꼬마 이야기는 퇴직하고 만난 독서모임의 단톡방에서 오고 간 내용에서 비롯됐음을 밝힌다. 이 시리즈는 계속 이어지지 않고 중간 중간에 양념으로 들어갈 예정이다. / 글쓴이 주>

이 글의 단초가 된 단톡방 이야기.

장미 네 그루

우리 집은 담장이 없기 때문에 꽃의 여왕으로 불리는 장미를, 그중에서도 넝쿨장미는 언감생심 생각조차 할 수 없다. 마침 잘 되었다. 들은 바에 의하면 장미는 진딧물 등의 벌레가 많이 꼬인다고 한다. 게다가 나는 가시를 싫어한다. 그래도 꽃 중에서 최고라는데…….

두 마음이 왔다리 갔다리 하였다. 겉으로는 화려해 보이지만 속은 그렇지 않다는. 문득 필립 클로델이 만든 영화 『차가운 장미』가 떠오른다. 남들 보기에 부러울 것이 없는 중산층의 중년부부에게 의문의 붉은 장미꽃이 배달되기 시작하면서 닥친 균열, 인생의 이면이 흥미진진했던 영화다.

겉보기에 그럭저럭 살아온 나에게 질문 - 당신은 스스로 이끄는 삶을 살았는가. 살다보니 이끌려서 여기까지 왔는가 – 하게 만들었다. 이 영화의 제목 장미 앞의 형용사 ‘차가운’은 별다른 의미부여가 없음에도 나는 이 수사가 좋았다.

2024년 6월 중순 - 가뭄 탓으로 돌리고 싶은...

지난해 6월 어느날 - 비가 많이 왔었다.

하여튼 꽃집의 주인장은 나에게 담장이 없어도 키울 수 있다면서 땅딸막한 장미를 적극 권장했다. 1미터 안팎 정도는 자라고, 땅위에 던져만 놔도 산다는 말을 찰떡같이 믿은 나는 생각보다 비싼 가격에도 불구하고 색깔별로 꽃을 샀다.

아직은 여리여리한 것이 손이 타야 할 것 같아 잔디밭 끝 흙이 시작되는 맨 앞에 심어 놨다. 여왕의 격조에 맞추어 다닥다닥 심지 않고 띄엄띄엄 자리를 많이 내주었다. 키는 작지만 자존심과 품위를 유지해 주기를, 연둣빛 담장에 붉고 - 희고 노란 장미들에 치이지 않기를 바라마지 않았다.

그날은 하필 꽃샘추위가 온다는 예보가 있는 날이었다. 아무려면 영하 5도까지 내려가지는 않겠지? 하루저녁 묵혔다가 심을까. 에라, 모르겠다. 너에게도 운명이란 것이 있겠지 하고는 덜컥 심어 버렸다.

깊은 밤이 시작되자 나는 좌불안석이 되었다. 바람소리가 예사롭지 않았던 것이다. 바깥 날씨를 가늠하느라고 현관을 들락날락거렸다. 저 어린 삭신들 내박쳐 두고는 잠이 오지 않을 것만 같았다.

주위를 둘러보았더니 수돗가 옆의 장독대가 보였다. 저것이면 충분하겠다. 항아리를 답삭 안아다가 장미 위에 엎어놓았다. 하하! 이 정도면 영하 5도쯤은 거뜬히 이겨낼 것이다. 맘이 편안해져 아침이 밝는 줄도 모르고 잠을 잤다.

아니 이게 무슨 소리람. 남편이 나에게 어젯밤에 무슨 짓을 한줄 아느냐고 입술을 씰룩거린다. 장미위에 소금단지를 엎어놓으면 어떡하느냐. 소금꽃이 된 장미를 탈탈 털어내고, 흙 위 소금도 걷어냈으니 그쯤 알고 있으라 한다. 이것이 무슨 난리 블루스란 말인가.

나는 확인하기 위해 장미 앞으로 갔다. 뿌연 가루가 여기저기 남아있었다. 손가락으로 찍어 맛을 봤더니 과연 소금이 맞았다. 나는 이파리들을 살살 털고 문지르고 바닥의 굵은 소금도 일일이 주워냈다. 그리고 장독대로 가서 항아리를 열어보았다. 거기에 소금이 아직도 엉겨 붙어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러니까 그 항아리는 비어있던 것이 아니라 수년간 소금을 담아놓고 조금씩 퍼다 쓰고 남은 게 바닥에 남았던 것이다.

2024년 6월 중순 - 마지막 꽃잎인가...?

지난해 6월 어느날 - 찬란했던 시간

어머니 생전에 이런 일이 있었다. 내가 폐경(월경을 완성한다는 뜻인 ‘완경’이란 표현을 쓰라고 딸내미가 일러줬건만…….)이 된 후 몸 이곳저곳이 까탈을 부리기 시작했을 때였다. 머릿속이 가려워 며칠째 고전하다가 굵은 소금을 물에 녹여서 머릿속에 바른 적이 서너 번 있었다.

이 얘기를 들은 어머니는 “소금이 몸에 해로운 짓은 하지 않으나 머리에는 절대로 쓰지 말라.”고 말씀하셨다. 머리카락이 바스러진다고. 나는 달려가 머리를 헹구었다.

지금도 나는 처음 심었던 때보다 키가 줄어들고 덩치도 시원찮은 장미를 볼 때마다 꽃샘추위가 왔던 그날 밤 소금에 절여져서 그런가 보다. 땅꼬마가 된 것이 내 탓인 것 같아서 면목이 없다.

어디 땅심을 믿어 볼까나. 이것저것 무시하고 싹 뽑아버릴까. 병들고 약한 것들을 쳐다볼 때마다 내 마음이 여간 편하지 않다.

영화 『차가운 장미』를 다시 한 번 보고 싶어서 ‘왓챠’에 들어가 보았다. 올라왔던 흔적은 있으나, 지금은 사라져 버렸다. 나는 이 영화를 예술영화관에서 보았고 그때도 관객은 많지 않았다. 하지만 내 기억에 오래 머물렀던 영화이다.

소설가이기도 한 필립 클로델이 만들고 역시 크리스틴 스콧 토마스가 나오는 『당신을 오랫동안 사랑했어요.』도 좋았던 영화였다. 이 영화라도 다시 봐야겠다. 아무래도 장미는 나와 궁합이 잘 맞지 않는 것 같다. / 이현옥

글쓴이 / 이현옥 전 우석대학교 도서관 사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