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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자가 읽은 시> 1. 막걸리 - 천상병
전북포스트  |  jbpost201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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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3.01.01  16:3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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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막걸리 / 천상병

 

경제학이 일반인에게 외면당하는 이유가 뭘까. 복잡다기한 사람의 마음을 객관화, 수량화, 모형화, 정식화하려는 데 있지 않을까. 사회와 분리 불가능하고 심리와도 분리 불가능하고 정치와도 역시 분리 불가능한 경제를 뚝 떼어내 한 모형으로 정리하려는 일련의 시도가 이론의 정교함을 제공한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경제(모형)의 깔끔함이 중요한 게 아니라 우리 마음에 들어와 함께 느끼는 경제가 더 중요하다. 그렇지 않고서야 막걸리가 ‘하느님의 은총’이라 하는 시인이 마음을 읽을 수 있겠는가?

 

나는 술을 좋아하되

막걸리와 맥주밖에 못 마신다

 

막걸리는

아침에 한 병 사면

한 홉짜리 적은 잔으로

생각날 때만 마시니 거의 하루 종일 간다

 

맥주는

어쩌다 원고료를 받으면

오백 원짜리 한 잔만 하는데

마누라는 몇 달에 한 번 마시는 이것도 마다한다

 

세상은 그런 것이 아니다

음식으로 내가 즐거움을 느끼는 때는 다만 이것뿐인데

어찌 내 한 가지뿐인 이 즐거움을 마다하려 하는가 말이다

 

우주도 그런 것이 아니고

세계도 그런 것이 아니고 인생도 그런 것이 아니다

목적은 다만 즐거움인 것이다 즐거움은 인생(人生)의 최대목표이다

 

막걸리는 술이 아니고 밥이나 마찬가지이다

밥일 뿐만 아니라 즐거움을 더해주는 하느님의 은총인 것이다

-천상병, 「막걸리」, 전문.

 

시에 문외한(門外漢)인 내가 읽어도 시인 천상병의 ‘맑음’이 그대로 드러나는 시이다. 시인은 박정희 대통령 시절 ‘동백림 사건’에 연루되어 모진 고문을 받았다. 그 후유증으로 말도 어눌하고 얼굴 생김새도 보통 사람과 조금 다르다. 그러나 총기(聰氣)는 그대로 있기에 좋은 시와 글을 꽤 많이 썼다. 중년 이후 목순옥 여사와 함께한 행복했던 시간이 있었기에 강탈당한 억울한 세월이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었을까. 시인은 술을 좋아한 모양이다. 술꾼의 술은 소주인데 맥주와 막걸리만 거론하는 걸 보니 술에 강한 분은 아닌듯하다. 맥주는 비싼 술, 막걸리는 싼 술로 구분되고 서민인 시인이 맥주를 즐겨 마신다는 것을 생각할 수 없었던 때가 1980년대 초반까지였다.

경제이론에서 개인의 효용은 매우 중요하다. 소비자이론에서 재화소비가 증가하면 효용이 증가하며 개인소비자는 효용을 극대화하는 것이 목적이다. 효용이란 주관적이므로 객관적 기준으로 측정하기는 곤란한 일이다. 그러나 한계효용학파에서 기수(基數, cardinal number)적 효용에 대해 언급했고 이것이 주류이론으로 자리 잡았다. 즉 재화소비로부터 얻는 개인의 효용을 측정 가능하다고 본 것이다. 막걸리 한잔이 주는 만족의 크기는 5, 막걸리 두 잔이 주는 효용의 크기는 8, 이런 식으로 측정 가능하다고 가정한 것이다. 얼핏 생각해도 술이 센 사람도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는데 또 술을 좋아하는 정도도 사람마다 다른데 어찌 객관화시켜 측정할 수 있겠는가? 어려운 일이다.

원고료 받는 날, 항상소득(permanent income)이 아닌 ‘특별한’ 소득이 발생한 날이다. 따라서 특별하게 좀 더 소비하고 싶은 것이 사람 마음이다. 그런데 시인의 아내가 이를 말린 모양이다. 합리성의 관점에서 보면 소비의 불가역적 상황, 즉 일단 한번 증가된 지출을 다시 감소시키는 것이 곤란하다는 점을 참조할 때 아내의 말은 백번 옳다. 그러나 사람 마음이 어디 그러한가! 돈이 들어왔는데 평상시 못 마셨던 오백 원짜리 맥주 한잔하고픈 생각이 간절할 것이다.

사람이 사는 것, 시인의 말처럼 즐거움이 목적이어야 한다. 즐거움이 인생의 최대목표이어야 한다면 원고료 들어온 날 꿈에 그리던 맥주 한잔 마시는 것은 꼭 필요하다. 그 즐거움을 저지하려는 아내의 말과 행동은 시인의 관점에서 못마땅하다. 하지만 시인은 다시 평상심으로 돌아간다. 막걸리 예찬으로 바뀌어 막걸리는 술이 아니고 밥이며 게다가 즐거움을 주는 원인이다. 나아가 막걸리는 하느님의 은총이기도 하다.

막걸리가 시인의 만족에 미치는 영향과 맥주가 시인의 효용에 미치는 영향은 일반화되기가 어렵다. 다른 사람이 선호하는 재화, 다른 사람이 효용에 큰 영향을 주는 소비재를 대상으로 평가해도 마찬가지이다. 이처럼 효용이란 주관적이므로 객관적 평가를 시도하는 것 자체가 문제가 있다고 생각된다. / 최영한 전 웅지세무대 총장

 

   
최영한 전 총장은 충남 논산에서 출생하여 서울대학교 사범대를 졸업했다. 경제학 박사이며 웅지세무대학교 총장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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