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전주의 아침

순옥의 가슴에 비수가 꽂혔다. 노량의 싸움에 나간 남편이 전사(戰死)했다는 소식이었다. 순옥은 귀를 의심했다. 절대 그럴 리가 없을 것이었다. 태산을 무너뜨릴 것 같은 기세와 기백을 가진 이가 이영남이었다. 칼을 함부로 뽑는 사나이도 아니지만 일단 칼을 뽑으면 혼자서도 능히 왜구 천 명을 베어버릴 만한 실력자가 남편 이영남이었다.

전사라니. 순옥은 넋이 나간 듯 보였다. 머리를 풀어 헤칠 새도 없이 통제영 본영 정문 앞으로 내달았다. 남편이 죽다니 이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순옥은 남편의 죽음을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꾸리고자 했던 사람, 양반과 왜구에 쫓겨 다니다 간장(肝臟)에 박혀 곪아 터진 자신의 상처를 입으로 빨아냈던 남편, 흰옷 입고 두 아들과 뙈기밭 뙈기논을 일구며 바람과 햇살과 새소리를 벗하고 싶다던 남편이 전사했다니.

“통제사 장군을 만나게 해주시오. 나는 첨사 이영남의 안사람이오, 이순신 장군을 만나게 해주시오!”

그러나 정문을 지키는 병사도 눈물만 흘릴 뿐 대답이 없었다. 순옥의 앞뒤로 오가는 병사들은 한결같이 얼굴이 어두웠다. 남편 이영남의 전사가 통제영 전체를 비탄에 잠기게 했단 말인가. 이영남의 위치가 그 정도였단 말인가. 그러나 그게 아니었다. 이영남을 친자식처럼, 친조카처럼 아꼈던 통제사 이순신 장군이 전사(戰死)했기 때문이었다. 자신의 오빠 김대수가 전사했을 뿐만 아니라 노량 싸움에 임한 수많은 병사가 전사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시신을 찾을 수조차 없었다고 병사들은 고개를 떨구었다. 청천 하늘에 빛나는 해가 스스로 빛을 거둘 만한 일이었다.

순옥은 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넋이 빠진 사람처럼 타박타박 어딘가로 향했다. 지금 어디로 가는지를 자신도 몰랐다. 발길 닿는 대로 무작정 걸을 뿐이었다. 통제영이 한산도에 있을 때가 생각났다. 거기서는 살 만했다. 전쟁이 꽤 오랫동안 소강상태였으므로 이영남을 자주 볼 수 있었고 집에 돌아와 군복을 벗는 남편의 표정은 밝았다. 밖에서 무슨 일이 생겼어도 집에 와서는 이를 티 내지 않고 너털웃음을 터뜨리곤 했던 남편. 스물다섯 살의 전주 사나이, 입에 맞지 않는 음식이 없을 정도로 영남은 먹성이 좋았다. 의길과 득길 두 아들에게도 살가웠다.

새 통제사 원균은 이영남을 멀리했다. 아니 저절로 멀어졌다. 휘하 장수들과 만나는 일 자체를 달갑게 여기지 않는 원균이기 때문이었다. 동료들은 조선 수군의 악질 병균이 원균 통제사 아니냐고 농담할 정도였다. 이영남은 이런 동료들을 나무랐고 원균을 원망하지도 않았다. 자신의 군영에 속한 무사들과 훈련하는 일에 전력했다. 통제사 이순신 장군의 부관이 된 후부터 시작된 일이었으므로 이 훈련은 생소한 일일 수 없었고 이영남도 크게 불편한 기색이 없었다.

이순신 장군이 한양으로 압송되고 백의(白衣)의 몸으로 돌아온 후 전투는 어찌 되었던가. 원균 통제사는 처참하게 깨졌다. 자신만 깨졌다면 이는 개인의 불행으로 돌려도 무방한 일이었다. 원균의 패퇴는 조선 수군이 궤멸당했음을 뜻했다. 돌이킬 수 없는 처참한 패배였다. 한 사람의 잘못된 욕망, 한 지휘관의 그릇된 판단이 떼죽음의 결과를 낳았다면 이는 역사에 피를 토하면서 사죄해야 할 일이었다. 그러나 사죄도 하기 전에 원균은 어딘가에서 죽었다고 했다. 남편 이영남은 원균의 죽음을 전사(戰死)라고 하지도 않았다.

순옥은 집에 도착해서 검은 옷으로 갈아입었다. 남편의 시신조차 볼 수 없는 참담한 심경을 억누를 길이 없었지만 소리 내어 곡을 할 수도 없었다. 통제사 이순신 장군도 전사한 데다 전사자가 너무 많았다. 남편은 이순신 장군과 자주 만났고 술잔도 자주 기울였다. 통제사는 해전을 마쳤을 때마다 상세하게 조정에 장계를 올렸다고 했다. 누가 공을 세웠고 누가 용감했는지 누가 전투에 방해자였는지까지 공평하게 적었으며 거기에 맞는 상도 내렸다고 했다. 이순신 장군의 장계를 일개 아녀자가 볼 수 없었겠지만, 적어도 남편의 최후는 들을 수 있을 것이었다. 그러나 조정에 장계를 올릴 이순신 장군은 전사했다. 시신조차 없는 남편이 어디에서, 어떻게 목숨이 끊어졌는지도 알 길이 없었다.

고금도 통제영 근처의 집들은 두 집 건너 초상집이었다. 전쟁이란 이런 것이었다. 하루아침에 전쟁고아를 만들고 하루아침에 전쟁 과부를 만들었고 하루아침에 산천을 통곡의 무덤으로 만드는 것이 전쟁이었다. 죽은 자도 억울하지만 산 자의 가슴에 대못질하는 저주가 전쟁이었다. 전쟁이 남긴 피 울음을 돌려받는 것은 다시 만백성이었다. 누가 이 용서받지 못할 짓을 저질렀단 말인가. 도대체 누가 만백성에 천벌 받을 짓을 자행했단 말인가. 죄는 분명히 있는데 죄인도 분명히 있는데 죄를 저지른 적군이 보이지 않았다. 이것이 현실이었다. 어쩔 수 없는 슬픈 현실이었다. 순옥은 제 가슴을 쥐어뜯으며 억장이 무너지고 있었다. 이제 어디에서도 남편을 볼 수 없었다. 이영남의 목소리도 들을 수 없었다. 당신이 입고 있었던 갑옷이 당신의 수의(壽衣)였고 그토록 지키고 싶었던 바다가 당신의 무덤이었단 말인가.

장례를 치러야 했다. 영위(靈位)에 뭐라고 적어야 할지 순옥은 난감했다. 동네 어른 몇이 조심스럽게 짚단을 풀고 있었다. 짚으로 사람 형상을 짓고 있었다. 뱃사람들 특유의 장례식이었다. 남편이 어부가 아니었고 고기 잡으러 나갔다가 풍랑을 겪어서 시신을 못 찾은 것도 아니지만 순옥은 동네 어른들 뜻에 따랐다. 남편은 노량해전에 출정하기 전날 머리카락을 잘랐고 손톱과 발톱을 잘라서 순옥에게 전했다. 이번 전투에서도 우리가 승리하겠지만 이건 전투에 임하기 전에 의례적으로 하는 일이니 신경 쓰지 말라면서 머리카락과 손톱 발톱을 전했다. 하지만 남편의 신체 일부를 여기에 묻을 수는 없었다.

짚으로 엮어서 지은 남편의 형상에 수의를 입히고 두 아들에게도 검은 옷을 입혔다. 전쟁통이라 수의랄 것도 없고 상복이랄 것도 없었지만 형식은 갖추었다. 이레가 지나면 통제영을 떠날 것이었다. 자신에게 정다웠던 많은 이들을 천천히 지워갈 것이었다. 그들도 자신을 천천히 잊으리라. 그러나 잊을 만하면 되살아나서 가슴을 쓰리게 하리라. 이레가 지나면 짚으로 지은 남편의 형상을 땅에 묻은 뒤 고금도 통제영의 흙 한 삽을 떠서 전주로 떠날 것이었다.

순옥은 남편과 함께 와키자카의 안택선에 뛰어들었던 27명의 무사들을 차례로 돌아봤다, 자신의 오빠를 포함한 27명의 무사, 짚으로 형상을 지어낸 혼에 대한 예를 치렀다. 오빠 대수는 처자식이 없었지만 다른 무사들의 처지는 이와 달랐다. 남편 이영남을 따랐던 무사의 집을 거칠 때마다 통곡 소리가 터지고 억장이 막혔다. 숨을 고르고 영위에 술을 올렸다. 말은 필요 없었다. 군인이 죽어야 할 곳은 전쟁터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을 무사들이겠지만 죽음이 남긴 가족의 현실은 고통스러웠다. 이제 사람을 가슴에 묻은 그 고통이, 억장 막히는 쓰라림이 남편을 앞세운 아낙네들의 일용할 양식이 되리라.

고금도의 흙 한 삽과 어린 자식과 함께 찾아갈 곳은 전주였다. 남편 이영남이 두 아들과 돌아가고 싶었던 곳. 흰옷을 입고 농사지으며 살고 싶었던 곳. 땀을 흘린 만큼 결실이 알곡처럼 여무는 곳. 전주부 구이면에 집이 있다고 했던가. 1598년 섣달 초, 이영남 장군의 세 번째 부인 김해김씨 순옥은 의길과 득길을 데리고 본가에 도착했다. 본가에 있던 첫째 부인 전주장씨는 사망한 뒤여서 태인허씨가 맞이했다. 둘째 부인 태인허씨가 인길, 항길, 함길을 두었다고 들었는데 집에는 함길뿐이었다. 경황이 없어 인길과 항길을 물을 수 없었다.

전북 완주군 구이면 신원리. 전의이씨 문중 선산에 이영남 장군의 초혼묘를 썼다. 남편이 남긴 머리카락과 손톱과 발톱을 고금도에서 퍼온 흙 위에 얹었다. 세 아들은 아직 죽음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몰라서 표정이 맑았다. 노량의 바다 근처에서 김씨가 퍼온 흙 한 삽을 관 대신 집어넣고 봉분을 올렸다. 사람을 차별하지 않았던 이영남 장군, 모든 사람이 서로 대접하고 대접받는 세상을 그리워했던 남편, 재물을 가졌다고 해서 뻐길 것도 없고 못 가졌다고 해서 기죽을 일도 없는 평등 세상에서 흰옷 입고 농사를 짓고 싶었던 남편. 두 아들에게 몽근불처럼 정답던 아버지.

순옥은 술잔에 술을 따르고 이영남 장군과 하직했다. <끝>

글쓴이 / 이병초 시인. 웅지세무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