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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바다에 떨어진 겨울 햇살(3)- 이병초의 '노량(露梁)의 바다'이순신 장군과 함께 전사한, 전의인(全義人) 이영남 장군의 불꽃 같은 삶!
전북포스트  |  jbpost201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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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2.07.03  16:2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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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 바다에 떨어진 겨울 햇살

<3>

와키자카의 안택선 갑판에서 이영남은 뒤를 돌아봤다. 부하들이 어떤 상황인지 살피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부하들이 보이지 않았다. 용맹 무쌍한 조선 무사들이 왜군들의 목숨을 거두는 것에 진력이 났을까. 아니면 천지 분간을 모르고 덤비는 적에게 당한 것일까. 쉽게 당할 부하들이 아니지만 말이다.

훈련만큼은, 자신이 계급장을 떼버리고 부하들과 함께했던 훈련만큼은 그 어떤 때보다도 강하고 혹독했다. 실전을 방불케 한, 백병전을 염두에 둔 진검 훈련이었다. 칼집에서 뽑힌 일본 칼은 살의(殺意)의 광채가 났고 칼의 길이나 날카로움은 조선의 칼이 따라갈 수 없었다. 목숨을 베는 데 능한 일본의 칼을 이길 수도 없었다. 그러므로 새로운 검법이 절실했다.

적이 자신의 목숨을 위해(危害)하려고 할 때 먼저 번개같이 급소를 찔러 단번에 목숨을 취하는 법. 이것은 무자비한 학살을 감행한 왜군의 잔인한 검법을 응용한 것이었다. 왜군의 칼날이 번뜩이기 전에 조선의 칼이 먼저 왜적의 목에 닿으려면 눈이 밝아야 했다. 적의 낌새를 읽는 야성이 발달해야만 적의 목숨을 낙엽처럼 우수수 날릴 수 있었다. 조선의 역사에서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살상용 검법. 27명으로 추려진 부하들은 여기에 맞춰서 진검으로 훈련한 것이었다.

여기에 김대수의 해박함이 덧붙여졌다. 매사 끊고 맺음이 분명해야만 자신이 누군가에게 이용당하지 않는다면서 김대수는 현재 조선의 상황을 설명해가곤 했다. 조선 의병과 관련된 얘기를 할 때는 눈알이 빛났다. 의병장 김덕령의 죽음(1596년)에 치를 떨었다. 의병장은 유생(儒生)이었어도 의병의 주축은 농민과 노비가 포함된 평민이었다. 늘 착취당한 데다 무시당하고 멸시받기 일쑤인데 나라가 위기에 빠지자 자신들을 짐승 대접했던 나라를 위해 목숨을 내던진 기막힌 조직이 의병이었다. 그런데 의병의 총사령관 격인, 기층민중의 피눈물을 또렷이 알고 있는 김덕령 장군이 죽다니. 이몽학의 난에 연루되었다는 거짓 보고에 속은 선조는 김덕령을 데려와서 정강이뼈가 부러지고 피부가 벗겨지는 고문을 했고 결국 그는 장살(杖殺)되었다. 대수는 이 얘기를 하면서 턱을 덜덜덜 떨었다.

김대수가 볼 때 김덕령 장군이 죽임을 당한 이유는 한 가지였다. 그가 죽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의병장을 대표하는 고경명, 김천일, 최경회, 조헌 등의 의병장들은 전사(戰死)했는데 김덕령은 전사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오히려 백성의 신망이 더 두터워지고 있었다는 게 그를 죽일 수 있는 결정적 이유가 되었다는 게 김대수의 생각이었다. 이런 임금이 지금의 국왕이라는 것을, 국가에 충성을 다했어도 국왕보다 백성들의 신망을 더 받은 자는 누구든 죽을 수밖에 없는 게 저주스러운 현실이 오늘임을 모를 의병은 없었다.

김덕령 장군의 죽음 이후 남도에서는 의병이 일어나지 않았다. 홍의장군 곽재우는 더 깊은 산속으로 들어갔고 전투에 출중한 능력을 발휘했던 장수들도 초야에 숨어버렸다. 그러므로 통제사 이순신 장군을 의금부에 끌어와서 고문을 가하는 일이 선조에겐 조금도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는 것 또한 김대수의 생각이었다. 결국 군왕 선조도 권력을 유지하고자 하는 어좌(御座)의 시종이었음을 대수는 꿰뚫어보고 있었다. 권력자들이 흔히 그렇듯 백성들의 신망이 두터워진 신하를 남겨두어서 반정(反正)의 빌미를 주느냐, 적당한 기회에 싹을 잘라서 반정의 기회를 주지 않느냐, 여기에 선조의 생각이 머문다는 말도 대수는 빠뜨리지 않았다.

밤낮을 가리지 않고 훈련에 임했던 무사들. 김대수의 말에 웃고 울면서 더러 치를 떨면서도 비분강개를 마음속으로 감출 줄 알았던 자신의 부하들. 그들이 보이지 않았다. 최정예 무사 27명의 우두머리 격인 김대수도 보이지 않았다. 모두 어디로 간 것이냐. 전멸된 것이냐, 왜장 와키자카의 목을 따오겠다는 각오로 안택선으로 뛰어들었고 그러함으로써 조선의 대장선을 보호할 시간적 여유를 가져오겠다는 것이 목적인데, 그것을 다하기도 전에 부하들은 몰살당해버렸다는 말이냐. 피칠갑이 된 이영남의 몸이 허공에 뛰어올랐다. 죽음의 갑옷을 입은 그에게 두려울 것은 없었다. 퇴로는 없다, 적선에서 내가 죽는 것이 오직 살 길이다, 이영남은 눈에 불을 켜고 왜군의 몸에서 뿜어나오는 피를 뒤집어썼다. 생지옥이 있다면 여기가 생지옥일 터, 이 순간을 버티지 못하면 이순신 장군의 안위도 장담할 수 없었다. 왜군은 베어도 낙엽처럼 우수수 날려버려도 끝도 없이 몰려들었다.

번뜩. 칼날이 번갯불처럼 번뜩였다. 그의 몸이 한순간 허공에 튀어 오르는 것 같았다. 뒤이어 다시 칼날이 번뜩이며 그의 옆구리를 베고 지나갔다. 그가 갑판에 한쪽 무릎을 꿇었다. 번뜩. 힘을 모아서 다시 일어서기도 전에 왜군의 칼날은 이영남 장군의 어깨를 베고 지나갔다. 역부족이었다. 아아 역부족이었다. 모악산 멧돼지를 맨손으로 잡은 천하장사가 이영남이었어도 끝도 없이 몰려오는 왜군들 앞에서는 한계가 있었다.

이게 끝인가. 조선 수군의 적자인 첨사 이영남도 여기까지인가. 속절없이 숨이 끊어지는가. 이영남 장군의 눈에서 눈물이 주르르 흘렀다. 눈앞이 또렷해지면서 갑판이 밝아보였다. 너무 어이가 없으면 너털웃음이 터진다던데 그는 눈물이 터져 아침노을에 빛날 뿐이었다. 자신의 눈으로 왜적이 전멸당하는 현장을 지켜봐야 하는데 아아, 어쩔 것이냐. 이젠 힘이 없구나. 이영남 장군은 고개를 떨구었다. 아침노을이 노량진 바다를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다음 편에 계속>

 

   
글쓴이 / 이병초 시인. 웅지세무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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