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피니언 > 이병초의 역사소설
8. 바다에 떨어진 겨울 햇살(1)- 이병초의 '노량(露梁)의 바다'이순신 장군과 함께 전사한, 전의인(全義人) 이영남 장군의 불꽃 같은 삶!
전북포스트  |  jbpost2014@hanmail.net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22.06.26  17:36:25
트위터 페이스북 네이버 구글 msn

08. 바다에 떨어진 겨울 햇살

<1>

이순신 장군의 눈에 이영남이 보였다. 왜선의 갑판에 우뚝 선 조선의 장수, 거침없는 그의 칼춤이 왜군의 목을 베며 와키자카가 서 있는 망루로 나가고 있었다. 일기당천, 그를 가리켜 남이 장군의 환생이라고도 했던가. 이영남은 혼자라도 능히 천 명을 상대할 수 있는 조선 최고의 무사였다. 평소엔 과묵하지만 일단 칼을 뽑으면 적은 그의 칼날을 피할 수 없었다.

이영남의 칼이 새벽어둠을 베며 앞으로 나갈수록 그의 주변에 왜적이 더 많이 모여들고 있었다. 천하의 이영남이지만 오래 못 버틸 것이었다.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도술이라는 것이 있다면 당장 그것을 쓰고 싶었다. 그러나 도술은 설화 속에나 있는 허풍일 뿐이었다. 당장 적선으로 뛰어들고 싶었지만 그럴 수도 없었다. 자신의 배를 겹겹이 에워싸려고 하는 적선들을 쳐내야 하기 때문이었다. 대장선을 호위하고 보호해야 하는 중군장의 배는 아직도 보이지 않았다. 이순신 장군은 와키자카의 안택선 갑판을 바라보았다. 갑판에서는 핏방울이 낭자하고 갑판 저 너머에서는 아침노을이 낭자하게 번지고 있었다.

전쟁을 자신의 손으로 끝내고 싶은 결심을 가장 잘 따랐던 장수가 첨사 이영남이었다. 조정과 명나라군 진영에서는 마지막 승부를 원하지 않았다. 조정의 권신들은 전쟁의 공포에서 어서 벗어나고 싶었고 명나라 수뇌부는 남의 전쟁에 더는 끼어들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이순신 장군은 이 전쟁에서 자신들이 패퇴했으니 퇴로만 열어달라는 왜군의 요구를 들어줄 수 없었다. 이유는 있었다. 그것은 조선의 속담에서 찾을 수 있었다. “뱀을 죽일 때는 꼬랑지까지 죽여야 한다.”라는 속담이 그것이었다. 뱀은 숨통이 끊어질 때까지 죽이고 또 죽여야만 한다는, 꼬랑지까지 확실하게 죽여야 한다는 잔인한 속담은 뜻하는 바가 깊었다.

요것들은 아주 사악한 것들이어서 꼬랑지라도 살아 있으면 어떻게든지 살아나서 다친 제 몸을 낫게 한 뒤 저에게 몰매를 내린 사람 집에 찾아가서 장독에 알을 까놓든가 제 새끼를 퍼지른다는 것이었다. 뱀은 사악해서 반드시 해코지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 속담이 죄 없는 뱀을 가리키는 것이 아님을 모르는 조선인은 없었다. 사람을 보면 먼저 도망갈지언정 뱀은 결코 사람을 먼저 공격하거나 해코지하는 동물이 아니었다. 속담 속의 뱀은 사람을 가리키는 것이었다.

끝까지 목숨을 함께하자던 동지가 변절해서 밀고자로 바뀌어버린 사람, 그가 뱀이었다. 그런 자는 숨통을 잔인하게 끊어버려야만 했다. 혼만 내주고 살려놨다가는, 꼬리라도 살려놨다가는 기어코 해코지당하기 때문이었다. 눈앞에 보이는 왜적은 더 말할 나위가 없었다. 왜군 진영은 말이 필요 없는 뱀의 소굴이었다. 마지막까지 처참하게 싸워서 왜군을 꼬리까지 섬멸해버려야만 다시는 조선을 넘보지 못할 것이었다. 왜군이 조선에서 벌인 만행은 용서할 수 없었다. 조선의 국왕 선조는 선전관까지 보내어 왜군을 섬멸하겠다는 이순신의 결심을 돌리려 하였다. 장군의 결심을 돌릴 수 없다는 것을 깨친 선전관은 이순신 장군을 역모죄로 다스리라는 장계를 썼고 그 장계를 빼앗아 온 이가 첨사 이영남이었다.

“장군, 사실이 이러합니다. 조정에서는 장군의 진심을 읽지 못하고 있사옵니다. 장군의 승리가 조선군 전체의 승리임에도 저들은 장군의 승리를 질투의 대상으로만 여길 뿐이옵니다. 장군과 우리가 피땀으로 확보해내신 병력과 무기를 두려워하고 있는 것입니다. 백성의 열렬한 사랑과 지지를 받는 장군을 시기함은 물론 장군이 혹여 한양을 칠까 두려워하기 때문에 궁궐무사까지 염탐꾼으로 써서 통제영을 감시하고, 선전관을 보내어 조선 수군의 출정을 막고자 했던 것입니다. 그것이 안 되니까 이 장계에 장군을 역모죄로 다스리라고 적지 않았습니까!

장군, 우리는 역도가 아닙니다. 조정이 우리를 역도로 내몰고 있다면 이제 더는 지체하지 마시고 우리를 역도로 내몰고 있는 벼슬아치들을 쫓아내고 조정의 새 판을 짜야 합니다. 군왕 밑에서 눈치나 살피면서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는 벼슬아치들은 이 전쟁의 동조자이거나 방관자이거나 왜군에게 협조한 이들로 봐야 하옵니다. 충성심과 역심을 구별하지 못하는 저들, 도성과 백성을 버리고 몽진에 나섰던 이들, 왜군과 싸우는 최전선의 상황을 살피려고도 하지 않고 멀찌감치 떨어져서 구경만 하고 있던 벼슬아치들을 몰아내고, 즉 한양을 쳐서 장군께서 조정의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장군, 한양을 쳐서 조정을 바로잡아야 합니다. 죽기를 각오하고 말씀 올리니 장군, 통촉하시옵소서!”

이순신 장군은 이영남의 말을 거둘 수 없었다. 아니 못 거두었다. 첨사 이영남의 말이 천만번 옳을지라도 정녕 그럴 수는 없었다. 그럴 경황도 아니었다. 국왕이 있는 한양을 친다는 것은 쉽다면 쉬운 일이었다. 통제영의 군사들과 무기와 화포는 가히 조선팔도가 벌벌 떨게 할 만큼 무서운 위력을 가지고 있었다. 활이며 화포에 다루는 데 능숙할 뿐만 아니라 왜군과 백병전까지 치러내 승리한 무사들의 무예는 존재감 자체가 공포였다. 그러나 국왕을 따르는 파렴치하고 약삭빠른 중신들이 아무리 미워도 적(敵)은 아니었다. 저들이 이순신 자신과 조선 수군의 진심을 몰라줄지언정 전라도 백성의 피땀으로 마련한 무기로 조선의 백성임이 분명한 저 중신들의 가슴에 화살과 화포를 퍼부을 수는 없었다.

이영남은 분개했다. 차라리 이 못난 세상의 주인이 되고 싶은 이영남의 진정 속에는 배신감이 짙게 자리하고 있었다. 캄캄한 세상을 먹물로 밝히고자 하는 지식인일수록 지식은 개인의 잇속을 채우는 도구로 쓰는 게 아니라 만백성을 향한 베풂의 등불로 써야 한다는 게 이영남의 주장이었다. 지식인을 자처하는 조정의 무리와 국왕은 어찌했던가. 만백성을 하늘로 알았던가. 전쟁이 낌새가 여의치 않으면 국왕과 벼슬아치들은 얼마든지 명나라로 망명하고 싶었던 게 사실이 아니었던가. 이런 국왕을 두고 지나가는 개도 웃었다는 풍문은 사실 풍문이 아니라 사실일 터였다. 국왕 선조를 땅바닥으로 끌어 내려 맘 놓고 비웃고 깔보고 얕잡아봄으로써 통쾌감을 맛보고 싶은 게 백성의 속내였을 것이었다. 땅바닥에 나뒹구는 국왕의 권위를 지근지근 밟아버리고 싶을 것이었다. <다음 편에 계속>

 

   
글쓴이 / 이병초 시인. 웅지세무대 교수. 
전북포스트의 다른기사 보기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560-022) 전북 전주시 완산구 전동성당길 13. 호운빌딩 3층  |  대표전화 : 063)231-6502  |  등록번호 : 전라북도 아 00076  |  발행인·편집인 : 강찬구
등록 및 발행일 : 2014년 8월 7일   |  청소년보호책임자 : 신현영
Copyright © 2022 전북포스트.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