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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이영남, 그가 꿈꾸었던 세상(<1> - 이병초의 '노량(露梁)의 바다'이순신 장군과 함께 전사한, 전의인(全義人) 이영남 장군의 불꽃 같은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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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2.06.16  23:5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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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 이영남, 그가 꿈꾸었던 세상

<1>

조선군은 계사년(1593년) 1월 6일에 평양성을 공격하여 9일에 평양성을 탈환했다. 2월 22일 권율 장군이 행주산성에서 승리했고, 4월 19일 왜적은 한양에서 철수를 시작하여 5월 2일에 부산에 주둔했다. 이후 명나라 심유경과 왜적 사이에 휴전 협상이 진행되면서 전쟁은 소강상태가 되었다.

이영남은 바빴다. 언제 또 쳐들어올지 모르는 왜적, 임진년 때처럼 왜군의 전선들이 경상도의 바다를 까맣게 뒤덮으며 다가올 것 같아서 경계심을 늦출 수 없었다. 한산도를 에워싼 작은 섬들에까지 수시로 탐망선이며 포작선을 띄웠고 발 빠르고 영민한 부하들을 시켜 왜구 진영을 살피도록 했다.

경상도의 바다와 전라도의 바다를 내주는 것은 조선을 내주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왜군의 수장들은 우매하지 않았다. 조선의 육로와 해로를 통해 한양으로 들이닥칠 기세였다. 왜적의 수륙병진 작전이 성공된다면 조선은 끝이라는 것을 아군도 적군도 잘 알고 있었다. 이순신 장군도 바닷길을 막아내는 것이 조선을 지키는 최후의 보루임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여 한산도대첩과 부산포해전에서 장쾌하게 승리함으로써 바다의 제해권이 조선 수군에 있음을 명징하게 보여주지 않았던가.

조선 수군의 승리, 조선군의 승리 뒤엔 전라도가 있었다. 전라도의 백성들이 지켜낸 전라도. 기축옥사로 전주 인근이 쑥대밭이 되었어도 전주를 지켜냈고 전라도를 지켜냈고 그러함으로써 조선을 지켜낸 전라도 의병장들과 백성. 전라도가 지켜졌기에 전라좌수영의 이순신이 육지에 본영을 차릴 수 있었고, 휴식을 취할 수 있었으며, 전라도의 음식을 먹고 훈련에 박차를 가하여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었다. 전라도가 왜군의 수중에 떨어지면 수군은 배 위에서 먹고 자고를 해야 할 판이었다. 전라도와 수군은 한몸인 셈이었다. 이뿐인가. 권율 휘하의 군인들 주체가 누구던가. 수원의 독산성에서 승리하고, 한양 근교의 행주산성에서 승리한 군인들 주체 또한 누구던가. 모두 전라도의 백성이 아니었던가.

전쟁이 잠시 그쳐 있었다. 조정에서는 명나라 지원군 대장과 왜군 대장이 휴전 협상을 벌이는 중이라고 했다. 이영남은 조정에서 중신이라는 자들이 하는 짓을 탐탁하게 여기지 않았고 명나라 지원군들의 수장들도 신뢰하지 않았다. 전쟁 당사국인 조선을 빼놓고 휴전 협상이라니. 국왕 선조의 중신(重臣) 중에는 타성에 젖어 있는 자가 많았고, 남의 나라 전쟁터에 와서 자신의 목숨을 걸고 싸울 만한 명나라군은 애초에 없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국왕 선조는 변함없이 사태가 불리해지면 언제라도 명나라로 망명하겠다는 생각을 굳히고 있을 것이었다. 만백성이 다 죽어도 자신만은 살아야겠다고 몽진길에 올랐던 쓸개 빠진 국왕을 한때 호종하고자 했던 자신이 서글퍼졌다.

몽진(蒙塵). 몽진이란 임금이 도성을 버린다는 말이었다. 임금이 백성을 버리고 도망간다는 말과 다르지 않았다. 천만번 생각해봐도 임금이 백성을 버리는 일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현실은 냉혹했다. 왜적의 말발굽 아래 잔인한 칼날 아래에서 수만의 조선 병사가 죽었다. 당대 조선 최고의 명장이라는 신립 장군도 전사했다. 오합지졸을 거느리고 문경새재에서 왜군과 싸우다가 병사들이 도망이라도 한다면 싸워보지도 못하고 패할 것 같아서 탄금대에 배수의 진을 쳤다는 신립 장군. 그러나 중과부적으로 전투에 패하고 부대 또한 전멸당했다는 급보가 도착한 것이었다. 왜군이 급물살을 타듯 한양에 들이닥칠 터였다. 조정은 이 급박한 현실에서 눈곱만큼도 벗어날 수 없었다. 몽진이란 단어에 매여 옳고 그름을 따질 때가 아니었다. 일단 국가의 상징인 국왕 선조가 안전해야 다음 일을 도모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여기까지는 이영남도 인정했다.

몽진은 한계가 분명했다. 조선팔도의 어디가 도망갈 곳이며 도망쳤다고 한들 언제까지 숨어 지내야 한다는 말일까. 임금이 도성을 비운 동안에 조선군이 왜군을 격퇴한다는 말은 정말이지 가설일 뿐이었다. 적이 소지한 조총이란 신무기 앞에서 조선군은 얼마나 허망하게 무너지고 말았던가 말이다. 이런 조선을 지켜낸 이들이 수군이었다. 이순신 장군이었다. 역사책에 이름 석 자도 적히지 못할 병사들이 죽음으로써 조선을 지켜냈다. 조정의 중신들은 이런 사정을 빤히 알고 있을 것이었다. 그러함에도 조선의 현실을 인식하지 못하고, 아니 명백하게 현실을 왜곡하고 전세가 불리하다 싶으면 다시 몽진하겠다는 임금에게 충성을 다하고 있을 것이었다. 어떤 면에서는 벼슬아치들이 임금보다 더 한심했다.

더구나 전쟁은 조선과 일본이 했는데 어째서 휴전협정은 조선은 쏙 빠지고 명나라와 일본이 체결하려는 것인지 지나가는 개가 웃을 일이었다. 권관 이영남은 언제 들이닥칠지 모르는 전쟁을 대비했다. 병장기와 화포를 수시로 점검했고 병사들에게 편전 즉 애깃살의 우수성을 인식시켰으며 노를 젓는 격군들의 체력 안배에 각별히 신경을 썼다. 또한 조선 수군의 주된 전술이 왜 함포사격인지 설명하면서 연습과 훈련이 없는 전투는 패전, 즉 떼죽음이라는 것을 상기시켰다. 백병전에서는 칼질, 노략질, 해적질에 도가 튼 왜적을 이길 수 없다는 것, 이런 왜적을 단번에 제압할 수 있는 유일한 전략이 함포사격이란 점을 설명하면서 화약 사용법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차근차근 풀어나갔다.  <다음 편에 계속>

 

   
글쓴이 / 이병초 시인. 웅지세무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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