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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아침 노을의 기억<1-1> - 이병초의 '노량(露梁)의 바다'이순신 장군과 함께 전사한, 전의인(全義人) 이영남 장군의 불꽃 같은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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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2.05.25  10:5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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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아침노을의 기억

 

이순신 장군은 이영남을 똑똑하게 지켜보고 있었다. 이영남과 그의 무사들이 적선의 갑판에서 왜군을 무찌르고 있었다. 자신이 탄 배, 즉 대장선이 돌격선이 되어 왜적의 무리를 무찌르고 있을 때 와키자카가 이끄는 왜선 몇 척이 자신의 대장선을 에워싸기 시작했다.

관음포에서 매복해 있던 이영남, 그는 부지기수로 몰려오는 왜선들을 분멸하고 있었을 것이었다. 그러다가 대장선이 안택선이며 세키부네에 포위되려는 상황을 보고 들이닥쳤을 것이었다. 와키자카의 안택선에 도선하여 왜군을 무찌르는 동안 대장선을 호위할 판옥선들이 도착하리라고 생각했을 터였다. 그 시간을 벌기 위해서 이영남과 무사들은 적선의 갑판에서 혈투를 벌이고 있는 것이었다. 통제사 이순신의 눈가에 아침노을이 비치고 있었다.

와키자카는 안택선 망루에서 냉연하게 이순신의 대장선을 바라보았다. 한산해전과 명량해전에서 무참하게 박살 난 와키자카. 그의 눈알이 잉걸불처럼 이글거렸다. 왜수군의 수장인 그도 노량의 바다에서 이 전쟁의 마지막을 보고 싶은 게 틀림없었다. 자신이 일본군을 대표하는 장군이자 돌격대장이었던 지난날을 생각해보면 한산과 명랑에서의 패퇴는 그에게 치욕적인 일이었다. 한산도에서 패퇴한 뒤 그의 행각은 어떠했던가. 무인도에서 미역과 다시마를 뜯어 먹으며 목숨을 연명하지 않았던가. 자신의 인생을 이처럼 초라하게 만든 사람이 이순신이었다. 다시 이순신을 만난다면 이 치욕을 갚아주는 게 무장의 도리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순신은 장벽이었다. 왜수군이 절대로 넘어설 수 없는 철옹성이었다. 지금도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세키부네며 안택선이 박살나고 있지 않은가.

그런데 이게 어찌 된 일인가. 이순신이 탄 배가 대장선이니 뒤에서 가만히 물러나 지휘나 할 일이지 어떻게 돌격선(突擊船)이 되어 전면전으로 치닫는가 말이다. 자살이라도 하고 싶다는 말인가. 이순신은 절대로 백병전을 원하지 않았다. 조선의 칼을 환도라고 하고 일본의 칼을 닛본도라고 한다. 살상용 무기로 따진다면 조선의 환도는 닛본도를 이길 수 없었다. 창(槍)은 어떤가. 조선의 당파 즉 삼지창과 일본의 창 ‘야리’ 또한 비교조차 할 수 없었다. 살상용 목적으로 만든 무기와 숱한 백병전에서 살상술을 체득한 자신의 군대를 조선의 병사는 감당할 수 없었다.

이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이순신이었으므로 그는 백병전을 피하고 포격전을 전개한 것이었다. 철저하게 거북선만을 돌격선으로 내보내지 않았던가 말이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인가. 대장선이 돌격선이 되어 백병전을 자초하다니. 이건 이순신의 전술이 아닐 것이라는 생각과 동시에 이순신을 잡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이때를 놓칠 수는 없다고 와키자카는 생각했다.

왜선들이 다가올수록 파도는 가팔랐다. 사태는 급박했다. 이순신이 탄 대장선에 합세하거나 엄호해 줄 판옥선이 당도하지 못하고 있었다. 백의(白衣)를 입고 돌아온 자신을 보고 분노로 치를 떨던 장수. 자신의 심신이 쇠약해졌음을 알고 순옥을 시켜서 탕약을 정성껏 올리게 했던 장수. 칠천량해전의 패퇴 소식을 듣고 대성통곡하던 장수가 이영남이었다. 이순신 장군에게도 칠천량의 패전은 참담한 것이었다. 조선의 수군을 재건할 수 있는 최소한의 여건조차 무너져 있었다. 살아남은 병사들은 이미 겁에 질려 있었다. 패전을 모르던 조선 수군에 패배 의식이 전염병처럼 번지고 있었다. 이때 자신의 손발이 되어준 사람이 이영남이었다. 그는 이순신 장군의 부관이 되어 군영을 수습하는데 전력을 기울였다.

“어떻게 세운 조선 수군인데 여기서 무너진단 말이냐. 그럴 수는 없다. 위기가 곧 기회이다, 조정이 우리를 기만한다면 우리 스스로 배수의 진을 쳐야 한다. 조정의 잘못된 판단을 일러주기 위해서 우리가 죽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는 불패의 조선 수군이다. 제 옷에 바느질로 자기 이름을 떠서 옷으로 신분을 확인할 수 있도록 하라. 그럴 리 없지만 만약 패배한다면 누군가 우리의 시신을 거두어 줄 터이니. 그러나 이것이 우리를 살리고 가족을 지키는 일임을 명심하라. 우리는 이미 승리하고 있다, 목숨 걸고 이 전쟁의 승자는 만백성임을 증명하라. 임진년에 우리가 연전연승할 때도 조정은 또렷한 지원이 없었다. 조정에 종이와 소금이 부족하다고 해서 우리가 되레 조정을 도와주었다.”

이영남은 턱을 떨며 말을 이었다.

“그 결과가 오늘이다. 통제사 이순신 장군을 압송했고 새 통제사 원균은 칠천량에서 처참하게 패퇴했으며 그러함으로써 조선팔도에 피바람이 불었다. 나라를 이 지경으로 만든 게 누구냐. 조선 수군이냐? 아니다. 적정을 살필 줄조차 모르는 임금과 일부 벼슬아치들이다. 저만 살겠다고 나라와 만백성의 뜻을 저버린 임금과 벼슬아치들이 오늘의 불행을 자초했다. 저들에게 조선을 맡길 수 없다. 뭉치자, 뭉치면 할 수 있다. 우리는 불패의 조선 수군이 아니었더냐.”

이영남은 수군 재건에 박차를 가했다. 신분을 묻지 않고 병사를 평등하게 대하는 언행, 모두에게 진정성 있게 다가가는 그의 형형한 눈빛은 이순신 장군 당신에게 엄청난 자신감을 심어주었다.

병사들이 다시 모여들기 시작했다. 1597년 7월 23일에 이순신 장군이 다시 통제사가 되었으며 8월 27일 어란포에서 왜선 8척을 격파했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였다. 철을 다룰 줄 아는 병사, 화약을 다룰 줄 아는 병사, 백발백중의 궁수들이며 함포사격에 출중한 능력을 가졌던 병사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맡은 바를 충실히 이행하기 시작했다. 전술 훈련에 임하는 수군은 본래의 당당한 모습을 찾기 시작했다. 이런 모습은 단 13척으로 왜선 133척을 물리친 명량해전 승리의 밑바탕이 되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었다. <다음 편에 계속>

 

   
글쓴이 / 이병초 시인. 웅지세무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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