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새벽어둠이 걷히다.

<3-1>

이영남은 7년 전에 원균의 경상우수영에 소속되어 있다가 한산도대첩 후 전라좌수영으로 자리를 옮겼다. 당시 소비포권관이었던 이영남은 고지식한 인물이었다. 훈련은 훈련일 뿐이라는 말이 그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옥포해전에서 부상당했던 기억이 뼈저리게 느껴지기 때문이었다. 육지에서의 검술과 바다에서의 검술의 차이를 알았으므로 배 위에서 싸우는 법을 익혔던 것이다. 이것을 부하들에게도 철저하게 훈련시켰다. 움직이는 배 위에서 목표물까지 화살이 날아갈 수 있도록 하는 법도 교육시켰다.

임진년, 옥포해전으로부터 한산도대첩에 이르기까지 조선 수군은 연전연승했다. 이때 조정에서 장계가 도착했다. 임해군 순화군 등의 두 왕자가 왜군의 제2선봉장 가토 기요마사에게 볼모로 잡혀 있으니 전체 조선 수군을 이끌고 왜군의 본진 부산을 치라는 것이었다. 이순신 장군은 이 어명을 듣지 않았다. 조선 수군의 전체 함대를 합해 봐야 5십 척 남짓인데 왜수군의 함선은 무려 3백 척이었고 군사들 수도 비교조차 할 수가 없었다. 어명이라고 하더라도 부하들을 사지로 보낼 수는 없었다.

국왕 선조의 분노는 극에 달했다. 어가의 안위보다도 전라좌수영을 포함한 조선 수군의 안위만을 생각하는 것으로 비쳤던 것이었다. 이순신 장군은 연합 수군을 이루어 훈련하는 게 먼저라고 생각했다. 전투는 어가를 지키고 어명을 받들기 위해서가 아니라 국가를 지키기 위해서 하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선조는 좌의정 윤두수를 이순신 장군에게 보냈다. 속히 부산을 치라는 명령을 하달하기 위함이었고 어명을 받들지 않을 시 전라좌수영의 지휘권을 박탈하고 이순신을 잡아들이기 위해서였다.

윤두수는 전라우수영 이억기를 만나보았으나 허사였다. 이억기는 이순신 수사만큼 함대를 이끌만한 장수가 조선에는 없다고 분명히 말했다. 윤두수는 경상우수영 원균을 찾아갔다. 원균은 윤두수의 말을 받아들였다. 전라좌수영의 지휘권을 빼앗아서 조선 수군의 전체 함대를 이끌고 부산을 치겠다는 것이었다. 원균의 망상(妄想)을 깨뜨린 사람은 이영남이었다. 이순신 장군의 지휘권을 빼앗겠다는 것도 잘못이었지만 부하들을 이길 수 없는 전장으로 내몰고자 하는 원균의 망동은 조선 수군의 궤멸로 이어질 것이기 때문이었다.

이영남은 수하들을 이끌고 원균의 내아(內衙)를 급습했다. 원균의 목에 칼을 목에 들이댄 수하들 뒤에 이영남이 들어섰다. 원균은 노발대발했으나 칼 앞에서는 어쩔 도리가 없었다. 이영남은 경상우수영의 함대 지휘권을 접수하겠다고 원균에게 말했다. 그러고 나서 원균을 하옥해버렸다. 이영남은 경상우수영의 함대들을 움직였다. 원균 수사의 명령 없이는 함대를 움직일 수 없다는 것을 이영남이 모를 리가 없었다. 이는 항명(抗命)이기 때문에 원균에게 즉결처분을 당해도 할 말이 없었다. 이영남은 함대와 병사들을 이끌고 여수 앞바다 전라좌수영에 도착했고 거기서 전라 좌수영과 우수영의 함대들과 연합훈련에 임했다.

원균 수사는 자신을 옥에 가두고 함대를 출정시킨 이영남의 행위를 묵과할 수 없었다. 이는 명백한 항명이었다. 이영남의 수하들 앞에서 자신을 모욕한 행위도 용서할 수 없었다. 경상우수영에서 말을 타고 온 원균은 전라좌수영에서 연합훈련을 하고 있던 이영남을 보자마자 칼을 뽑아 가슴을 베었다. 이영남은 원균의 칼을 맞고 쓰러졌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원균의 칼을 맞고 쓰러진 이영남을 좌우에 늘어선 장수들이 에워쌌다. 되레 원균을 나무란 것이었다. 이순신 장군의 지휘권을 빼앗으려 한 것이 잘한 짓이냐, 연합함대를 꾸려서 왜적과 싸우고자 한 것이 어째서 잘못된 것이냐, 일이 잘못되었다면 원인은 원균 수사 당신에게 있다, 당신은 왜 연합함대를 꾸리고자 하는 조선 수군의 결정을 무시한 것이냐, 이런 질책성 질문이 원균에게 걷잡을 수 없이 쏟아졌다. 장수들에게조차 무시당한 원균은 더 이상 아무 행동도 하지 못하고 경상우수영으로 돌아갔다.

이 사건 후로 이영남은 전라좌수영에서 복무했다. 그리고 이순신 장군이 삼도수군통제사(1593년 8월)가 되어 통제영을 한산도로 옮기면서부터 그는 통제사의 부관 역할을 맡았다. 통제영 운영의 전반적인 기획이 그의 일머리에서 추려지곤 했다. 하지만 이영남은 왜란이 터진 2년 계사년부터 전주부 구이면에 잠시 다녀오곤 했다. 당시 영남에게 불행한 일이 있었다. 부인 장씨가 후사도 없이 저승의 객이 된 것이었다. 전의이씨 집안에서는 영남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서찰에는 전쟁이 마침 소강상태이니 집에 다녀가라는 간략하게 적혀 있었다. 영남은 이순신 장군께 이를 보고한 뒤 간간이 고향집을 다녀갔고 둘째 부인 태인허씨와 혼인했으며 세 아들을 얻었다. 그런데 집에 돌아오면 몸 여기저기가 쑤시고 저렸다. 해전을 치르는 도중에 칼에 베이고 스친 상처들이며 훈련 도중에 입은 상처들이 도지는 모양이었다. 을미년(1595)부터 영남은 꽤 오랜 시간을 고향집에 있었다. 기왕에 임지를 떠났으니 자꾸 도지는 묵은 상처를 제대로 치료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이영남의 마음이 편할 리 없었다. 몸은 고향집에 있어도 마음은 이미 통제영에 있었다. 그가 정예병을 추려 훈련에 박차를 가했던 일이 궁금해 미칠 지경이었다. 김대수가 자신의 대신하여 제대로 훈련하고 있겠지만 자신이 훈련에 참여했을 때만큼은 기대에 못 미치리라고 생각했다. 이영남은 계사년(1593) 10월부터 전장에 목숨을 건 부하들과 훈련하는 데 심혈을 기울였다. 왜적은 노략질이나 일삼던 과거의 왜구가 아니다, 백병전에 능한 사무라이들인 데다 조총까지 소지하고 있다, 이미 악귀가 된 저들과 맞서려면 지금의 전투방식으로는 역부족이다, 영남은 이런 현실을 직시했다. <다음 편에 계속>

글쓴이 / 이병초 시인. 웅지세무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