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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새벽어둠이 걷히다 <2-3> - 이병초의 '노량(露梁)의 바다'이순신 장군과 함께 전사한, 전의인(全義人) 이영남 장군의 불꽃 같은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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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2.05.14  11:3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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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새벽어둠이 걷히다

 

<2-3>

이러는 사이 일본 수군은 속속 결집하고 있었다. 왜수군을 대표하는 와키자카, 도도, 고니시, 시마즈 등의 함선이 칠천량의 앞과 뒤에 들어차고 있었다. 칠천도와 거제도 사이에 낀 칠천량은 좁은 해협이었다. 조선의 함선 전체를 노려보는 왜군의 함선들이 칠천도와 거제도 입구에서 조총과 화포로 무장하고 공격 명령을 기다리고 있었다. 7월 15일 해시 정에 왜구 함선 다섯 척이 조선의 척후선에 들이닥쳤다. 척후선에 탔던 병사들은 지쳐서 잠들어 있었다.

순식간에 칠천량 앞뒤에 띄워졌던 척후선 네 척이 불타버렸다. 그때서야 원균이 허둥지둥 조선 수군의 진영을 재정비했다. 7월 16일 인시 정에 왜선 수백 척이 칠천량의 앞뒤로 포위하고 본격적인 공격을 시작했다. 조선 수군은 속수무책이었다. 무려 132척이나 되는 판옥선이 전투를 치르기에는 칠천량 바다가 너무 비좁았다. 조선의 판옥선과 일본의 안택선과 세키부네가 뒤엉킨 상황에서 왜적들은 등선육박전을 전개했다. 재빠르게 판옥선에 기어올랐다. 백병전에 능한 적들을 조선 수군은 감당할 수가 없었다. 병사들이 부지기수로 죽어 나가기 시작했다. 적에게 판옥선을 빼앗기는 것은 다음 일이었다. 생떼 같은 병사들이 왜적의 칼날에 푹푹 고꾸라졌다.

겁에 질린 조선 병사들은 바닷물에 뛰어들어서 해안으로 도망치기에 바빴다. 거의 물길에 휩싸여 죽거나 왜적의 총칼에 죽었다. 이건 전투가 아니라 살육(殺戮)이었다. 피에 굶주린 살육일 뿐이었다. 적들은 조선 수군을 맘 놓고 비웃었다. 이 비웃음 속에는 자신들이 조선 수군을 패망시킨 게 아니라 조선 수군 스스로가 패망한 것이라는 뜻이 담겨 있었다.

시간이 갈수록 전사자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이 생지옥 속에서도 조선 판옥선 몇 척이 칠천량 뒤쪽을 뚫었다. 간신히 퇴로를 찾은 것이었다. 원균과 전라우수사 이억기, 충청 수사 최호 등이 칠천량을 빠져나가고 있었다. 이억기와 최호는 진해만 쪽으로 퇴로를 잡았지만 전멸당했다. 원균은 고성의 춘원포 쪽으로 퇴로를 잡았다. 춘원포에 도착하자 원균은 다시 판옥선을 바다에 가라앉히고 육지로 탈출을 시도했다. 원균은 죽었는지 살았는지 알 길이 없었다.

조선 수군 1만 명의 전사자를 냈던 칠천량해전. 조선 수군의 재건은 불가능해 보일 정도로 처참하게 패했다. 이 패배로 왜적의 무자비한 살상이 시작되었다. 1957년 1월 13일 가토 군대가 부산에 상륙하면서 정유재란은 발발했다. 2월 28일에 왜군 1만5천 명이 부산에 다시 상륙했고 4월 8일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14만 5천 명을 또다시 상륙을 시킴으로써 전쟁은 본격화되었다. 그리고 7월 16일 원균이 칠천량에서 대패, 이 치욕적인 패배는 왜군이 조선의 본토를 침략할 수 있는 거점을 마련해준 셈이 되고 말았다.

정유재란 당시 왜군의 첫 번째 목표는 전라도 점령에 있었다. 그래서 이순신을 모함하여 통제사 직위에서 물러나게 하였으며, 전체 병력을 우선 전라도로 돌렸다. 임진년의 실패는 전라도를 점령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판단했다. 군량미 확보에 실패했고, 반대로 전라도에서 각종 물자를 행재소와 의병대에 보내졌으며 이를 토대로 조선군이 버틸 수 있는 항체가 되었음은 물론 의병을 조직하기도 한 위험한 곳이라고 판단한 것이었다. 왜군은 칠천량에서 승리함으로써 전라도로 향하는 뱃길을 마련했으니 전라도 서해안까지 군대를 보내거나, 한양까지 군대를 보낼 수 있게 되었다. 또한 전라도에서 군량미를 확보하여 자기들 군영에 보낼 수도 있게 되었다.

칠천량의 패전 뒤 육지의 전황은 어찌 되었던가. 왜군의 좌군은 6만 병력을 이끌고 사천을 지나 남원을 점령한 뒤 전주성까지 빼앗았고, 가토를 수장으로 삼은 왜군의 우군은 8만의 병력을 이끌고 창녕과 육십령에 있는 황석산성을 함락한 뒤 전주성에서 좌군과 합세했다. 왜적은 잔인했다. 임진년의 전쟁 때와는 다르게 왜적들은 무자비했다.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조선인을 무차별 학살했다. 그렇게 학살당한 조선인 시체의 코와 귀를 베어서 토요토미 히데요시에게 바쳐진다고 했다.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궤멸당한 1만 명의 조선 병사들이여. 아아, 거북선이여. 이영남 장군의 눈에서 다시 불이 튀었다. 불바다 속의 와키자카 함선은 이미 생지옥이었다. 삶과 죽음이 맞물려 있는 생지옥 속에서도 왜구를 무찌르며 와키자카가 있는 망루로 향했다. 거친 숨을 고르기 위해서 잠시 좌우를 살필 때면 칠천량에서 떼죽임당한 원혼들이 이영남 장군의 눈에 어리곤 했다.

원균을 상관으로 모셔야 한다는 게 조정의 뜻일 수도 있었다. 조선 수군의 떼죽음을 조선 수군에 선물한 것이 국왕 선조와 조정의 뜻일 수도 있었다. 그렇다면 하늘의 뜻이 무엇인지 선조와 조정에 똑똑하게 보여줘야 하리라. 만백성의 뜻이 어째서 하늘인지도 두렵게 보여주리라. 만백성을 하늘처럼 모실 수 있을 때 조선은 비로소 국가일 수 있고, 비로소 만백성이 주인인 평등 세상을 이룰 수 있음을 증명하리라.

이영남 장군은 오늘, 여기 노량의 바다에서 끝을 보리라고 다짐했다. 장쾌하게 승리하리라 이를 악물었다. 오늘의 승리를 위해서 얼마나 진중하게 전략회의를 치렀던가. 전략과 전술이 없는, 이길 수 없는 전투에 부하를 세우는 지휘관은 이미 적에게 병사들의 목숨을 송두리째 내주는 것과 진배없기 때문이었다.

오늘 노량의 전투에서 승리하리라. 국왕 선조와 일부 벼슬아치들에게 자신들의 치명적인 실수를 되돌려주리라. 만백성의 뜻이 왜 하늘인가를 뼈저리게 일깨워주리라. <다음 편에 계속>

 

   
글쓴이 / 이병초 시인. 웅지세무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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