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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2. 내 인생에 생강 <이현옥의 타박타박>
전북포스트  |  jbpost201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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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1.11.23  05:2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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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되면 겨우내 생강 굴에서 잘 보관한 씨생강을 땅에 심고 짚으로 덮어뒀었다. 이때부터 생강 싹이 짚 위로 뾰족뾰족 얼굴을 내밀 때가 나는 두려웠다. <본문 중에서>

밭뙈기라도 가진 동네 사람들 중에 생강을 심지 않는 이는 거의 없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외딴집으로 분가당한 어머니도 당연히 텃밭에다 생강을 심었다.

그리고 어머니는 생강을 키우고 캐고 다듬고, 편강을 만들어서, 건강(말린 생강)을 머리에 이고 이곳저곳 소매하여 목구멍에 풀칠을 해나가기 시작했다. 생강 도매업자의 후계라고 입에 담기에는 남세스러운 보따리장사로 말이다.

 

봄이 되면 겨우내 생강 굴에서 잘 보관한 씨생강을 땅에 심고 짚으로 덮어뒀었다. 이때부터 생강 싹이 짚 위로 뾰족뾰족 얼굴을 내밀 때가 나는 두려웠다.

밤중에 잠을 자다가 오줌이 마려워 방문을 열고 나오면 낮은 울타리 너머 생강 밭 위를 짐승들이 쏜살같이 달아나기 때문이었다.

살쾡이라고도 하고 삵이라고도 부르는 짐승이 나는 제일 무서웠다. 닭과 토끼 등등, 심지어 어린애의 목까지 따간다는 얘기를 어른들로부터 누누이 들어왔기 때문에 한밤중에 요강이 놓여 있는 마루로 나간다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었다.

또렷하지 않은 형체의 크고 작은 뭇짐승들 서너 마리가 줄행랑을 치는 모습이 꽤 자주 보였던 것이다. 동생을 아무리 흔들어 깨워도 일어나지 않으면 나는 오줌을 참아야 했다. 내가 이부자리에 지도를 자주 그렸던 것도 이런 이유가 한몫했을 것이다.

생강 줄기가 어느 정도 자라는 시기가 되면 줄기와 잎에 가려 짐승들 움직임도 더디고 뜸했던 것 같다. 두려운 증세도 약간 사그라들었다. 어디까지나 내 기분이 그랬다.

 

   
전북 완주군 봉동읍 일대에 분포한 온돌식 토굴 구조도(왼쪽)와 토굴 내부 모습. 집을 지을 때 땅속에 생강굴을 먼저 판 뒤 그 위에 구들장을 놓거나, 가옥을 건축한 뒤 구들장 밑으로 파 내려가는 방식으로 조성했다. 전북 완주 ‘봉동생강 전통농업시스템’은 지난 2019년 국가중요농업유산에 등재됐다. / 사진=전북도 제공

짐작해 보건대 마루 밑 생강 굴은 깊었던 것 같다. 겁쟁이인 나는 삯꾼 아저씨나 어머니가 고개를 수그리고 들어가는 모습만 보았지, 감히 그곳에 들어갈 엄두를 내지 못했다.

아무리 굴 입구에서 고개를 아래로 박고 굴속을 들여다보아도 깊숙이 들어간 그들이 보이지 않았다. 호롱불을 들고 들어갈 때도 있었으니 지레 겁을 먹었던 것이다. 하여 나는 단 한 번도 그 속에 들어갈 일이 없었다.

어른들이 굴속에서 대야나 함지박에 생강을 담아 굴 밖으로 내밀면 언니나 오빠와 함께 받아서 토방 위에 얌전히 내려놓는 역할이 전부였다.

큰오빠는 가끔 엄마 몰래 생강 굴에 들어가서 튼실한 생강 서너 뿌리를 꺼내 종이에 돌돌 말아 어디론가 가져가기도 했다. 엄마에게 일러바치면 가만 두지 않겠다, 우리들에게 윽박지르면서 말이다. 보나마나 엿장수에게 돈을 받고 팔거나, 엿으로 바꿔 먹었을 것이다.

 

그 사건은 늦가을 서리가 내리기 직전 생강을 캐서 굴에 들여놓는 날에 일어났다. 하루 동안 일을 마쳐야 삯꾼을 사지 않기 때문에 무척이나 바쁜 날이었다. 어린 우리들도 어른들을 도우며 몸을 바삐 움직였다.

막내 여동생은 너무 어려서 부산하기 짝이 없는 이 작업에서 제외되었다. 어머니는 나에게 동생을 잘 돌보라고 말만 그리 해놓고 온갖 심부름을 시켰다. 일꾼들에게 물 갖다 주랴, 밥상 차리랴, 설거지 하랴, 샛거리 나르랴…….

나는 동생이 부러워 죽을 지경이었다. 나도 좀 어렸더라면 마루 기둥에 기대고 앉아서 다리를 까딱거리며 놀고 있을 텐데, 한숨을 내쉬며 마당과 부엌과 텃밭을 돌아쳐야만 했다.

그때 갑자기 새벽녘 돼지 멱을 딸 때처럼 큰 소리가 났다. 텃밭에서 생강을 다듬던 아주머니들이 허리를 펴고 일어나 울타리 너머 마당을 쳐다보았다. 그네들은 궁시렁대다가 고개를 갸웃하며 다시 앉았다.

 

   
완주 봉동 생강굴 내부 / 출처=디지털완주문화대전

우물에서 물을 긷고 있던 나는 순간 뒤통수가 아찔해지고 말았다. 마루 끝에 앉아 있을 동생이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단숨에 달려가 열어놓은 생강 굴을 들여다보았다. 처참한 광경이 그곳에 펼쳐져 있었다.

굴 속에 나동그라져 고개만 위로 향한 채 동생이 악을 쓰고 있었다. 나는 동생보다 더 크게 목이 터져라 소리를 쳤다. 달려온 일꾼이 굴속으로 뛰어 내려 동생을 번쩍 들어 올렸다.

다행히 동생의 다리는 부러지지 않았지만 발목이 삐고 여기저기 씻기고 멍이 들어 침을 맞고 안티푸라민을 한 통 가까이 바르고 겨우 회복되었다.

어머니는 내 머리통을 쥐어박으며 동생을 잘 돌보지 않았다고 혼을 내셨다. 덕분에 동생은 눈깔사탕과 색다른 먹거리를 야금야금 먹으면서 호강을 누렸다. 나는 이것조차 부러워 질투를 했던 것 같다.

 

잘 다듬은 생강을 굴에 쟁여 놓는 작업은 으레 해질녘에야 끝나곤 했다.

굴 입구는 내 종아리 굵기의 긴 나무를 걸쳐놓고 그 위는 가마니로 덮어 두었다. 그렇지 않아도 나는 가마니가 삭아지는 기미가 보이면 되도록 그곳을 밟지 않았었다. 일정하지 않은 굵기의 나무를 밟을 때면 중심잡기가 쉽지 않았고, 가는 나무는 휘어져 끊어질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더군다나 그 사건이 터진 이후부터 나는 습관적으로 빙 돌아서 비켜 다녔다.

 

   
우물에서 물을 긷고 있던 나는 순간 뒤통수가 아찔해지고 말았다. 마루 끝에 앉아 있을 동생이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단숨에 달려가 열어놓은 생강 굴을 들여다보았다. 처참한 광경이 그곳에 펼쳐져 있었다. <본문 중에서> / 사진 이현옥

생강을 굴속에 들여놓은 이후에도 작업은 계속 이어졌다. 생강 뿌리에 붙어 있던 통통한 강수와 여린 생강대(줄기와 잎 포함), 병들고 작고 못생겨서 굴에 들어가지 못한 생강들, 미리 따내지 못한 무강(씨 생강)들을 선별해야 했다.

강수는 박박 문질러 깨끗이 씻어 놓으면 쓸모가 많았다. 된장 속에 고추와 고춧잎 박을 때 함께 넣었고, 동치미 위에 생강 줄기, 우거지와 섞어 눌러 놓으면 변색이 잘 일어나지 않았다.

그리고 항아리에 차곡차곡 담아서 소금물을 부어 놓으면 이듬해 봄까지 물고기나 생선을 지질 때 한 주먹씩 넣어서 아삭아삭 씹히는 맛과 향을 즐길 수 있었다.

이시락(이삭) 축에 간신히 낀 못난 생강과 무강은 깨끗하게 씻은 후 볕에 말려서 한약 건재상에 팔아 넘겨야하기 때문에 이삼일 더 바지런하게 움직였던 것이다. 그런 후에야 김장 준비에 들어갈 수 있었다. / 이현옥(우석대 도서관 사서)

 

   
글쓴이 이현옥 선생은 완주군 봉동에서 태어나 우석대 국문과와 전북대 대학원에서 수학했다. 우석대학교 도서관 사서로 34년째 재직 중이며, 다음 달인 2021년 12월에 정년을 앞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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