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론을 통해 풀어 가야할 영역이 존재한다. 원전공론화 위원회가 대표적이다. 원자력 발전의 위험성을 모두가 알기에 비중을 줄이고 재생에너지로 전환하기 위해서 공론을 해야 했던 것인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런 일은 그냥 일을 그렇게 하면 된다.

필자가 생각하는 ‘원전공론화’의 필요성은 다른데 있다. 무한으로 늘어가는 전력 수요를 국가 구성원이 감당해야 하기 때문이다. 수요는 계속 늘리면서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하는 원자력 사용을 들인다? 그것도 마땅한 대체방안이 뚜렷하게 마련되지 않은 상태에서?

수요를 감당할 수 없다면 전기요금은 비용이 증가한다. 에너지를 절약하고 효율적으로 사용해 나가야 하는 것을 국가 구성원이 감당할 몫이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원전 공론화’는 매우 불완전하다. 대체 할 방안이 마련되었다면 그 누구도 위험성 큰 원전을 고집할 명분도 이유도 없다.

공론이란 여러 생각을 조율해 방향을 잡아가기 위해 필요한 과정이다.

전주에서는 대단히 기이한 공론화를 많은 예산을 들여 진행했었다. 사유지인 대한방직 부지 재개발에 관한 시민공론화 라는 게 성립되는지 매우 의문스러웠다. 도시개발의 원칙과 방향에 기초해 토지 소유주가 제출하는 계획안(건축이든 재개발이든)을 심의해 처리할 행정의 영역에 불과하다. 그런 사안을 공론의 영역으로 끌어들인다?

반면에 공론을 통해 풀어갈 명백한 영역의 것들이 존재한다.

이번에 불거지고 있는 ‘백제대로 자전거도로 개설’과 관련한 것들이 대표적이라 할 수 있다. 자동차에 편중된 교통은 모든 사람들이 체감하듯 감당할 수 없다. 그 해결을 위해 많은 도시는 대중교통과 자전거로 대체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코로나 기간중 임시 지정되었던 자전거 도로, 파리시는 위드 코로나 시점에 접어들면서 임시 자전거 도로를 영구적인 자전거 도로로 전환하는 방침을 천명했으며 진행중이다. / 사진출처-파리시청 웹사이트

도로라는 공간은 공공재이며 사람과 자전거, 그리고 자동차등이 나눠 쓰기 때문에 공간 활용에 대한 구성원들의 합의를 통한 변화가 반드시 거쳐야 할 과정이다.

여러 사람이 알고 있듯이 필자는 ‘자전거면 충분하다’는 주장을 펴는 사람이다. 아울러 ‘전주에서도 얼마든지 자전거 도시로 갈 수 있다’는 의제를 지속적으로 던지고 있다.

이 입장은 ‘어느 날 갑자기 전격적으로 결단하고 자전거 도로를 놓아버리는’ 쿠테타적 방식을 옹호할까?

전혀 그렇지 않다.

여러 번 강조했듯이 ‘자전거 타는 사람들의 입장과 주장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 가능하지 않다’고 판단한다. 오히려 ‘여러 입장들의 조율과 지난한 합의과정을 통해 접근해야 함’을 강조한다.

두 도시의 이야기를 들려주겠다.

프랑스 파리와 ‘이달고 시장’을 이야기에 자주 인용하곤 한다.

앞서 1970~90년대에 이룬 북유럽과 달리 파리는 현재 진행형의 자전거 혁명중이다. 여전히 많은 도시가 도전하지만 파리와 이달고는 돋보인다.

2014년에 파리 시장이 된 이달고는 첫 임기동안 자전거 정책을 수립하고 밑그림을 그리는데 치중했다. 2020년에 치러진 재선서 매우 획기적이고 놀라운 공약을 핵심적 공약으로 제시한다.

'파리 중심부 노변 자동차주차장 13만개중 7만개를 없애고 그 공간을 자전거 주자창 및 자전거 도로로 만든다'는 것이다.

당선되고 한 ‘미래의 파리에 관한 포부’가 아니다. 선거에서 핵심적 공약으로 제시했음을 주목해야 한다.

이달고의 15분 도시는 ‘이미 세계적 도시인 파리’도 자동차 위주의 기존 패러다임을 바꾸지 않으면 도태되고 말 것 이라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도시를 효율적으로 이용해야 지속가능하며 미래에도 살아남을 도시로 가는 길을 찾아 간 것이다.

'15분 도시'라는 패러다임의 핵심은 자전거이다.

도시 기능의 핵심적 기능중 하나인 교통이 모든 도시의 가장 1차적인 과제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첫 임기에 기초를 다지고 시동을 걸어온 이달고의 구상은 코로나라는 역사적 사변을 만나 더욱 빛을 발한다.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자가 진정한 승자라 했던가?

파리는 코로나가 시작되면서 대중교통과 자동차 교통을 재빨리 자전거로 흡수해 나갔다.

파리시는 도시 전역을 잇는 자전거 도로 네트워크를 구축중이다. 이달고 시장은 2020년 치러진 재선에서 '파리시 중심부 13만개의 자동차 노변주차장을 자전거 도로와 자전거 주차장으로 바꾸겠다'는 파격적인 공약을 핵심공약으로 제시한바 있다. / 사진출처-파리시청 웹사이트

2개 차로중 하나를 통째로 자전거에 내주는 ‘임시 자전거 도로’를 운영했다. ‘위드 코로나’라는 이름으로 바이러스와의 공생을 시도하고 있는 현재 시점에서 ‘임시 자전거 도로’에서 ‘임시’를 지우고 영구적으로 전환하고 있다.

또 다른 도시는 필자가 2018년 가을에 찾았던 일본의 사카이라는 도시다. 오사카 옆의 공업도시인 사카이는 전 세계 자전거 부품의 70%이상을 공급하는 시마노라는 회사의 본거지이다.

사카이에서 얻은 교훈은 이것이었다.

'느리게, 그러나 제대로'

사카이가 자전거 도시에 나선 것은 '자전거 환경 공생 도시 만들기 기금 조례'가 만들어진 2001년부터다.

계획 수립단계가 12년이 걸렸다. 12년 만에 확정한 계획은 얼마나 거창했을까?

뜻밖에도 그 계획이라는 게 매우 소박했다.

‘2013년 부터 2022년 까지 겨우 50킬로미터의 자전거 도로를 낸다’는 것이다.

‘10년 동안 겨우 50킬로미터를? 그것도 일거에 하는 게 아니라 하나를 정비하고 그 추진에서의 보완사항을 담아 또 다른 일에 착수하는 식으로? 어느 세월에?’

연수를 마치고 이내 이해 할 수 있었다. ‘정말 신중하게 계획하고 손을 대는 경우 정말 바꿀만한 일을 바꿨구나...’라는 게 확인 되었다.

2018년 필자가 찾았던 사카이(일본 오사카부)시의 자전거도로. 사카이시는 2001년에 시작해 10년간 계획을 수립하고 10년에 걸쳐 50킬로미터의 자전거 도로 개설 및 정비에 관한 계획을 수립해 현재 진행중이다. 사카이에서의 교훈은 '느리게, 그러나 분명하게'라는 일본 사람들 특유의 치밀하고 철저한 접근을 확인할 수 있었다.

현대에 자전거 도시로 가는 일은 그 어떤 일보다 힘들다. 그러나 패러다임을 근본적으로 바꿀 만큼의 엄청난 혁명이다.

그런 길에는 세 가지의 중요한 전제가 필요하다.

하나는 ‘도시 미래에 관한 과감하고 획기적인 결단과 리더십’이다. 그리고 또 하나는 ‘세밀하고 잘 다듬어진 프로그램(추진계획)’이다. 마지막 하나는(사람들이 간과하는 경향이 있다) ‘도시의 변화는 결국 다양한 생각을 담아 합의하는 사회적 합의과정’을 전제로 한다.

셋중 하나만 결여되어도 이 혁명은 가능하지 않음을 세계 모든 도시가 경험해 왔다.

이달고의 파리를 이야기 하면 ‘과감하고 획기적인 리더십’으로만 오해하는 분도 있을 것이다.

이달고의 과단성과 강한 추진력은 재선에서 핵심공약으로 전면에 내세운데 바탕 한다. 리더십과 시민의 합의, 그리고 임기 초반 6년여를 숙성시켜 진행해온 설계가 완벽하게 맞아 떨어지는 것이다. / 김길중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