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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고추장 도둑 <이현옥의 타박타박>
전북포스트  |  jbpost201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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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1.09.13  18:0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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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 나는 퇴직을 앞두고 ‘자율연수’ 중에 있다. 쉬면서 미래를 모색해 보라는 취지로 만들어졌을 이 제도를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하필 이 연수는 복중에 시작되었다. 자유를 누리거나 꿈꿀 새도 없이 내 속은 뒤집어지고 말았다.

고장 난 에어컨은 아예 뜯어내 버렸지, 햇빛에 달궈진 지붕과 벽은 밤 10시경에나 식지, 창문으로는 고층 아파트에서 뿜어 대는 에어컨 실외기의 뜨거운 바람과 한껏 달아오른 아스팔트 열기가 들어왔던 것이다.

 

평일 대낮에 집에 머문 적이 거의 없던 나는 이제야 한낮의 찌는 더위를 실감했다. 점심을 먹고 낮잠 한숨 시드는 시간까지는 그래도 참을 만했다. 2시가 지나고부터는 속이 터져 죽을 지경이었다. 책도 가사일도 인터넷 쇼핑도 눈에 들어오질 않았다.

방학 중인 남편은 본인 방구석에서 나오질 않았고, 이 와중에 아들 녀석은 서울에서 코로나19 확진자와 접촉했다고 자가격리자 이송 방역택시를 타고 내려와 아래층에서 격리 중이었다. 삼시세끼 밥 차려 공수하느라 우리 부부는 꼼짝도 못하고 진땀을 뺐다.

 

   
녀석이 조립해준 이 자전거를 타고 나는 지금 동네방네 휘젓고 다니는 중이다. 보조바퀴 끌리는 소리가 장난이 아니다. 동네 개들은 컹컹 짖어대고, 고양이들이 느릿느릿 풀숲으로 숨어들었다. <본문중에서> 사진은 자전거를 타는 글쓴이 이현옥 선생.  

아들이 기숙사로 들어가기 전에 해결해야 할 일이 남았다. 자전거를 구입하고 보조바퀴를 다는 것이다. 녀석이 조립해준 이 자전거를 타고 나는 지금 동네방네 휘젓고 다니는 중이다. 보조바퀴 끌리는 소리가 장난이 아니다. 동네 개들은 컹컹 짖어대고, 고양이들이 느릿느릿 풀숲으로 숨어들었다.

나이든 사람들이 많이 살고 있으니 귀들이 좀 어두울 거야, 해질 무렵이라서 낮잠은 주무시지 않을 테지…. 나름 위안 삼으며 바퀴를 신나게 돌렸다.

목표도 있다. 추석날 가족들이 모이면 보란 듯이 저 낯뜨거운 보조바퀴를 떼어내고 말테다. 언젠가 딸내미와 여행하면서 자전거를 타지 못하는 엄마 때문에 아쉬워하던 소리가 지금도 쟁쟁하다. 시장과 약국에, 작은 섬이나 소도시를 자전거로 슝슝 달릴 생각에 나는 한껏 부풀어 있다. 그 마지노선이 추석인 것이다.

 

얘기가 장황해 지고 말았다. 대체 고추장 도둑은 어쨌다는 거야. 슬슬 짜증이 묻어나는 소리가 들린다. 그러니 본 얘기로 들어가야겠다.

자전거를 타던 처음에는 주변풍경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길바닥에 돌멩이가 떨어져 있을까, 움푹 팬 곳은 없을까, 골목에서 사람이나 차가 튀어나오지 않을까 집중하느라고 내 눈은 바빴다.

사나흘 이러고 나니 자신감이 붙기 시작했다. 남의 집 담장 너머도 흘끗거리고 문패도 훑어보고 말이다.

내가 알만한 집터에 새로 지은 집이 두어 채 들어섰다. 젊은 집주인의 안목이 보통이 아니다. 가지런한 장독대는 내가 딱 좋아하는 스타일이다. 담장도 낮게 처리했고 그 위에 붉은 꽃들과 추석을 기다리며 굵어진 대추들이 고개를 내밀고 있다. 담장 옆에 세워 둔 참깨도 잘 마르고 있는 중이다.

이런 집들 앞을 지나는 재미가 여간 쏠쏠하지 않다. 그 중에서도 유독 내 눈에 들어오는 것은 옹기항아리들이었다. 세 번째쯤 그것을 보았을 때 드는 생각은 저 속에 과연 간장과 된장, 고추장이 들어있을까, 였다. 사실 나도 옥상에 항아리들이 몇 개 있는데 그 속은 거의 비어 있고 두어 개는 잡동사니를 담아 놓았다.

 

친정어머니 생전에는 간장, 된장, 고추장이 그득했었다. 어머니는 뙤약볕에서 그것들을 갈무리하다 요양병원으로 옮겨져 그곳에서 돌아가셨다. 그리고 이삼년 지나고부터는 더 이상 그 장맛을 볼 수 없게 되었다.

나의 기준으로 그 집 옹기에서도 왠지 생활의 흔적이 느껴지지 않았다. 아무려면 어떠랴. 속이야 어찌 되었든지 나는 그것들이 곱고 어여뻤다.

 

예쁜 풍경 앞에 다가오면 나는 자전거 페달을 느릿느릿 밟곤 한다. 혹시 안주인들과 눈빛이라도 교환할 수 있을까. 몇 마디 붙여볼까 수작을 부려 봤지만 아직까지 문 밖으로 고개를 내민 사람은 없다. 언젠가는 그리 되겠지.

섭섭해진 내 머릿속에 추석 명절을 앞두고 고추장을 도둑맞았던 사연이 다가왔다. 마치 내가 도둑질을 하려고 사전에 답사를 하고 있는 듯 싸한 느낌까지 들었다. 고추장을 훔쳐가는 도둑도 있었느냐고 묻는 눈치가 역력하다.

 

   
이른 아침 어머니의 고함소리에 우리들이 뛰쳐나간 곳은 장독대였다. 고추장을 퍼가면서 흘린 채 굳지 않은 검붉은 고추장이 다른 항아리와 돌멩이들 위에 뚝뚝 떨어져 있었다. 어머니는 고추장 단지 뚜껑에 손을 얹은 채 몸서리를 치고 있었다. <본문중에서> / 자료사진

이것은 어디까지나 영화와 소설 속에서 보고 읽었던 『자전거 도둑』 얘기가 아니다. 사실 그때에는 동네마다 좀도둑들이 끊이지를 않았다. 논밭으로 일하러 간 사이, 집들이 텅텅 비어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그치들은 대낮에 활개를 치고 돌아다니면서 트랜지스터라디오와 곡식, 놋그릇에 수저까지 훔쳐가곤 했다.

 

그날 밤 들었던 고추장 도둑도 동태를 살피려고 우리 집 앞을 흘낏거렸을 것이다. 그리고 늦은 밤 깊은 잠을 자고 있는 시각에 훔쳐간 게 틀림없었다.

이른 아침 어머니의 고함소리에 우리들이 뛰쳐나간 곳은 장독대였다. 고추장을 퍼가면서 흘린 채 굳지 않은 검붉은 고추장이 다른 항아리와 돌멩이들 위에 뚝뚝 떨어져 있었다. 어머니는 고추장 단지 뚜껑에 손을 얹은 채 몸서리를 치고 있었다. 내동댕이쳐진 헝겊과 단지 속을 들여다 본 우리들은 아연실색하고 말았다.

아, 도둑님은 고추장을 몽땅 퍼간 것이다. 어머니는 그것들을 아끼고 아꼈었다. 고추장을 둬 국자 퍼낸 후에는 반드시 헝겊을 덮고 고무줄로 동여매서 관리했었다.

 

아침밥이 코에 들어가는지 입에 들어가는지 오빠들은 두세두세 작전을 펼쳤다. 마치 연속극 <수사반장>에 나오는 형사들 같았다. 고추장 흘린 자국과 발자국을 쫓아 사립문 밖 고샅길을 10m 정도까지 따라가다가 돌아왔다.

고추장은 문 밖 뒷동네 가는 길목 초입에 두어 방울 흘리다가 끝이 났고 발자국은 잠시 후에 흐지부지 없어지고 말았던 것이다. 우리는 결론을 내렸다. 반드시 뒷동네 사람일 것이고 도둑질 초보에다 아줌마인 것이 분명하다고, 오늘 밤에는 아마 된장을 훔치러 올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추석을 사오일 정도 앞두고 달이 거의 둥근 모양새로 떠오르던 그날 밤 오빠들은 잠도 자지 않고 도둑이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아침에 일어나 쳐다보니 부엌문 안쪽에 세워 둔 작대기는 고대로 있었고 오빠들의 표정은 그리 밝지 않았다.

이튿날도…. 고추장 도둑은 나타나지 않았다. 우리들은 서쪽 우물가에 있던 장독들을 옮겨 놓았다. 우리가 자는 방에서 직방으로 보이는 대문 쪽 담장 아래로 말이다. 그리고 나서야 잡지도 못한 고추장 도둑 소탕전이 막을 내렸다.

추석 명절에 어머니는 단지 가장자리에 껌딱지처럼 붙어 있는 고추장을 닥닥 긁어넣고도 모자라 그 속에 물을 부어 가신 물까지 넣어서 작은아버지가 잡아다 주신 물고기를 허옇게 지져 상 위에 내놓으셨다.

네 바퀴 자전거를 타다가 고추장 도둑이 떠오를 줄은 몰랐다. / 이현옥(우석대학교 도서관 사서)

 

   
글쓴이 이현옥 선생은 완주군 봉동에서 태어나 우석대 국문과와 전북대 대학원에서 수학했다. 우석대학교 도서관 사서로 34년째 재직 중이며, 올해 12월 정년을 앞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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