냇가에 가게 되면 지금도 나는 물은 깨끗한가, 다슬기가 있나 없나 부터 살펴본다. 만약 내가 남자였다면 물고기를 찾아 미간을 모을 것이다.

우리 동네는 엎어지면 코 닿을 곳에 냇물이 흐르고 있어 그곳을 가까이 하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었다. 여름에는 멱을 감고 다슬기와 민물고기를 잡았다.

겨울이면 얼음을 지치거나 썰매를 타기도 하고 두꺼운 얼음을 깨고 붕어와 미꾸라지를 잡는 등 누구나의 놀이터이자 먹거리가 생산되는 장소였다. 나보다 머리가 굵은 언니 오빠들은 그것들을 팔아서 가용에 보태기도 했다.

바로 위 내 언니의 이름은 ‘현숙’이다. 내 이름이 ‘현옥’이라는 사실을 독자들은 알고 있을 것이다. 나는 1961년생으로 소띠이고 언니는 1959년생 돼지띠이다. 지극히 주관적이지만 내 이름이 그나마 덜 촌스러운 것은 60년대에 태어났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언니 또래이거나 바로 위 선배들은 주로 ‘복덕, 덕순, 길자’등의 이름을 갖고 있다. ‘이남’ 언니는 이 다음에 남자애를 낳게 해 달라고 지었다지 않은가. 거기에 비해 내 여자 친구들은 작명하느라 고민한 흔적이 보인다. ‘복주, 정숙, 미정’등이 그네들이다.

어찌 되었든 50년대생들과 나는 왠지 거리감이 느껴졌다. ‘현숙’ 언니와의 관계도 그러했다. 2살 터울인데도 살갑기는커녕 다가가기가 여간 서먹서먹하지 않았다. 그녀와는 한 이불 속에서 속닥거릴 기회가 아주 적었다. 아마도 그녀와 나 사이에 가로놓인 6~7년 정도의 공백 때문일 것이다.

그녀는 초등학교 입학하기 전부터 친가에서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살았다. 그분들은 휑하니 큰 집이 적적하기도 했으려니와 자신들의 잔심부름을 해주는 대가로 잠자리와 끼니를 제공할 요량이었던 모양이다. 다섯 자식들을 혼자서 건사하는 며느리의 부담을 덜어주려는 의도도 적잖이 작용했던 것 같다.

'그녀는 냇가를 벗어나 물이 목에 잠기는 지점까지 들어가서 다슬기를 잡았다. 물살도 세고 너무 깊어서 나는 들어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작은 플라스틱 바가지에 다슬기가 채워지면 나에게 신호를 보내 물이 가슴께 닿는 지점에서 건네주었다.' - 본문 중에서

가끔 내 속은 언짢아지곤 했다. 그녀가 누릴 쌀밥과 따뜻한 방이 떠오를 때, 논밭 일과는 거리가 멀 것 같은, 끼니마다 내놓을 반찬 걱정에 매달리지 않을 그녀가 부러웠다. 가끔 깨끗한 옷을 입고 나타날 때면 땟물에 절어 있는 나와 사뭇 달라서 주눅도 들었다. 말인즉슨 언니이지만 형제자매가 아닌 손님처럼 여겨졌던 것이다.

어떤 연유인지는 모르겠으나 초등학교 6학년 무렵 그녀는 오막살이 외딴 우리 집으로 원상복귀 했다. 그 시기부터 그녀와 나는 본격적으로 겉돌기 시작했다.

그녀는 쑥과 돌미나리, 자운영 등을 깨끗이 뜯어왔다고 어머니한테 칭찬을 들었고, 특히 여름에는 우리 집에서 한참 떨어진 앞대산 앞 깊은 물속까지 들어가 거무죽죽하고 튼실한 다슬기를 소쿠리 가득 잡아오곤 했다. 게다가 그녀는 다슬기를 전주 모래내 시장까지 가서 팔고 왔다. 차멀미를 무릅쓰고 돌아온 그녀의 얼굴은 사색에 가까울 때도 있었다.

그 돈으로 우리들의 학용품을 사고 육성회비에 보태기도 했으나, 어머니의 언니 자랑은 내 속을 자극하고는 했다. 손끝이 야무져서 시집가면 잘 살겠다느니, 큰딸은 살림 밑천이라느니 침이 마를 날이 없었다. 나한테는 여자애가 공부는 해서 어느 짝에 써먹을 거냐며 한숨을 보냈다.

그녀는 나물을 캐러 가거나 다슬기를 잡으러 갈 때 그녀의 친구들, 그 위 언니들과 동행했다. 동생들과는 어울리려 하지 않았다. 그런 나도 필요했을 때가 있었나 보다.

언젠가 두어 번 앞대산 앞 냇가에 나를 데리고 간 적이 있다. 본인이 잡은 다슬기를 건네받아 물가에다 날라 놓을 심부름꾼으로 말이다. 오목한 대나무 소쿠리에 옮겨진 다슬기가 소쿠리를 타고 올라가 다시 물속으로 기어 들어가기 전 훑어 내려줘야 할 사람으로 나를 지목한 것이다. 그 시중노릇도 꽤 꼼지락대야만 했다.

그녀는 냇가를 벗어나 물이 목에 잠기는 지점까지 들어가서 다슬기를 잡았다. 물살도 세고 너무 깊어서 나는 들어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작은 플라스틱 바가지에 다슬기가 채워지면 나에게 신호를 보내 물이 가슴께 닿는 지점에서 건네주었다. 거기를 왔다리갔다리 하랴, 소쿠리를 빠져 나가는 다슬기를 단속하랴, 짬짬이 다슬기와 가재 좀 잡아 보랴 나름 바빴다.

땅거미가 내려앉는 기미가 보여도 그녀는 물속에서 나오질 않았다. “현숙이 언니, 집에 가자~~, 집에 가자!” 거듭 목소리를 높였지만 끄떡도 없다. 함께 온 ‘덕순’과 ‘길자’ 언니는 진즉에 물속에서 나왔다. 욕심이 덕지덕지 붙어 뭐든 이겨야 직성이 풀리는 ‘정애’ 언니는 그렇다손 치더라도 현숙 언니는 너무 한다 싶었다.

내 입은 대대 나왔다. 다슬기들이 소쿠리 밖으로 기어 나오거나 말거나 혼자라도 돌아가고 싶었다. 어차피 집에 가봐야 모든 공은 언니한테 갈 것이다. 뱃속은 연신 꼬르륵 대고 뱃가죽이 등에 닿는 것만 같았다.

추워서 이빨을 달그락대며 집에 도착했다. 아니나 다를까 어머니는 언니에게 고생했다고 추워 떠는 그녀를 애처로워했다. 나한테는 얼른 밥상이나 차리라는 눈짓을 보냈다. 잔뜩 화가 난 나는 보리밥을 담은 사기그릇과 열무김치 보시기를 상위에 탕탕 내려놓았다. 굴러온 돌이 박힌 돌 빼내는 격이 된 것 같아 억울했다.

이방인이 되어가는 내 꼴이 싫었다. 그녀가 할머니 댁에서 호강하고 있는 동안 나 혼자서 오빠와 동생 밥해 먹이고 빨래하고 청소하고 밭일까지 눈코 뜰 새 없이 돌아치며 살았다. 이럴 수는 없다. 그녀는 점점 눈엣가시가 되어 갔다.

사각 유리에 나무를 세워 촛농으로 붙여 만든 다슬기 잡을 때의 필수도구인 유리 상자가 깨지는 참변이 일어나기도 했다. 그녀는 거의 울상이 되었다. 그 유리를 촛농으로 덕지덕지 붙이고 해가 서쪽으로 뉘엿해지자 다슬기를 잡으러 또 나섰다.

억척스레 다슬기를 잡아 왔다. 때때로 빼꼼한 날이 생기면 품팔이도 마다하지 않았다. 돈을 벌어와 어머니를 기쁘게 해 드렸다. 기특하다고 인정받은 그녀는 집안일은 제쳐두고 바깥으로 나돌았다.

지금도 나는 언니를 부를 때 꼭 ‘현숙’을 접두사처럼 붙인다. 이름을 빼고 “언니~”라고 거의 불러보지 않았다. 표현에 서툰 나는 오글거리는 짓은 절대로 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그러다 보니 아예 몸에 배어 버렸다.

어린 시절 공백 기간 때문이라고, 그녀가 너무 이른 나이에 혼인한 탓이라고, 사람 바꿔지기 어려워서라고, 이렇게라도 주저리 변명을 늘어놓고 말았다.

언젠가 할머니 댁에 심부름을 갔다가 요강을 가시고 있는 그녀를 본 적이 있다. 어느 결에 나를 발견했는지 후다닥 부자연스럽게 그 일을 갈무리하는 모양새가 어린 내 눈에도 확연히 보였다. 말도 더듬었다. 도둑질하다 들킨 사람마냥 좌불안석이었다. 그때 나는 눈치를 챘어야 했다. 그녀가 할머니 댁에서 공주처럼 대우받지 못했다는 것을, 결코 공밥을 먹지 않았다는 것을 말이다. 늘 배가 고파서 헐떡거리고 갖은 일을 했지만 그래도 나는 요강 따위는 씻지 않았던 것이다.

상처로 얼룩졌던 어린아이를 서로의 내면에서 꺼낼 날이 올 것인가.* 속 깊은 대화를 그녀와 나눌 기회가 주어진다면 꼭 이렇게 말하고 싶다.

“언니. 미안했어.”  / 이현옥(우석대학교 도서관 사서)

* 『상처받은 내면아이 치유』 참조

글쓴이 이현옥 선생은 완주군 봉동에서 태어나 우석대 국문과와 전북대 대학원에서 수학했다. 우석대학교 도서관 사서로 34년째 재직 중이며, 올해 12월 정년을 앞두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