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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을 든 철학자’ 진경산수의 대가 - <작가의 방>3. 송관엽 화백"어딘가로 내가 갈 때, 내 모습이 내 마음에 들었으면 좋겠다는 생각"
강찬구 기자  |  phil62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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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1.02.27  16: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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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관엽 화백의 작품. 

“모든 그림은 미완이예요. 그리다가 거기서 멈춘 겁니다. 완성된 그림은 없어요. ‘멈춤’을 아는 거. 그 지점을 제대로 찾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경산(敬山) 송관엽 화백은 '붓을 든 철학자'다. 그와 나눈 얘기는 한마디 한마디가 깊고 울림이 컸다. 그렇잖아도 세밀한 그림이 더욱 깊어 보였다. 

 

   
 
   
경산 송관엽 화백의 작품과 작품 스케치 모습.

“호랑이가 토끼를 잡는 것은 순간이지만 그 토끼를 잡기 위해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최선을 다합니다. 작가도 결국 그림으로 자신을 드러내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 치열하게 고민합니다.”

그는 '진경산수화'의 대가로 불린다. 하지만 그의 그림은 자연을 그대로 옮긴 것이 아니라 자연의 순리와 삶의 질곡이 가득 담긴 한권의 그림책이다.

 

◇ 미술 시간 그림에서 비롯된 ‘화가의 길’

송 화백의 그림 인생은 갑자기 시작됐다. 신흥고 2학년 시절 미술 시간에 켄트지에 그려낸 그림을 보고 미술 선생님이 불렀다. “너, 그림 그려 봐라” 어떤 길로든 대학에 가는 것이 목표였던 그가 “그림 그리면 대학 갈 수 있어요...?”라고 물으면서 진로가 열렸다.

 

   
 
   
송관엽 화백의 작업실에 있는 작품들.

서울에 있는 대학에 떨어지고 원광대학교 미술교육과에 진학해 한국화를 전공했다. 

송 화백은 고등학교 시절 벽경 송계일 선생에게서 수묵화 기초와 사군자를 익히고, 벽천 나상목 선생으로부터 산수화를 배웠다. 석정 남궁훈 선생으로부터도 많은 영향을 받았다. 수묵화에 대한 그의 생각을 많이 전수해 주셨다. 

 

   
 
   
송관엽 화백의 작품과 송 화백.

박남재 교수는 서양화가지만 그의 스승으로 꼽히는 분이다. 박 교수는 “그림을 더 검게 그리라”는 말로 그를 이끌었다. 더 검게 그리라는 말은 수묵을 더욱 깊게 파고 들라는 것을 의미한 것이다. 20년을 넘게 '덧칠 하고 덧칠 하면서' 그 의미를 깨달았다.

대학을 졸업하고 진로에 대한 고민에 빠졌다. ‘100년 뒤의 전통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하고, 그 과정에서 그림이 10년을 주기로 변화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정(靜)-동(動)-정-동-정-동...’

 

   
 
   
송관엽 화백의 작품 스케치. 

“10년 뒤를 준비하자는 생각을 하니, 내가 살 길은 ‘한국의 자연’이라는 화두가 보였습니다. 한국의 산수는 독창적입니다. 중국과도 달라요. 이때부터 오토바이와 지프를 타고 전국의 산하를 일주하게 됐습니다.”

 

◇ 그림을 살리는 것은 안개 ‘공기원근법’

우리 나라 산하를 주유하면서 그는 스스로 ‘자연을 보는 눈이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

“자연을 모사하는 것은 안 된다. 한국인으로서 내 것을 찾자. 이런 고민을 하다가 안개를 발견하게 됐습니다. 화폭을 비워내는 데는 안개가 제일 좋은데 안개를 어떻게 불러들이느냐에 호기심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풍수학을 공부하게 됐죠.”

그러면서 찾아낸 것이 ‘공기원근법(空氣遠近法). 공기에 포함된 수분의 양에 따라 물체의 선명도는 다르다는 사실. 멀리 있어도 선명할 수 있고, 가까이 있어도 흐릴 수 있고... 그는 여기에서 ’과학적 근거 없이는 안개도 없다‘는 진리를 터득하게 된다.

   
 
   
 
   
송관엽 화백의 '공기원근법'을 활용한 작품들.

그의 작품에서 두드러지는 특징 가운데 하나가 ‘공기원근법’이다. 앞쪽의 풍경들은 연하고 흐리고, 배경이 되는 먼 산은 더욱 진하고 무겁다. 실제 자연 속에서 나타나는 그림이라고 한다. 이를 통해 관람객의 시선은 그림 전체로 다가가게 된다.

“앞쪽의 아기자기한 그림이 진하면 뒤쪽으로는 시선이 가지 않습니다. 앞만 보는 것으로 끝이 나요. 배경을 진하게 채색해 화면 속으로 끌어 들임으로써 입체감을 높이고, 비로소 그림이 형체를 갖춰가는 겁니다.”

 

◇ ‘촉’이 올 때까지 방문...붓 잡으면 ‘일필휘지’

그의 그림은 '실경산수'로 불린다. 그림 앞에 서면 자연 속에 들어온 듯 품어준다. 하지만 그는 자연을 그대로 베끼지는 않는다. 그림 속에 철학을 담고 있다. 그래서 마음이 움직이기 전에는 붓을 잡지 않는다.

 

   
 
   
송관엽 화백의 작품과 스케치 모습.

그림이 되겠다 싶은 곳이 있으면 계절에 따라, 시간에 따라, 기후에 따라 찾아 간다. 2년이든 3년이든 느낌이 올 때까지 가서 본다. 절대 서둘지 않는다. 그러다가 마음이 통할 때 붓을 잡는다. 붓만 잡으면 ‘일필휘지’로 간다.

“정처없이 가다가 그림이 되겠다 싶은 곳을 찾으면 그 곳을 계속 찾아갑니다. 비올 때, 눈올 때, 새벽 시간, 저녁 무렵, 안개 낀 날... 그 변화들을 가솜 속에 쌓는 거죠. 그 풍경에 어떤 변화를 줄 것인가... ‘촉’이 오면 그때 붓을 잡습니다."

그는 그 상태에서 가슴으로 느낌을 찾아 그려 나간다. “풍경은 보이지 않아도 영감은 살아 있다.”고 표현했다.

그가 그동안 그렇게 그려온 풍경 속에서 가장 인상적인 곳은 진안 구봉산과 운장산, 연석산이 연결되는 곳. 가장 잊을 수 없는 장소로 꼽았다.

 

   
송관엽 화백에게 가장 인상적인 장소로 남아 있는 진안 구봉산 '봄비가 그린 그림'(2016년작)
420x145Cm 화선지에 수묵채색. 

“진안 구봉산을 지나서 돌아나가다가 그림이 될 것 같은 지점을 찾았어요. 2년동안 시간이 나는 대로 찾아갔어요. 그림이 될 듯한데 안 되더라고... 고민이 많았지요. 왜 그럴까...? 그러다 문득 깨달았지요. 작은 그림을 생각하니 안됐던 거죠... 4미터짜리 큰 화선지를 펼치니 그림이 쓱쓱 나가는 거예요.”

그의 차에는 전문 산악 장비와 톱, 전지 가위 등 목공 장비들까지 실려 있다. 작품이 되겠다 싶은 곳이 있으면 그 곳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지점을 찾아 자일 등반도 하고 풀숲을 헤치기도 한다.

이렇게 산하를 뒤지다 보니 들꽃에도 관심을 갖게 되고, 들꽃 동호회 활동을 하기도 했다. 들꽃 변이종을 발견해 이를 판매해서 화구 값을 마련하기도 한다.

 

   
 
   
송관엽 화백의작품과 작품 옆에 선 송 화백.

그림 공부를 하다가 사람의 뇌에 대해서도 의문을 가졌다. “대체 사람의 뇌는 어떻게 생겨서 이러는 걸까...?” 고심 끝에 ‘뇌는 결국 정확한 것이 아니'라는 결론을 얻었다.

“뇌는 보수이며, 과거 회귀이며, 진보를 거부하는 성향을 갖고 육체를 계속 통제합니다. 어릴 때부터 배운 것들을 바꾸지 않습니다. 그래서 한번씩 휘저어 줘야 합니다. 휘젓는다는 것은 고정 관념에서 벗어나는 것이고, 결국 관객들을 그림 속으로 끌어 들이고 싶은 마음입니다. ”

   
 
   
송관엽 화백의 작품들.

그는 자신이 추구하는 작품 세계를 아직 찾지 못했다고 했다. 보다 세밀하게 얘기하면 지금도 찾아가는 길이라고 했다.

그는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찾아가는 중입니다. 아직도 내가 추구하던 것을 실현한 것은 아닙니다. 아직 모르니 그리기를 반복하면서 시행착오를 하는 것” 이라며 ‘우직한 바보’라고 표현했다.

 

◇‘훗날 내 모습이 내 마음에 들었으면...

그는 화가로서의 삶에 대해 ‘정말 잘 살았다’고 자부했다. “게을러서 다른 일을 하지 못하고 그림만 그린 것이 정말 잘 산 거”라고 말했다. 귀찮아서 다른 일 생각 않고 그림만 그렸고, 앞으로도 하던 일을 계속하는 것이 꿈이다.

“사랑과 존경은 남이 하는 것이지만 행복은 내가 추구하는 것입니다. 나는 행복하고 싶어요. 나는 남의 그림도 안 봅니다. 남의 좋은 것을 보면 뇌가 그렇게 하라고 시켜요. ‘가둬진 나’로서 그냥 그릴 겁니다.”

 

   
 
   
송관엽 화백의 진경산수화. 

그는 자신의 그림판인 화선지를 ‘철학’이라고 이름 붙였다.

“화선지 위의 수묵은 젖었을 때, 말렸을 때, 그리고 액자를 했을 때 모두 다릅니다. 그 모든 그림이 보일 때 비로소 붓을 놓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화선지는 먹을 품는 번짐과 스밈의 철학입니다.”

그에게 앞으로의 길을 물었다.

“앞으로 무엇이 되거나 어딘가로 가겠다는 생각은 없어요. 단지 어딘가로 내가 갈 때, 내 모습이 내 마음에 들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합니다.” / 강찬구 기자

 

   
'진경산수'의 대가인 송관엽 화백.

<송관엽 화백은... >

경산(敬山) 송관엽 화백(66)의 작업실은 시내에서 인후동으로 넘어가는 길목에 있다. 널찍한 작업실에는 완성된 작품부터 스케치한 작품까지 가득했다. 보이차를 사이에 두고 나눈 대화는 설법 같았다. 그의 말은 거침이 없었다. 심지가 깊다는 생각을 했다. 그는 김제 봉남면 출신이다. 요즘 시골집을 손보느라 분주하다, 전주에서 전주남중과 신흥고를 졸업하고 원광대에서 한국화를 전공했다. 수상 이력과 활동은 이미 경지를 넘었다. 작품이 그 사람의 모든 것과 경력을 말해 준다. / 강찬구 기자

 

   
 
 

 

 
 
   
송관엽 선생의 진경산수화 작품들. 

 

   
송관엽 화백의 작업실에 있는 진행중인 작품들.

 

   
송관엽 화백과 강찬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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