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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 첫사랑, 어머니로 풀어내는 그리움 - <작가의 방>2.이병초 시인고향을 잃고 아직도 떠돌이의 삶...내 집이란 결국 어떤 의미인가...?
강찬구 기자  |  phil62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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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1.01.23  11:5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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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초 시인 

이병초 시인(58)은 참 맑다. 겉모습은 투박하지만 속마음은 순수하다. 진짜 시인 치고 맑지 않은 사람이 있으랴마는 그는 내가 만난 시인 가운데 가장 투명한 속살을 갖고 있다.

그는 한때 가수가 되고자 했다. 대학에 들어간 목적이 대학가요제에 출전하기 위해서였다. 이 꿈은 끝내 실패했다. 아직 단정할 일은 아니지만... 가수가 되지 못한 그는 평생 시인으로, 시를 가르치는 교수로 살고 있다.

 

   
이병초 시인은 현재 전북작가협회 회장이다. 

이병초 시인의 집은 마그넷다리 건너 완주 봉동이다. 아내가 어린 시절을 보낸 집 터에 있던 4층 건물을 사서 선물했다. 제법 큰 건물의 2층에 그의 서재가 있다. 사연도 있고, 의미도 큰 집이다.

정작 시인의 고향은 전주시내다. 전주시 팔복동 유제리. 지금은 전주시 팔복동 제 2공단 지역에 편입돼 흔적이 없어졌다. 이 또한 아쉬움이다. 그래서 그를 관통하는 화두는 고향과 첫사랑, 어머니의 품이다. 한때 불꽃처럼 일어났다가 지금은 사라진 아쉬움, 그리움이다.

 

   
 
   
최근의 전주 황방산(위)과 팔복 제2공단(아래)으로 변한 이병초 시인의 고향. 

고향인 유제리 옆에 황방산이 있었다. 황방산이 놀이터였을 것이다. 전북포스트에 연재한 <성장통>을 보면 짐작인 간다. 참으로 구잡스러운 개구쟁이들. 그의 유년시절이 담긴 고향이 지금은 사라진 것이다. 상실감과 허무감.

“근대화, 현대화와는 별개로 고향 자체가 지금은 버려지다시피 됐어요. 공단이 되면서 나의 고향은 소멸되고, 이웃들은 실향민이 돼 뿔뿔이 흩어졌어요. 그 회한이 지금도 큽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오늘날 저를 시인으로 먹고 살게 하는 게 또 콘크리트에 묻힌 고향입니다.”

 

그와 얘기를 나누다 보면 아직도 그 시절에 머물러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이 간다. 대학 졸업 이후 고향을 떠나면서 그는 지금도 ‘떠돌이의 삶’을 살고 있다. 서울에서의 가수 지망생, 잘나가는 학원 강사, 그리고 지금은 대학이 있는 파주에서 많이 지낸다.

 

   
어느 봄 날 화사한 벚꽃 나무 아래에서 이병초 교수. 

“저는 지금도 집을 못 찾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대학 졸업하고 그 이후에는 서울과 파주로만 떠돌고 있습니다. 지금도 파주에서 혼자 생활하고 있어요. 몸은 거기에 있지만 마음은 늘 떠돕니다.”

그는 그러면서 “내 집이란 결국 무덤이란 생각을 한다.”고 시인다운 말씀을 했다.

어떻든 그의 시인으로서의 자양분은 황방산에서 나오는 것으로 보인다. 어찌 보면 객지로 떠도는 생활 속에서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삶의 축이 됐을지도 모른다. 그 외로움이 시를 재촉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山祭 - 이병초

오래된 묘는 흙이다, 흙

뼉다구 늘짝 그런 것도 없고 그냥 흙이더랑게 근디 그런 것이 뭔 심이 있어서 후손들헌티 복을 주것냐 복을 주먼 살아 있는 사람이 주는 것이지 죽은 뼉다구가, 쪼매 있으먼 흙되어버릴 것덜이 뭔 지랄헐 심이 있다고 복을 주것냐

 

황방산黃榜山 승화원 위쪽 

칡넝쿨들이 새순 뻗는 골짝에

아카시아꽃 할미꽃 희디흰 싸리꽃이

먼 깽매기소리 진설해 놓았다

묏자리를 수백 군데도 더 팠다는 삽이

소주병을 땄다 골짝 골짝을 때리는

뻐꾹새 울음소리도 잔에 채워 올렸다

눅눅하게 봄볕이 든 자리

6․25 전쟁 직후 전주형무소에 수감된 정치범들을

아군이 떼죽음시킨 곳.

명당허고 후손들허고 아무 상관없응게 쓰잘데기 없는 것 알라허들 말고 걍 내려가라잉 햇살 잘 들고 편안해 보이는 디다가 조상 안 모시고 싶은 후손이 워디 있것냐 물이 철철 나는 디다가 지 조상 터 잡는 싹수 웂는 후손이 워디 있것능가 말이다 햇살 잘 들고 사람 눈에 편안헌 디가 명당잉게 그리 알고 내려가라잉 / 이병초 시 ‘산제’ 전문

 

   
 
   
이병초 시인의 젊은 날. 

전북포스트에 2019년 연재한 ‘이병초의 성장통’에 어린 시절 황방산에서 놀던 모습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지금 50-60대들은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성장기의 일탈과 반항. ‘황방폐월(黃尨吠月)’이라는 소제목에서 한 대목을 골랐다.

 

우리는 지체없이 쉐이코 녹음기를 챙겨들었고 소주 대두병을 사서 황방산으로 향했다. 대두병 2개는 있어야 할 게 아니냐고 노규가 거들었지만 두목은 고개를 저었다. 거기 가면 틀림없이 소주보다 더 좋은 술이 있을 거라고 확신했다. 셋째 고개를 넘자 산길 좌우로 묘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우리는 전주제지가 보이는 밤나무그늘에 자리를 폈고 각자 흩어져서 제 몫의 안주거리를 챙겨오기로 했다.

아아, 두목의 예상은 적중했다. 공동묘지만큼 많은 묘들 앞에는 가지가지의 음식이 차려져 있었던 것이다. 기름기 안 빠진 고기적과 아직도 차진 송편과 조청 묻은 부스개며 사탕이며 거기에 달라붙은 개미들이며 술들이 그야말로 찍찍 깔려 있었다.

추석 쇤 지 닷새도 넘게 밤마다 이슬 맞은, 꽃뱀이며 까치독사가 혀로 핥고 갔을지도 모르는 음식을 우리는 양손에 가득 들고 왔다. 밤나무그늘 밑 신문지 위에 음식들이 쏟아졌다. 채 10분을 안 주웠는데도 형형색색의 진수성찬이 우리 눈길을 빨아들였다.

마시자, 가을이니까. 그리고 춤을 추자, 고이 잠든 조상들 앞이니까. 저들의 직계는 커녕 방계도 아니겠지만 하여튼 우리는 저들의 후손이고 이만큼이나 컸다는 것을 눈으로 확인시켜줘야 하니까 미치게 몸을 흔들어서 존재감을 각인시키자. 술기운이 서서히 올라오고 있었다. / 이병초 '성장통' 부분 

 

그는 1998년 ‘황방산의 달’이라는 시가 문예지 ‘시안(詩眼)’ 신인상에 당선되면서 시인으로 입문했다. 대학가요제에 나갈 욕심으로 들어간 대학에서 그는 문학 활동을 했다. 우석대 문예지인 ‘한내문학회’에서 글을 익혔다.

그는 시인인 정양 선생을 스승으로 꼽는다. 정양 선생은 어두웠던 시절에 저항하고, 후배들에게 귀감을 보여 지금도 존경하는 이들이 많다. 그는 “역사의식과 관계된 언어 감각이 탁월하신 분”이라고 정의했다.

 

   
이병초 시인의 서재에 있는 스승 정양 시인의 시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가수가 되고 싶어 서울 음악학원을 찾아갔다. 노래 공부도 하고 허드렛일도 하면서 음반 취입만 기다렸으나 끝내 그 날은 오지 않았다. 가수가 되지 못한 한을 그는 막걸리 한사발 들이키고 ‘쑥대머리’를 절창하는 것으로 풀고 있다.

대학 졸업 후 서울에서 학원 선생을 하면서 잘나가던 시절도 있었다. 그 때 돈을 벌어 아내에게 지금 집을 선물하기도 했다. 더 잘 나가는 학원 선생이 되기 위해 대학원을 다녔고, 그 덕분에 그는 대학교수라는 명예를 얻었다. 

 

   
가수를 꿈꾸던 시절의 이병초 시인.

그는 ‘첫사랑’ 때문에 시를 쓰게 됐다고 말했다. “언제 어디에서의 첫사랑이냐“고 물으니 ”말할 수 없다’고 꼬리를 내렸다. 내가 생각하기엔 아마도 고등학교 시절이 아니었나 싶다. 호남 평야가 펼쳐진 곳에 있던 학교. 그의 시 ‘짝사랑’을 보자.

 

짝사랑

 

고1때 가시내를 만났다

같은 반이었고 자주색 책가방을 들고 다녔다

그해 봄 교정은 장미꽃밭이었다

 

그림 그리고 싶던 가시내의 날개옷이 출렁거리면

밑그림 들추는 꽃그늘마다

밤새도록 날개옷으로 긁히던 꽃밭

뒷머리 곱게 딴 시간이 무턱대고 넘실거리던 꽃밭을

속살을 떨며 참새떼가 날아올랐다

 

참고서 속에 감춘 편지도, 찌그러진 달빛도

무작정 그어댔던 성냥불도 다 잊어먹고

사락사락 봄눈이 내리고 있다 / 이병초 '첫사랑' 전문

 

그의 정서에 일관되게 관통하는, 그래서 시를 통해 토해내는 바탕은 고향이다. 지금은 사라져 추억만 남은 고향. 소멸된 추억의 공간. 이는 곧 첫사랑과도 통한다. 지금은 지나갔지만 가슴 가득 꽃밭으로 남은 사랑. 그리고 그 따뜻한 어머니의 품. 고향과 첫사랑과 어머니의 품은 결국 같은 그리움이다.

 

   
 
   
 
   
이병초 시인의 시집 3권. 

이병초 시인은 지금까지 세권의 시집을 냈다. 첫 시집 ‘밤비’와 ‘살구꽃 피고’, 그리고 세번째 시집이 ‘까치독사’다. 세상을 뒤집지는 못했지만 그의 거칠고 투박한 표현을 좋아하는 이들이 많다. 순수함에서 나온 질박함이 그의 맛이다.

 

까치독사

 

산과 산 사이 작은 마을 위쪽

칡넝쿨 걷어낸 둬뙈기를 둘러보는데

밭의 경계 삼은 왕돌 그늘에 배 깔고

입을 쩍쩍 벌리는 까치독사 한 마리

더 가까이 오면 독 묻은 이빨로

숨통을 물어뜯어버리겠다는 듯이

뒤로 물러설 줄도 모르고 내 낌새를 살핀다

누군가에게 되알지게 얻어터져

창자가 밖으로 쏟아질 것만 같은데

꺼낸 무기라는 게 기껏 제 목숨뿐인 저것이

네 일만은 아닌 것 같은 저것이

저만치 물러난 산그늘처럼 무겁다 / 이병초 '까치독사' 전문

 

산에서 우연히 만난 까치독사. 온 몸에 상처를 입어 곧 죽을 것 같은 상황에서도 이빨을 드러내면서 저항하는 생명력. 그 장면을 보면서 시인은 가난한 이들, 민초들의 삶을 보았던 것이다.

“그 까치독사의 마지막 저항을 보면서 그는 목숨이 무기라는 생각을 했다. 죽고살기로 덤비는 그 독사 앞에서 목숨이 무기일 때는 더 이상 무서울 것이 없고, 결국 없는 사람들에게는 목숨이 무기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시를 통해 고향을 잃어버린 이들에게 위안을 주고 싶어 한다. 고향의 정서는 거듭 얘기하듯이 포근한 어머니의 품, 첫사랑의 따스함과 통한다. 그의 시에는 고향을 잃은 외로움과 추억을 잃은 그리움이 배어 있다. 그는 그 쓸쓸함을 노래로 푼다. 막걸리 한잔 들어가면 어김없이 나오는 걸걸한 육자배기.

   
이병초 시인의 시 노트.

그는 자신의 글이 사람들에게 ‘촉촉한 온기’로 다가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촉촉한 온기... 앞으로는 토속 언어를 찾아내 시를 쓰고 싶다고도 했다.

“전북 언어의 말씨에 관심을 갖고 있다. 우리 지역의 맛을 살린 말들을 찾아 나서려고 한다. 소멸되는 말씨를 찾아 거기에 깃든 인간 정신을 찾고, 관심을 갖고 배려하고 싶다. 시인으로서, 학자로서 우리 정서가 살아있는 말들을 찾아내고 싶다.”고 말을 맺었다. / 강찬구 기자

 

   
자신의 서재에서 이병초 시인. 

이병초 시인은 전주에서 태어나 우석대, 고려대 대학원 국문과에서 수학했다. 1998년 문예 계간지《시안(詩眼)》에 연작시「황방산의 달」이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밤비』(2003년, 모아드림),『살구꽃 피고』(2009년,작가),『까치독사』(2016년, 창비) 등이 있고 불꽃문학상을 받았다. 파주에 있는 웅지세무대 교수로 재직 중이며, 현재 전북작가협회 회장을 맡고 있다. / 강찬구 기자

 

* 이병초 시인은 인터넷신문 ‘전북포스트’를 통해 자신의 성장사와 시 비평을 연재했다. <성장통>은 17장까지 책 한권의 분량이며, <맑은 시비평>은 시 60편을 정리했다.

<이병초의 ‘성장통’ -전북포스트 연재>  

http://www.jbpost.co.kr/news/articleList.html?sc_sub_section_code=S2N34&view_type=sm

<이병초의 ‘맑은 시비평’ -전북포스트 연재>

http://www.jbpost.co.kr/news/articleList.html?sc_sub_section_code=S2N37&view_type=sm

 

**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이병초 시인의 시 몇 편을 소개한다.

 

옥이 

 

밥 퍼낸 무쇠솥 바닥을

초승달 같은 놋달챙이로 닥닥 긁어서

주먹밥처럼 뭉쳐온 깜밥

놀장놀장 눌은 빛깔에 불티 뒤섞인

그 차지고 고소한 단맛을

조금씩 떼어먹다가

목 당그래질이 뭔지도 모르고 떼어먹다가

배 아프다고 꾀를 쓰면

가시내는 자취집 장광에 깔린

흙기와 조각을 구워와 내 배에 올려놓고

깜밥 묻은 손끝을 떨었다

형들은 여자 친구를 깜밥이라고 불렀다 너 깜밥 있냐고 대놓고 놀렸다 감춰 먹을수록 더 고소하고 차진 맛을 왜 여자 친구에게 빗대는지 잘 몰랐다 가늘어진 목선을 더 늘이빼며 저녁햇살은 그냥 또 지나간다 / 이병초 시 ‘옥이’ 전문

 

 

또랑길

 

동진강 가는 또랑길

보릿대 태우는 냇내가 무덥다

내 손바닥 잔금들이

소쿠리 바닥 찍어놓은 것 같다고

쫑알대는 지지배를 따라왔던 길,

논고랑에 튀는 가물치를

삽날로 찍어냈다는 말에

갯버들 속에 물떼새들이 푸드덕

날아오르던 길, 아이 깜짝야, 니가 시켰지

너 이담에 뭐 될라고 그러냐?

내 겨드랑이 깊숙이 박힌 날갯죽지를

지지배는 다짜고짜 끄집어내려 들었고

노을 깔리는 강둑길에 지지배를 업고

갯내 짠내 뒤엉킨 뻘밭 속에

나는 푹푹 빠지고만 싶었다

와리바시로 쌈장을 찍어 바람벽에 써 보던 이름

동진강 둑길에 깔리던 달짝 같았던 시간을

나는 자살처럼 아꼈다

너 이담에 뭐 될라고 그러냐 쫑알대는 목소리가

동진강 가는 무더운 또랑길에

풀잎처럼 자꾸만 둥글게 휘어진다 / 이병초 시 '또랑길’ 전문

 

 

윷놀이

 

으런 야그허는디 워떤 시러배 아덜놈이 흔 삼베바지 불알 삐지디끼 요렇게 삐드러짐서 걸레방구 뀌고 지랄이냐잉 가래침으로 마빡을 뚫어버릴 팅게 허고 자픈 말이 새벽 좆겉이 불퉁불퉁허드라도 쪼매 참어라잉

 

머라고라? 쑤꾸 들어간 것까장 삼만 원이 걸린 윷판인디 시방 우아래 따지게 생겼어라? 옛날 얘기 꺼내는 놈 치고 제 집구석 부잣집 아닌 놈 웂고, 미나리 새순 겉은 첫사랑에, 니롱내롱 외입질에, 지까짓거시 열일곱 명허고 맞장깠다는 칫수 아닌 놈 웂다더니 워너니 아재도 그 칫수라닝게 단박에 다섯모 걸은 따 논 당상일 것잉만, 내 참 드러서 똥 쌀 자리가 웂당게

 

근디 니 말버르장머리가 영 재수빡머리 웂게 진행된다잉 어린 새끼들헌티 아즉 상복 입힐 계제가 못 됭게 냅두것다만, 아줌씨덜이 키 작다고 삐쭉거려도 어느새 흘레붙어 암캐 꽁무니에 질질 끌려감서도 고개럴 뻣뻣이 들고 그 예편네덜을 죽여주던 누렁이, 알 품는 씨암탉 물어 죽였다고 당그래로 된통 얻어터져 콧잔등 짜부라진 진돗개 잡종, 너허고 사춘이다고 추어주닝게 니 말 싸가지가 영 좆밥이다잉

 

시벌 언지는 아재가 우떨헌티 밑밥 멧밥 챙겨줘봤간디 그려, 허벌창나게 디리 패대기만헌 아재 눈치봄서 아즉도 살으란 말여, 저런 순 싹동배기야 시방 처갓집 골방에 왔간디 뙤허냐? 한 발짝씩 언지 윷질을 따라잡것냐 비까장 오는디 참말로 초상집 똥개마냥 멀뚱거릴래? 나 태어났을 때 머스마냐고 지지바냐고 물어봤다던, 머슴아다고 새 머슴이 태어났다고 고추금줄 쳤다던 그 불쾌헌 추억을 꼬랑창으다 확 처박으라고 혔냐 안 혔냐, 디지는 거 아닝게 지내가는 그지가 장관빽일 중 모릉게 헐 말 허고 살라고 혔냐 안 혔냐!

야 이 드렁배기야 내 얘기 들을래 작대기로 허리 걸칠래 잉? 시방 내가 옛날 얘기 허능 게 아니라 양놈덜 얘기 허잖냐, 긍게 사람이 흙 파먹고 살더라도 알 건 알고 살어야 헌다 이 말여, 새빠또건 발발이건 똥개건 양놈덜 조상은 개가 분명허다 이 말여 양놈덜은 만나기만 허먼 보듬어 쌓고 빨어 쌓고 핥어 쌈서 오도방정 개염병허능 거시 양놈덜 씨넌 개가 분명허다 이 말여!

 

하이고 그려요? 근디 윷 놀다 말고 워디가 개창났간디 양놈들 똥꼬녁에다 입 처박고 입똥내 풍긴다요잉 쇠털 겉은 날들 다리품 쉬어가라고 모야, 뙤야! 깍쟁이윷에 세월 처박은 웃거티 개아재, 글먼 뙤개걸윷모 막질로 막 어크러진 우덜뜰 씨는 뭐다요 개넌 꼴래붙으먼 고개가 따로따론디 글먼 양놈덜은 똥꼬녁으로 붙어먹것소잉? / 이병초 시 ‘윷놀이’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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