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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나무와 옥수수에 담은 시대의 아픔 - <작가의 방>1.이기홍 화백"사람들의 삶이 녹아들어야 예술" 민중예술을 관통한 아름다운 삶
강찬구 기자  |  phil62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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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1.01.08  18:5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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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홍 화백의 작품 옥수수와 서신동에 있는 작가의 방.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한 올 한 올 이파리의 날을 세우고 있는 대나무 숲. 황혼 들녘에서 홀로 바람을 맞으며 무심하게 나부끼는 마른 옥수수...

이기홍의 그림을 얘기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다. 그의 작품이 대나무와 옥수수에 국한 된 것은 아니지만 어느 작품보다 강렬하고 메시지도 강하다. 주변에서 ‘이제는 대나무와 옥수수를 놓을 때도 되지 않았느냐...’고 반농을 던지지만 그는 아직 놓을 생각이 없다.

 

◇ 대나무와 옥수수에 스민 삶의 정한

그의 작품 철학은 ‘시대의식’이다. 사람들의 삶이 담겨야 진정한 예술이라고 강조한다. 작품 속에는 현실을 담아야 한다고 믿고 있고, 그가 천착하고 있는 기존 소재에서 아직은 부족함을 느끼지 않고 있다. 요즘은 겨울 연꽃 줄기를 눈여겨보고 있다.

 

   
 
   
작업에 몰두하는 이기홍 화백(위)과 서신동 그의 작업실. 

이기홍 화백의 작업실은 두 곳이다. 전주 효자동과 서신동에 그림 그릴 공간이 있다. 서신갤러리 작업실에서 새로운 작품들을 만났다. 만경강과 동진강, 그리고 연 줄기 스러지는 겨울 연꽃밭도... 그는 ‘우금치’를 떠올리며 연밭을 그리고 있다고 말했다.

그의 그림은 사실적이다. 그의 표현대로 ‘리얼리티’가 살아 있다. 대나무숲의 댓잎은 하나하나 갈기를 세우고 있다. 그가 하나하나 붓으로 세웠다. 댓잎을 칠 때는 생각이 없어진다. 무념무상. 그의 대나무는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한 잎 한 잎 살아나고, 붉은 황혼을 등지고 한 올 한 올 불타오른다.

 

   
이기홍 화백의 효자동 작업실에 작업 중인 작품들... 

마른 옥수수 또한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혹은 붉은 석양을 등지고 외롭게 나부낀다. 벌건 황토 위에서 겨울바람을 맞으며 흐느끼는 쭉정이 옥수숫대. 황량하고, 적막하고, 아프고, 외롭다.

 

◇ ‘리얼리티’가 살아 있는 그림

나는 그의 그림 속에서 ‘바람’ 소리를 듣는다. 대나무 숲에서 나는 ‘서걱서걱’ 댓잎이 섞이는 소리와 바람에 나부끼는 옥수수 잎의 ’사그락사그락’. 그의 그림을 관통하는 일관된 소재는 바람이었다.

바람은 곧 그가 보여주고 싶은 현실. 세파였던 것이다. 대나무와 옥수수는 바람에 맞서 저항하고 바람을 이겨내고 의연하게 서 있는 것이다.

 

   
 
   
이기홍 화백의 대나무 작품.

이기홍 화백은 전북 민중 미술의 중심 역할을 하고 있다. 지금도 전북민미협 회장을 맡고 있다. 그는 그림으로 부당한 현실과 싸우고, 불의를 향해 저항했다. 그렇게 세상을 바꿔왔다. 예술은 모름지기 그래야 한다고 믿고 있다. 

사회 참여적 미술은 대학에 다니던 중 현실을 인식하면서 시작됐다. 세상이 암울했고, 예술의 역할에 대해 고민하던 시기. 마침 민중미술을 대표하던 임옥상교수가 전주대에 계셨다.

민중미술 1세대라고 얘기할 수 있는 오윤, 신학철 선생 등의 영향을 받았고, 당시 현장에서 활동하던 ‘두렁’의 멤버들과도 어울렸다. ‘두렁’은 송만규 화백이 중심이 됐다.

 

   
 
   
현실 참여적 성격이 강하게 드러나는 이기홍 화백의 작품들.

민중미술을 주도하던 온다라 미술관의 ‘들, 바람, 사람전’에도 참여했다. 임옥상 교수와 글 쓰는 진동규 선생, 김두해 화백, 온다라 미술관 김인철 관장 등이 주도했다. 이 때의 현장 운동이 오늘날까지 이어져 민미협(민족미술인협회)의 근간이 됐다.

 

◇홀연 떠났다 돌아 온 전주 첫 전시 호평

민중미술계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던 그는 1994년 홀연 전주에서 사라지게 된다. 그는 “사생활이라 말할 수 없다“고 했다. 그러다 전주로 다시 돌아온 게 2011년.

18년만에 돌아 온 전주. 그는 “전주 미술 판이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고 말했다. 그 사이 세상도 완전히 변했으니 미술 판이 변한 것도 당연한 일이다.

   
 
   
이기홍 화백의 모악산(위)과 가을 들판(아래).

그해 겨울이 시작될 무렵 그는 전주 서신갤러리에서 개인전을 가졌다. 이기홍의 첫 개인전. 이 전시에서 대나무와 옥수수를 처음 선보였다. 그는 많은 주목을 받았고 호응을 얻었다. 가로 폭이 10여m에 달하는 '모악산' 풍경도 시선을 끌었다. 

“전주에서 집으로 가면서 보던 모악산을 그린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의 가족이 살고 있는 집은 모악산으로 가는 길목이다. 전주 해성고 근처 ‘오목실’이라는 곳이다. 전주에서 모악산이 가장 아름답게 보인다는 방향이다.

 

   
댓잎 하나하나를 치는 이기홍 화백.

그는 대나무 숲을 그리면서도 그 작은 댓잎을 하나하나 친다. 그는 작품 속에 민초 하나하나를 그려넣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민초가 모여 나무가 되고,  그 나무들이 큰 대 숲을 이뤄 세상을 바꾸어 가듯이... 세상에 대한 갈망이 담겨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기홍 화백의 옥수수.

“옥수수는 늘 보던 것이다. 열매를 내어 주고 남은 겉대. 홀로 들판에 서있는 모습이 처연하다. 바람과 어스름을 만나면 서글픈 여운을 준다.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이 살풀이춤을 추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슬픔에 젖은 자의 외침, 발악... 우리 농촌 현실, 시국을 보여주는 것 같기도 하고... 제각각 다른 형태에서 다른 느낌을 갖게 된다.”

그래서 그는 옥수수를 소재로 계속 그림을 그릴 생각이다. 후배들이 “옥수수 그만 좀 그려!”라고도 하지만 그는 아직 아쉬움이 많다. 옥수수를 통해 더 많은 것을 표현해 보려고 한다. 그의 말마따나 “느끼는 것은 각자 자유니까...”

   
 
   
 
   
이기홍 화백의 대숲 그림과 병품 작품.

◇“시대정신을 담아야 진정한 예술”

그는 앞으로도 기존 소재를 통해 새로운 의미를 생산하고, 또 새로운 소재들을 찾아 우리의 삶을 반영해 나갈 계획이다.

“내 작품의 소재는 자연입니다. 대나무와 옥수수, 그리고 작은 들풀 속에 세상을 담고 싶습니다. 그 작고 흔한 것들, 우리가 늘상 보아왔던 것들에 새로운 의미를 담는 것이 예술가의 역할이라고 봅니다. 항상 주변에 관심을 갖고, 보다 나은 세상이 되도록 힘을 보태겠습니다.”

 

   
이기홍 화백의 작품.

그는 현실 참여의 일환으로 올해 농민혁명과 관련된 대규모 미술전을 구상하고 추진하고 있다. 이른바 ‘갑오농민혁명기념 미술전’. 올해 시작해 민중 미술의 대표적인 미술전으로 끌어가고 싶은 욕심이 있다. 순조롭게 진행되면 9-10월께 전시가 이뤄질 것으로 보고 있다.

그는 작품 속에 항상 ‘시의성’을 담는다고 했다. 의미를 강조하자면 ‘시대정신’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에 대한 인식. 다양한 삶의 현실이 예술 작품 속에도 담겨야 한다는 얘기다. “혼자 사는 세상은 아니니까... 그 시대의 삶에 대해 알고, 어려움을 같이 헤쳐 나가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 강찬구 기자

 

   
이기홍 화백

<이기홍 화백은...>

새해 2021년 1월 5일 '소한'에 이기홍 화백(62)의 작업실을 찾아갔다. 그는 고3인 딸을 학원에 데려다 주고 오느라 숨이 찼다. 늦게 결혼해 늦게 얻은 딸. 애니메이션을 하고 싶어 한다. '아름다운 사람'의 딸이니 어련할까... 

그의 작업실은 전주 서신동과 효자동 두 군데. 서신동 작업실은 그가 전속으로 있는 서신갤러리에서 마련해 준 공간이며, 효자동 작업실은 그의 집이다. 대작들은 서신동에서, 일반적인 작업은 효자동에서 놀면서 한다. 

 

   
친구가 그려준 이기홍 화백의 초상화. 서신동 작업실에 걸려 있다. 

이기홍 화백은 전주 토박이다. 지금은 한옥마을이 된 오목대 주변이 그의 쌈터다. 그 시절의 모든 아이들이 그렇듯이 그 또한 그 일대에서 ‘구잡스럽게’ 놀았다. 그런 아이들을 어른들은 ‘고망쥐’라고 불렀다.

전주에서 남중과 해성고를 졸업하고 전주대 미대에 들어갔다. 그림은 중학교 때부터 그렸다. 대학에서 현실 인식을 갖게 됐고, 민중미술에 눈을 뜨게 된다. 그는 전북민예총 회장을 역임했고, 현재도 전북민미협 회장을 맡고 있다. / 강찬구 기자

 

   
아기홍 화백의 작품.

 

   
이기홍 화백 작품

 

   
이기홍 화백 작품.

 

<편집자주> 

바야흐로 ‘작가’ 전성시대다. ‘작가‘라는 호칭이 글을 벗어나 모든 예술 분야로 확대됐고, '작가'가 흔해지면서 권위나 영예도 빛을 잃었다. 허접한 작가들은 그들만의 테두리 안에서 욕망을 채우고, 예술을 창작하는 진짜 작가들은 부끄러워 숨는 세상. 전북포스트는 2021년 새로운 문화 기획물로 ’작가의 방‘을 마련해 진짜 작가들을 찾아 나서기로 했다. 첫 번째 작가는 '아름다운 사람’ 이기홍 화백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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