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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시다리연가로 다시 찾은 고향 - 강주영의 <회상>
강주영 편집위원  |  kjynj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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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0.06.24  12:2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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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게 고향 정읍은 문고리에 손이 쩍쩍 달라붙는 시한이었다. 고향 그러면 종이상자에 깨엿을 받아다가 카바이트 불빛 흔들리는 역전 거리를 헤메는 코흘리개 소년이 먼저 떠오른다. 고향 골목길은 간조를 탄 날이면 나무전거리의 색시집에서 아재와 색시들이 떼창으로 부르던 ‘목포의 눈물’만 기억난다. 고향의 어린 날들은 보리 검불 같은 배고픔이 가득한 곳 따위였다.
  
고향은 손톱 밑을 찌르는 탱자나무 가시처럼 아픈 곳이었다. 고향에는 늙으신 아버지, 등이 굽은 큰어머니, 사촌 형제들이 있어 종종 가기는 한다. 그러나 골목길 한 번 돌아보지도 않고, 고향에 남은 친구들을 부를 생각도 하지 않았다. 버릴 수만 있으면 보따리에 둘둘 싸서 큰물진 날 방천에 던지고 싶은 게 고향 정읍이었다. 

 

   
정읍에 사는 하동댁 최은희 시인(샘바다출판사 대표)이 꾸민 고향 골목길 나들이.

 그런 고향 정읍을 사랑의 노래로, 연분홍 봄바람으로 감싸서 내게도 고향이 있구나. 살구나무집 딸이 환한 살구꽃 밑에서 기다리는 듯 고향으로 불러낸 이는  정읍의 이갑상 시인이다. 그의 시집 <각시다리연가>에 실린 시의 서사로 보아 이갑상 시인은 정읍 동국민학교 선배가 분명하다. 시인의 탯자리 또한 정읍시 정우면 수금리 내 외갓집과 같고, 남산동에서 멀(말)고개 밑에 동국민학교까지 등하교길도 같았음에 틀림이 없다.                   

 각시다리는 정읍시 장명동에 있는 전설의 다리이다. 국민학교 소풍날 비가 오면 으레 등장하는 소사 아저씨와 구렁이의 싸움 같은 전설이다. 국민학교를 다니는 조무래기들이 각시다리 전설의 답을 낼 리는 없었다. 하지만 그 이야기는 여름 보릿대 모깃불 연기처럼 어린 날의 한때를 뭉게뭉게 채우는 것이다. 

   
고향을 오롯이 되살려낸 각시다리.

 가마득히 잊었던 각시다리, 비석거리, 연애골목, 백두산 가는 길, 향교 은행나무, 본정통, 동학제, 중국학교(화교학교), 연탄공장 거리, 오거리 시장 등 기억 속의 고향 풍경은  살강의 살얼음 같기만 하였다. 그랬는데 이갑상 시인의 시집 <각시다리연가>를 만나니 봄날 배꽃이 되고, 환한 살구꽃 아래 소녀가 되었다.

 

각시다리 연가

청사초롱 앞에 들고 앞서거니 뒤서거니
고운 님 따라 고개 넘고 들녘 지나
흔들흔들 가마 속 새색시 울렁거려 못살겠네

비석거리 지났을까
비좁은 가마 속 누가 보지 않아도
다소곳이 고개 숙이고 골무만 만지작

새초롬 새신랑 나귀 타고 흔들흔들
좁다란 나무다리 겨우 겨우 건널 적에
손수건 살랑살랑 어서 건너 오라시네

엎치락뒤치락
먼저 다리 건너려고
흔들흔들 가마 속 새색시 울렁거려 못살겠네

영문 모른 새색시
분홍치마 노랑저고리
오목가슴 움켜쥐고 심장이 철렁

꽃잎처럼 흩날리다
얼음처럼 차가운 나무다리 아래로
팔랑 팔랑 고개 숙여 가라앉으시네

고운 님 홀로 두고 어찌 가냐 하시면
누가 보지 않아도
다소곳이 앉아 있듯 그리합니다 
            -각시다리 연가 전문 -

내게 고향은 "각시다리 연가"의 새색시처럼 가라앉았던 것이다. 그런데 고향의 상실을 아니 빼앗김을 '분홍치마 노랑저고리' 새색시의 죽음으로 이리도 '팔랑 팔랑' 하게 '다소곳이' 되살려낸단 말인가?  저 정읍사 백제 여인의 숨결이 각시다리에 이르러 '꽃잎처럼 흩날리'려서 그리움의 새날을  연단 말인가?

 

   
시집 <각시다리연가> 이갑상, 샘바다출판사.

삶과 죽음이 전설이 되어 '알알이 열리'는가? 오늘 다시 환생하여 초례도 치르지 못한 그 날, 그 새날의 노둣돌을 놓아 각시다리 그 오작교를 건너라 하는가? 서구의 미학으로는 결코  알 수 없는 정읍의 미학, 그러나 고향인의 마음을 지구 공유지에 날리는 이 잔잔한 보편의 시어들에 무릎을 치고 탄복했다. 사람다운 사람만이 고향의 서사에서 새날을 읽을 테니 "갑상이 성! 대포 한 잔 사리다. 제게 고향을 찾아 주셨소."

봄날의 한가운데를 남도에서부터 열어 섬진강 하구에서 정읍에 온 하동댁 최은희 시인이 불쑥 이갑상 시인의 시집 <각시다리연가>을 보냈다. 최 시인이 <샘바다> 지역출판사를 용감하게 냈다더니 그 1호로 이갑상 시집 <각시다리연가>를 낸 것이다. 하동댁이 정읍 사람이 되어 정읍 정신을 일구고 있으니 부끄럽기도 하고 고맙기만 하다.

 

   
중국학교, 자유대만 공산중공하던 내 어릴 때 중국학교에는 대만 국기인 청천백일기가 365일 휘날렸다.

최 시인이 <각시다리연가>의 골목길 걷기를 하였는데 그가 내 대신 오롯이 내 어린 날을 걸은 셈이다. 이 따뜻한 회상의 보답이 지금은 사라진 동천주막의 막걸리상으로 될지 가늠할 수가 없다. / 강주영 편집위원

시한 : 겨울의 전라도 방언, 간조 : 월 계산한 일당의 일본어, 글 느낌 때문에 사용.

 

   
글쓴이 / 강주영 전북포스트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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