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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초의 맑은 시비평>15. 노숙 - 김사인
신현영 기자  |  jbpost201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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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0.01.15  11:5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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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숙

시는 소통을 원한다. 소통의 대상이 사람이든 자연이든 관계없다. 이 시는 노숙인을 통하여 문명에 소외된 삶의 일부를 끌어안고 말을 건넨다. 공원의 벤치 밑이나 지하철역 계단 등에 종이박스를 깔고 아무렇게나 구부러져 있는 노숙인들. 전직이 무엇인지 어째서 노숙인이 되었는지 알 수는 없다. 하지만 그는 소통의 대상이며 동시대의 ‘우리’에 속한다.

 

   
'노숙'을 쓴 김사인 시인

헌 신문지 같은 옷가지들 벗기고

눅눅한 요 위에 너를 날 것으로 뉘고 내려다본다

생기 잃고 옹이진 손과 발이며

가는 팔다리 갈비뼈 자리들이 지쳐 보이는구나

​미안하다

​너를 부려 먹이를 얻고

​여자를 안아 집을 이루었으나

남은 것은 진땀과 악몽의 길뿐이다

또다시 낯선 땅 후미진 구석에

순한 너를 뉘었으니

어찌하랴

좋던 날도 아주 없지는 않았다만

네 노고의 헐한 삯마저 치를 길 아득하다

​차라리 이대로 너를 재워둔 채

​가만히 떠날까도 싶어 네게 묻는다

​어떤가 몸이여

-김사인, 「노숙」, 전문.

 

길바닥에 함부로 구부러져 있는 몸이니 어느 것 한 개가 제대로일 리 없다. 그 몸을 날 것으로 “뉘고 내려다보”는 화자의 시선이 어둡다. 먹고살기 위해서 평생 뼈 빠졌을 그에게 돌아온 것은 버림받은 몸뿐이다. 살아 있다는 느낌보다는 피폐하게 말라가는 인상이 먼저 오는 몸, 거기에 적힌 언어의 무늬는 아직 가혹하다.

 

   
몸으로 하루치의 생계를 책임지고 사는, 동시대의 모두를 향한 목소리는 쓰라리다. 노숙인은 동정의 대상이 아니라 우리의 또 다른 자화상이기 때문이다. / 본문 중에서

화자는 “진땀과 악몽의 길뿐이”었다는 지난날을 짚으면서도 “좋던 날도 아주 없지는 않았다”라는 고백을 한다. 그러나 불평등을 겪어낸, 어째서 이 땅의 월급봉투는 평등하지 못한가를 묻지도 못하고 부림만 당한 몸에게 “네 노고의 헐한 삯마저 치를 길 아득하다”라는 데서 기가 막힌다. 이 구절은 진술이 아니라 화자의 마음속에 오래 묻어두었다 꺼낸 울음소리 같다. 화자는 노숙인과 동일시되어 있는 것이다.

생기를 잃었을지라도 아직 살아 있는 몸에게 화자는 묻는다. 삶의 거처가 “낯선 땅 후미진 구석”일 수밖에 없는 몸에게 이 지긋지긋한 삶을 떠나면 어떻겠냐고 묻는다. 시의 상상력이 극대화된 여기에서 화자의 목소리는 촉촉하다. 몸으로 하루치의 생계를 책임지고 사는, 동시대의 모두를 향한 목소리는 쓰라리다. 노숙인은 동정의 대상이 아니라 우리의 또 다른 자화상이기 때문이다. 시의 소통은 이처럼 품이 넓고 깊다. 따뜻하다. / 이병초 시인 <웅지세무대 교수>

 

   
이병초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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