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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도서관> 50. 책 『소설처럼』 / 다니엘 페나크 - (完)
이현옥  |  jbpost201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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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0.01.14  10:1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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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기를 놀이로 - 그리고 못 다한 이야기

  어찌어찌 하다 보니 이 지면에 내 개인의 서사를 꺼내 놓게 되었다. 어느 누군가는 후일담에 불과한 지극히 사적인 얘기를 공적인 지면에까지 까발려서 좋을 게 무엇이냐는 눈총을 주기도 했다. 다른 한쪽에서는 자신들의 얘기와 크게 다르지 않다며 공감해 주었다. 

그러거나 저러거나 나는 내 몸 곳곳에 뭉쳐있던 한(恨)과 화(火) 등 오래 묵은 악성 상처들이 거의 사라지는 경험을 했다. 50년 이상 숨기고 살았던 가족사와 얽히고설킨 인연 내지 악연들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내려놓게 된 것이다.

 

  혼인생활 중에 예닐곱 번 나는 신경정신과 치료를 받아야겠다며 남편과 의논했었다. 그럴 때마다 이 작자는 나에게 구태여 그렇게 하지 않아도 좋아질 것이라며 위무 아닌 위무를 하였다. 프로이드나 라캉에 대해 공부 좀 했다는 지식으로 말이다. 

시간이 지나도 나의 화병(火病)은 좀처럼 사라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 화를 어떻게 다스렸는가. 나는 이제 당당히 말할 수 있다. 글쓰기가 나를 살렸다고...

엉망인 초고부터 완성된 글을 세상에 내놓기까지, 함량 미달의 그 글들을 들여다보고 고쳐가면서 얼마나 울었던가. 어느 새벽엔가는 통곡을 한 적도 있다. 이러한 과정들이 나의 오랜 병을 낫게 했다. 그것도 돈 한 푼 들이지 않았으니 자랑할 만하지 않은가.

 

   
 

  어렸을 때 나는 책을 읽으며 놀았다. 동네방네 책 좀 있다는 집집마다 기웃거리며 책을 빌려왔다. 나는 착한 아이였다. 아니 착한 아이가 되어야만 했다. 

언니 오빠들은 집구석에 붙어 있질 않았다. 학교에 있을 시간을 제외하고는 나는 거의 엄마 곁에서 흑기사를 자청하였다. 여기저기서 자식들을 버리고 집을 나간 엄마들 얘기가 솔솔찮게 들려왔던 때문이리라. 

실제로 우리 집 가까운 곳에서도 그런 일이 벌어졌다. 그 집들의 아버지는 엄마를 죽을 만큼 두들겨 팼고, 노름하여 가산을 탕진하는 집도 있었다. 나에게는 그런 아빠가 없어서 다행이기도 했지만 그래도 늘 불안했다. 

엄마를 지켜야 했다. 『엄마 없는 하늘 아래』라는 영화는 정말이지 끔찍했다. 우리 엄마도 아파서 들어 눕거나 죽을 것만 같았다. 그때 엄마는 두드러기로 성한 곳이 거의 없었다. 등짝으로 손이 넘어가는 것이 눈에 띌 때마다 뛰어가 등짝을 긁어줬다. 

엄마 곁에 머물며 온갖 심부름을 하거나, 밥을 짓거나, 빨래를 하거나, 푸성귀를 다듬거나, 빌려 온 책들을 읽었다. 친구들이 담장 너머로 내 이름을 부르며 들로 산으로 놀러가자 손짓해도 그들을 따라 나설 수가 없었다. 

내게는 책 읽기가 휴식이며 놀이였다. 다니엘 페나크의 『소설처럼』에 나오는 다양한 방식의 책읽기를 어린 내가 알 턱이 있었겠는가. 어떤 책은 서너 번 반복해서 읽었고, 띄엄띄엄 읽었으며, 아궁이 앞에서 불을 때면서도 읽었다. 

아무 책이나 닥치는 대로 읽다보니 초등학생 시절에 이미 삼류소설도 끝내 버렸다. 밤에는 뛰어 놀다 돌아온 동생이 일찌감치 잠이 들까 두려워 소리 내어 책을 읽어주기도 하였다. 엄마는 군산의 임피로 생강을 팔러 가셔서 3일째 돌아오지 않았던 것이다.

 

  다니엘 페나크가 말한 “무엇을 어떻게 읽든---침해할 수 없는 독자의 권리” 10가지를 어린 나이에 스스로 찾아서 즐기고 있었던 것이다. 

중학생이 되고 고등학생, 대학생이 되면서 더 이상 책 읽기는 놀이가 아니었다. 시험을 잘 치르기 위한 수단이었으며, 친구들과 경쟁하거나 먹고 살기 위한 도구로 전락했다. 

 

   
'소설처럼'의저자 다니엘 페나크.

이것마저 할 수 없었던 기간도 있었다. 직장에 다니면서 아이 둘을 낳아 키우는 20년 동안은 내 인생에서 책읽기 단절의 시기였다. 나를 위해 읽지 않고 뱃속의 아이를 위해, 성장하는 아이들에게, 어떻게 하면 자식들을 좋은 대학에 보낼까. 나 자신을 위해 읽는 것 자체가 무의미했다. 

집안에서 나는 노동에 시달렸고 밖에 나가면 돈 버는 기계에 불과했다.

 

  한밤중에 잠이 깨어 뜬눈으로 아침을 맞는 날들이 잦아졌다. 바야흐로 내 인생에 이변이 찾아온 것이다. 어느 날 새벽 2시 즈음 잠에서 깬 나는 또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다음날 출근하여 일감들 앞에서 눈을 부라리고 있을 생각에 잠은 되레 산지사방으로 도망가 버렸다. 

이제 어떡한다? 차라리 불을 켜 버리자. 책들이 내 눈에 들어왔다. 잠자기 위한 수단으로 어려운 책을 펼쳤다. 이렇게라도 다시 읽기 시작하니 그럭저럭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서서히 어렸을 적에 즐겼던 놀이의 느낌이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어느 날부터는 가끔 글감도 살아났다. 그래서 이곳저곳에 끄적거리게 된 것이다. 책 읽기를 좋아하는 사람의 심연에는 글을 쓰고 싶은 욕망이 있지 않을까?

 

  내가 책을 만나 살아온 지난한 과정을 부끄러움도 모르고 구구절절 쏟았다. 나 혼자만 앓기보다는 사람들과 공감하고 소통하고 나누고 싶어서 그리 했으니 이해하시기 바란다. 어찌되었든 나는 지금 정신분석 따위를 떠올리지 않고 잘 살아가고 있는 중이다.

 

막걸리를 받아오다 신작로 돌부리에 걸려 넘어졌다.

주전자가 나동그라져 술이 콸콸 쏟아질 때

나는 맥을 탁 놓아버렸다.

이제 어떡해야 하나. 집으로 돌아갈 수가 없었다.

식구들이 나를 찾아 호롱불을 들고 내 앞을 두런두런 지나갔다.

그때 나는 탱자나무 울타리 밑에 쪼그리고 앉아 있었다.

 

  이것이 ‘어린 나’를 요약한 글이다. 의미심장한 숫자 2020년에 내 나이 60이 되었다. 이제야 비로소 ‘어린 나’와 화해했다는 생각이 든다. 앞으로 남은 인생 후반전의 서사는 감히 알 수 없다. 다만 나 자신에게 인색했던 다소의 방식들을 고쳐가며 나에게 겨눴던 무수한 화살들을 다독이며 살아나갈 것이다. 

드디어 부신 햇살 아래에서 굳이 그 햇살을 꿰뚫어 보며 대립하면서 살지 않는 법을 깨닫게 될 것 같다. <完>

 

  지극히 평범한 이 사람에게 거의 1년 동안이나 지면을 흔쾌히 내어 주신 전북포스트 편집진과, 서투른 제 글을 읽어주신 독자여러분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기회가 주어진다면 조금 뜸하게 여러분을 만날 것 같습니다.    /   이현옥(우석대 도서관 사서)

 

   
글쓴이 / 이현옥 우석대학교 도서관 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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