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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즐거움 - 정지월의 <라이프스토리>
Jiworl Seok 편집위원  |  jbpost@hanmae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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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20.01.10  14:4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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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사람들은 여행을 좋아한다.

어떤 이는 여행을 좋아하다 못해 관련된 일을 업으로 삼기도 하고, 어떤 이는 새로울 것 없이 무감각하게 이어지는 일상의 공전을 짬짬이 떠나는 여행으로 버티며 살아내기도 한다.

내가 모든 사람이라 하지 않는 이유는 내 주변에도 여행을 전혀 원하지 않는 사람이 가끔 있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같이 여행할 것을 권하면 "요즘 TV로 얼마든지 편하게 구석구석을 돈하나 안들이고 더 자세히 볼 수 있는데 뭐하러 발품 팔고 힘들게 가느냐"고 반문한다.  

내가 "그 것은 집에서 라면 먹으면서 TV 속 산해진미를 상상만 하는 것과 똑같은 이치"라고 항변하면 "어떤 스포츠든 한번도 해보지 않고 평생 관람만 하는 것과 뭐가 다르냐"고 되묻는데 할 말이 없다. 하지만 스포츠도 TV로만 보는 것과 필드에서 보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다.

 

 
여행을 하다 보면 나라와 나라를 경계짓는 국경선은 오로지 입출국을 위해 존재할 뿐 별 의미가 없다. /  사진 = 신현영

물론 TV 로 보면 클로즈 업도 있고 중요 장면 재생도 있고, 그리고 무엇보다 전문가의 해설이 있다. 하지만 그 모든 장점보다 뛰어난 생생한 현장감과 관중석의 열기. 그 맛이 우리의 주머니를 열게 하고 기꺼이 시간을 내어 우리를 그 곳에 현재하게 한다.

이것이 여행의 존재 이유다.

평생 교과서와 책에서만 보아왔던 평면적이고 관념적이었던 역사와 문화들이 입체적이고 구상적으로 내게 다가오는 순간을 느끼게 되면 온통 내가 주인공이었던 내 세계관에서 빠져나오게 된다.

그 자리에서 서면 유구한 역사와 그 역사를 살아냈던 수많은 사람들과 또 나와 동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세상의 모든 사람들 사이에서 점 하나인 나로 작아지는 겸허의 시간을 맞게 된다.

또 여행을 하다 보면 우리가 배워왔던 나라와 그 나라를 경계짓는 국경선들은 오로지 입출국을 위해 존재할뿐 별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들은 경계하는 나라들끼리는 문화도, 언어도, 사람들의 얼굴마저 서로 닮아 있다. 인간이 만들어낸 정치와 종교가 그들의 화합을 방해할 뿐... 

때론 같은 국가로 묶여 있는 타지방의 사람보다 인접한 타국인과 훨씬 닮아 있다. 실로 국경선은 무의미하고 실로 인간만이 역사의 진정한 유기체임을 느끼게 된다.

 

여행은 평소 쓰지않던 육체와 정신의 근육을 쓰게 하고 막혀있던 오감을 시원하게 열어준다.

평소 운동이라고는 입운동, 눈알운동 밖에 안하는 내게 하루종일 걸어도 지치지 않는 힘을 주고,  내게 다리에 아직 근육이 있음을 자각하게 하며, 실내파에 culturalist(문화주의자)인 내가 이토록 자연을 좋아하는 사람인 것을 깨닫게 해주기도 한다.

인간은 신이 창조한 자연을 모방하기 위해, 또 그 위대한 신을 찬양하기 위해 온갖 문화를 만들어왔고, 과학과 문명 조차도 신을 흉내내기 위한 mimicking(흉내내기)일 뿐이다.  

또 각 나라나 지방의 지형적 특산물로 만들어진 음식문화는 얼마나 흥미롭고 즐거운가... 세계의 음식이 다 달라보여도 알고 보면 다 거기서 거기다. 

향신료와 조리법이 조금씩 다를 뿐 한국의 해물칼국수와 이태리의 봉골레는 사촌이다. 한국의 계란말이와 스페인의 Fritatta, 한국의 신김치와 독일식 sourekraut도 이종사촌쯤 된다.  또 동남아 음식과 남아메리카 음식도 향신료와 맛이 많이 닮아 있다.

음식을 통해서도 세계는 떨어져 있고 멀어 보여도 서로 닮아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여행은 막혀있던  오감을 시원하게 열어준다. / 사진 = 신현영

꼭 해외로, 타지방으로 떠나지 못해도 삶의 쉼표를 찍는 것이 여행이다. 

주말마다 오르는 산행, 친구들과 걷는 산책 , 자전거나 오토바이로 달리는 길에서 어제와는 다른 바람과 다른 색상의 하늘과 구름을 보고 살아있는 기쁨을 느낄 수 있다면... 방안에서 조용히 읽는 책속에서 나와 달리 느끼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조금 넓어지는 시야를 갖게 된다면... 당신은 벌써 우연한 여행자가 된 것이라 위로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젠 세계 어느 곳에 가도 한국어가 들리고 웬만한 세계 대도시엔 한국 음식점이 있을 정도로 한국인들의 여행사랑은 유별나다. 

매년 전 인구의 절반이 해외여행을 다녀오는 수치라니 살기 어렵다는 불평이 꾀병으로 들린다.  상대적 빈곤이지 절대적 빈곤은 아니라는 얘기다.  

요즘 SNS의 위력으로 여행이 보여주기식 과시의 끝판왕이 된 느낌이다. 남이 가본 데는 나도 꼭 가야되고 먹어봐야 되고, 남 보다 먼저 가봐야하고...  그러니 사진 찍기가 필수다.

어느 곳이든 명소에 가면 남 의식 안하고 수십 컷씩 찍느라 자리를 독차지하는 여자애들이 넘쳐나 사진 한장 남기기가 쉽지 않다. 

또 요즘은 덜하다지만 고색창연한 아름다운 도시를 울긋불긋 수놓던 한국중장년층의 등산복사랑은 정말 끔찍하다. 그 옷차림으로 식당에 들어간다. 그 곳 사람들은 다 차려입고 한끼 식사를 즐기려 오는 데 옆테이블에는 등산복에 모자에, 오늘 어느 한국 TV 여행프로에서는 트레이닝복에 후드까지 쓰고 레스토랑에 들어왔다. 

 

   
정지월 전북포스트 애틀랜타 편집위원

요즘 스페인 순례길과 알베르게에선 한국인 기피현상이 생겼다 한다. 구도와 자기성찰을 위해 떠나는 타민족과는 달리 무슨 산악회나 동호회 해외여행쯤으로 여기고 오는 사람들이 삼겹살 굽고 술마시며 왁자지껄 분위기를 흐려 다른 사람들의 여정을 방해한다는 이유란다.

여행 기회가 증가하면 그만큼 뭔가 배우고 느끼며 민도도 함께 높아져야 할텐데 아쉬운 부분이다.

여행은 떠나기 전부터 시작된다. 계획을 세우고 일정을 짜며 짐을 싸는 순간에 이미 여행은 시작됐다. 

즐겁고 설레는 만큼 시간적 경제적으로 부담스럽기도 한 여행을 낭비하지 않고 최대한 즐기기 위해 당신은 얼마나 준비했는지... 부디 주머니만큼 마음 단도리도 잘해달라고 부탁드리고 싶다. /  정지월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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