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전주시 공보담당관 공보관리팀의 김을중 주무관 /

전북 전주시 공보담당관 공보관리팀의 김을중 주무관. /

"김 주무관님, 컴퓨터가 이상해요. 빨리 오실 수 있어요?"

"주무관님, 인터넷이 안 돼요. 프린터 연결도 안 되구요."

전북 전주시청 '맥가이버'로 불리는 김을중 주무관(60)을 찾는 동료들의 SOS요청이다. 보름 후면 이런 말을 들을 수 없다. 30년 공직 생활을 마치기 때문이다.

공보담당관 공보관리팀에 근무하는 김 주무관은 이달 27일 퇴직을 한다. 1990년 8월1일 특별채용으로 공직에 발을 내디딘 지 30년 째다.

그의 도움을 받아 온 많은 사람들이 그의 퇴직을 아쉬워하고 있다.

김 주무관이 하는 일은 영상·음향 장비 관리와 운영이다. 강당과 회의실에서 행사나 회의가 진행될 때 영상과 음향 장비를 다룬다. 그리고 장비들을 유지·보수하는 일까지 도맡아 한다.

주말과 휴일에도 제대로 쉴 수 없다. 문화관광의 도시 전주답게 휴일에 덕진공원과 한옥마을 등 외부에서 하는 행사에는 무거운 장비도 짊어지고 가야 한다.

당연히 집안일에 소홀할 수밖에 없고, 그래서 아내와 자녀들에게 미안한 마음뿐이다.

전북 전주시 공보담당관 공보관리팀의 김을중 주무관 /

그에게는 또 하나의 재주가 있다. 독학으로 공부한 컴퓨터 실력에서 비롯된 재주다.

"지금은 박물관에서나 볼 수 있는 '286' 컴퓨터를 쓸 때 'DOS'와 '워드' 책을 보면서 컴퓨터를 배웠습니다. 그래서 주변 사람들에게 컴퓨터 관련 문제들을 도와줬고, 그러다 직원들의 요청으로 컴퓨터를 조립해 주기 시작했습니다."

전주시에 근무하는 선후배, 동료들에게 조립해 준 컴퓨터가 100대를 훌쩍 넘는다. 물론 무보수로 해준 것들이다. 예전에는 시청 인근에 컴퓨터 부품을 파는 곳이 있었는데, 그 곳을 자주 이용했다고 한다.

휴일에도 아침 일찍 밖에 나가 밤 늦게 돌아오던 남편이 언제부터인지 일이 끝나면 컴퓨터 부품을 잔뜩 싸들고 오는 모습을 보는 아내의 심정은 어땠을까.

"아내가 몹시 싫어했죠."

김 주무관은 허탈하게 웃음을 지었다. 돈을 버는 것도 아닌데 아내가 좋아할 리 없었다. 더 큰 문제는 조립컴퓨터여서 직접 AS까지 해줘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중에는 컴퓨터 안에 자체 복구 시스템을 설치해 줬고, 새로 조립을 요구하는 사람에게는 '완제품을 사는 게 낫다'고 얘기를 했습니다."

그는 1998년 무렵 덕진예술회관에서 근무한 것을 제외하면 거의 대부분을 지금의 공보담당관실에서 근무했다. 그러다보니 기자들과의 접촉도 많았다.

노트북을 쓰는 기자들에게 네트워크 설정을 해주거나 프린터 연결을 해주는 것도 김 주무관의 일이었다. 그래서 그는 언제든지 부르면 나타나 도와주는 맥가이버였다.

30년 동안 자신의 시간을 투자하면서 많은 사람을 도와준 것에 대해 그는 "전혀 서운하지 않다"고 했다.

"부족한 시간을 쪼개 컴퓨터를 조립해주고 나중에는 AS까지 다녀야 했지만 그런 과정을 통해 사람들을 만나고 소통을 하고 한 것들이 제겐 소중한 자산이 됐죠. 앞으로도 좋은 기억으로 남을 것 같아요."
 

전북 전주시 공보담당관 공보관리팀의 김을중 주무관/

그는 6급이다. 6급이면 전주시에서는 대부분 '팀장'을 한다. 예전에는 '계장'이라고 불렸다.

하지만 그의 공식 직급은 '지방기계운영주사'다. 2013년 12월12일부터 지금까지 '지방기계운영주사' 직급을 유지하고 있다. 기능직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한계였다.

보름 후 그는 공직을 떠나야 한다. 지난 30년이 그에게는 어떤 시간이었을까.

"나름대로 열심히 한다고 했는데, 모르겠습니다. 당분간은 그냥 쉬고 싶은 마음 뿐이구요. 지금은 그저 막막합니다."

강당 음향 장비를 만지며 그는 "그래도 많이 쉬지는 않을 것 같다. 먼저 퇴직을 하신 선배들도 그렇더라"고 했다. 그러면서 "당장은 가정에 충실하고 싶다"고 했다. / 김춘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