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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도서관> 44, 영화 『리스본행 야간열차』 / 빌 어거스트
이현옥  |  jbpost201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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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12.03  15:2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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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분후 출발하는 리스본행 야간열차의 티켓, 그레고리우스(제레미 아이언스)는 강렬한 끌림으로 기차에 올라탄다.

당신은 어느 열차에 탑승하고 있습니까?

 

  십 몇 년 전인지 확실히 기억나지는 않는다. 탤런트 배용준이 출연하여 열풍을 일으켰던 드라마 <겨울연가> 배경을 쫓는 욘사마 여행이 일본 아줌마들 사이에서 유행하고 있었다. 나는 당시 그 상황이 이해가 가질 않아 고개를 갸우뚱 하고는 했다. 특히 일본의 중년 여성들이 괴성을 지르며 환호하는 모습들은 내 눈에 볼썽사나웠다. 가부장적인 일본사회에서 볼 수 없는 내용이어서인지 꽃미남 배우가 좋아서인지 구분도 가지 않았다.

  그런데 오늘 내가 리스본행 열차에 오르고 싶어 몸이 근질거리는 것이다. 노장의 제레미 아이언스처럼 지도 한 장 달랑 들고 트램에서 툭 뛰어내려 낯선 골목과 그 돌계단을 오르고 싶어진다. 어디 그뿐인가. 유람선 갑판 위 의자에서 넋을 놓고 도시의 높고 낮은 붉은 지붕을 쳐다보고도 싶다. 카메라의 경로대로 쫒고 싶다. 일명 영화 여행?을 하고 싶은 것이다. 일본 아줌마들을 약간 경멸했던 내가 말이다. 문학 기행은 해 볼만큼 해 봤다고 자신한다.(문학 기행이라는 말은 사전에도 나와 있다. 그러나 영화 기행이라는 단어는 없다. 본인은 기행보다는 여행이라는 말이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어 이렇게 표현함) 그런데 영화를 보고? 영화처럼 따라해 보겠다고? 나조차도 이른바 시각이미지에 매료되어 가고 있는가?  

   
 

  그렇다고 이 영화의 장르가 로맨스물로 낭만적일 것이라는 착각은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그 이면의 내용은 사실적이면서 또 긴박할 뿐만 아니라 서사 또한 뛰어나다. 포루투갈을 36년 동안 통치했던 살라자르 독재 정권 이후 그 마지막을 장식했던 카네이션 혁명기가 역사적 배경이다. 반독재 투쟁에 앞장섰던 과거 젊은 레지스탕스들과 “과거를 묻고 현재를 살고 있는”, (극중 ‘조지’의 대사) 시간이 흘러 현재는 노인이 된 그들 사이를 넘나들고 있다.

  스위스 베른에서 이혼하고 혼자 사는 고전문헌 선생 그레고리우스(제레미 아이언스)가 두 명이 두어야 할 체스를 혼자 두는 장면이 영화의 시작이다. 그리고는 이내 차가 떨어져 쓰레기통을 뒤져 그 티백을 재탕해 마시던 중년기의 무료한 일상은 우리네 현실과 같아서 친근하다. 출근길에, 자살하려고 다리 난간위에 올라가 있던 젊은 여성을 구하면서 무료한 그의 인생은 경쾌한 탄력을 받는다. 그녀가 그에게 남기고 간 빨간 코트와 거기 주머니에 꽂힌 책 한 권, 책 속의 리스본행 열차표 한 장의 우연이 그의 권태롭고 지루한 삶의 지형에 숨 가쁜 전환점을 가져다준다. 그는 가슴이 지시하는 대로 리스본행 열차에 탑승하고 그 책을 펼쳐 읽는다. 그리고 포루투갈의 암울한 현대사와 접하게 된다. 그 지점부터 나도 제레미 아이언스의 뒤를 쫓는 여행이 시작되었다. 스페인 살라망카에서 기나긴 여행은 끝이 나는데, 나는 지금도 열차 속에서 유람선 갑판 위 햇살 좋은 의자에 앉아서 오래된 도시 골목골목을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다. 영화와 현실을 분간 못하고 말이다. 트램의 레일처럼 얼굴에 주름이 골골 파인 저 남자배우는 또 얼마나 멋지더냐.

  이 영화도 상당히 불친절한 편에 속한다. 막바지에 이르러서야 자살 미수에 그친 빨간 코트 여인의 베일이 드러나서 궁금하기 짝이 없게 만들었다. 그녀는 혁명기 리스본의 악명 높은 비밀경찰의 손녀딸이었던 것이다. ‘리스본 도살자’의 손녀딸은 사랑했던 할아버지가 레지스탕스들을 고문했다는 사실을 알고 치욕과 자학으로 자살하고자 했던 것이다. 자식도 아닌 손녀딸이 말이다. 도살자 본인이 받아 마땅했던 것을 엉뚱하게도 손녀딸에게 치명상을 입힌 것이다. 목숨까지 걸게 한 것이다.    

  ‘하인리히 하러’라는 사람은 영화 『티벳에서의 7년』에서 브레드피트 역으로 나오는 실존인물이다. 오스트리아인으로 산악인이자 작가이다. 1944년부터 1950년까지 티벳의 라사에 머물면서 달라이 라마와 친분을 쌓았다. 그도 본인 인생에 오명을 남겼다. 하지만 죽기 전 그는 과거의 잘못을 자백했다. 2006년 1월 ‘오마이뉴스’ 인터넷신문에 ‘배을선 기자’가 쓴“<티벳에서의 7년>이 내 인생을 바꿨다.”는 기사를 한번 읽어 보자.

   
 

  「90년대 말 언론과 미디어는 그가 젊은 시절 친 나치 성향을 보였다고 보도했다. 언론의 의혹이 짙어지자 백발의 하러는 대중들 앞에 서서 자신의 과거를 시인했다. 그는 APA와의 인터뷰를 통해 "1938년 아이거 북벽 등반에 성공했을 때 아돌프 히틀러로부터 환영접대와 개인적 헌정의 사진을 받음으로써 국가사회주의 독일노동당(NSDAP)뿐 아니라 악명 높기로 유명한 나치친위대(SS)와 인연을 맺었다"고 밝혔다. 오스트리아인들은 하러의 자백에 "노령의 나이에 부끄러운 고백을 하기는 쉽지 않다"며 그의 행동을 "매우 용기 있는 것"으로 받아들였다. 미디어와 여론은 "그가 나치친위대 소속이었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지만 그것을 자백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로 하인리히 하러는 전혀 부끄러운 오스트리아인이 아니다"고 평가했다.」

  이 영화는 오랜 시간 내 곁에서 떠나질 않고 있다. 아무래도 복고풍의 풍광들도 한 몫 했으리라는 생각도 든다. 이 궁금증을 두 눈으로 확인할 날들이 조만간 오고 말리라. 꿈을 또 꿔본다. 일본아줌마들처럼 단체로 몰려다니며 관광하지는 않을 것이다. 제레미 아이언스를 만나리라는 상상은 애초부터 맘먹지 않을 작정이다. 다만 그의 뒤꽁무니를 밟을 생각이다. 리스본 해안 절벽 위에 앉아서 젊은 혁명가 ‘아마데우 프라두’처럼 글도 한 편 쓰리라. 우연과 기로 앞에서 선택하지 못하고 놓쳤던 기차들에 관한. 그리고 희생자들의 묘지에 카네이션 한 송이 바치리라.  / 이현옥(우석대 도서관 사서)

 

   
글쓴이 이현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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