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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남자의 늦깎이 '수학여행' <만남>
강찬구 기자  |  phil62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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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11.19  16:3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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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여행'을 떠난 세 남자 (왼편부터 송창재님, 강동암님, 박영근님) 

두 남자가 모의했다. 평생 수학여행을 못가 본 그 남자에게 ‘수학여행’을 선물하기로...

그 남자는 다리가 불편하다. 소아마비로 평생을 목발에 의지하고 살았다. 그래서 학창 시절에도 수학여행을 가지 못했다. 그 남자는 동해바다가 보고 싶다고 했다. 그를 위해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강동암님(60)이 기획하고 박영근님(61)이 연출하고 송창재님(65)이 주인공인 수학여행... 이들의 여정은 한 편의 로드무비를 보는 듯하다.

 

   
전주 부뷤온에서... 

전주 비빔밥 전문점 ‘부뷤온’에서 19일 그들을 만났다. 송창재님은 군산에서 차를 직접 운전하고 왔다. 식당 안에는 목발을 짚고 나타났다. 식사를 하면서, 그리고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1 “동해 바다를 보여주고 싶다”

이들 세 남자는 2019년 11월 12일부터 2박3일동안 동해안 일대를 돌았다. 전주에서 거제도를 거쳐 동해안을 따라 속초까지 올랐다. 거기서 국토를 종으로 가로질러 전주까지 무려 1천325km. 송창재님은 동해바다를 본 것이 처음이라고 했다.

 

   
동해바다 앞에선 세 남자. 

집이 군산이어서 서해바다는 많이 봤다. 혼자서 차를 몰고 남해바다를 돌아보기도 했다. 동해 바다를 보고 싶은 마음이 컸다. 이를 알고 두 사람이 계획을 세웠다. 서로가 바쁜 탓에 시간 맞추기가 어려웠다. 그러다 이 가을에 갑자기 실행에 옮기게 된 것이다.

먼저 거제도로 출발했다. 거제도와 부산을 잇는 가거 해저터널을 지났다. 부산에서 동해안을 따라 오르면서 간절곶과 호미곶을 차근차근 밟았다. 포항을 지나 수학여행의 백미인 경주를 찾았다. 경주 보문단지에서 설레는 첫 밤을 보냈다.

 

   
 
   
 

이튿날은 불국사를 다녀왔다. 그림으로만 보던 다보탑과 석가탑. 경주를 등지고 다시 올라 정동진을 거쳐 영덕의 고래불해수욕장에서 맨발로 모래도 밟아봤다. 목발은 모래 속에 푹푹 빠졌다.

정동진에서 점심을 먹었다. 송창재님은 파도 소리가 가장 인상적이었다고 했다. 서해의 파도와는 달랐다. 태평양 먼바다에서 밀고 오는 파도... “파도도 거세고 파도 소리도 달랐다. 정동진 앞바다의 파도 소리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회상했다.

 

   
 
   
수학여행의 백미인 경주 불국사. 

바다를 보면서 삼척으로 이동했다. 삼척에서는 강동암님의 친구가 귀하고 맛난 회를 대접했다. 송창재님은 ‘황제가 된 것 같은 밤’이었다고 했다.

셋째날은 강원도. 강릉에서 경포대를 보고, 속초에서 아바이 순대도 먹었다. 낙산사에 찾아가 저 멀리 아스라한 동해 바다를 품에 안았다. 전주로 돌아오는 길은 국토를 종으로 가로질렀다. 박영근님의 '애마‘가 고생이 많았다. 두 사람이 교대로 운전했다.

 

   

동해바다를 처음 본 송창재님.

 

   
정동진에서 함께 한 강동암님의 친구.

 

   
 
   
친구가 대접해 준 동해안의 음식들.

#2 “만날 사람은 만난다.”

송창재님은 “이 두 분이 아니었으면 실현될 수 없는 일”이라고 했다. 이들이 처음 인연을 맺게 된 것은 2-3년전. 전북장애인복지관 정호영 관장을 통해 서로를 알게 됐다. 그후 SNS를 통해 우의가 깊어졌다. 

레크리에이션 강사로 장애인을 자주 접하는 강동암님과 소아마비 장애를 평생 안고 사는 송창재님. 그리고 40대에 뇌경색으로 쓰러져 보행에 불편을 겪고 있는 박영근님. 서로를 이해하고 안아주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강원도에서... 

송창재님은 학창 시절에도 친구들이 수학여행을 데려가려 했으나 스스로 거부했다고 한다. 순전히 “폐 끼치기 싫어서...” 그의 삶 속에 박혀 있는 신조처럼 보였다. ‘다른 이에게 폐가 되면 안된다.’

하지만 이번만은 예외였다. 그만큼 우정과 신뢰가 쌓였기 때문... 강동암님은 군산에 오가면서 혼자 살고 있는 그를 찾았다. 같이 밥도 먹고, 같이 잠도 자고... 그러다 보니 서로의 사연도 알게 되고, 결국 꿈의 여정에 함께하기로 마음먹었다.

 

   
 
   
여행 도중 라면을 먹으며... 

송창재님은 평생 자신의 두 발로 걸어보지 못했다. 소아마비를 발견한 것은 생후 9개월. 전쟁이 끝난 판이고, 사회적으로 장애에 대한 인식도 약할 때라 변변한 치료 한번 받지 못했다. 공부는 열심히 잘했으나 세상은 그를 받아주지 않았다. 순전히 장애를 가졌다는 이유로... 그런 세상을 그는 관통하며 살아왔다.

 

#3 “비행기 타고 유럽 가자”

송창재님은 아직까지 비행기를 한번도 타지 못했다고 한다. 순전히 남에게 폐가 될 거 같아서... 하지만 이제는 비행기를 타고 유럽에 가서 장애인 복지 상황도 보고, 글로 쓰고, 또 국내에 접목하고 싶다고 했다.

 

   
경주 불국사. 

장애인으로 살아온 삶에 회한이 많았다. 특히 사회와 사람들의 시선. 그가 살아온 한국 사회는 모든 것을 효율성으로 따지던 세상. 그런 세상에서 장애를 가진 이들은 소외되고 무시됐다. 그 아픔이 고스란히 전해져왔다.

그가 꿈꾸는 세상은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있을 때 차별을 느끼지 못하는 환경‘이다. 유럽이나 미국은 그런 환경이라는 말을 들었고, 이를 확인하고 싶어 했다. 이들을 만나면서 비행기를 탈 수 있다는 자신감도 얻었다.

 

   
숙소에서 세 남자.

비행기가 인터뷰 도중에 화제가 됐다. 비행기를 한 번도 타지 않았다면 타야 하지 않겠느냐는 쪽으로 대화가 모아졌다. 유럽까지는 아니더라도 제주도는 한번 다녀와야 하지 않겠느냐는 결론.

머지않아 비행기를 타고 제주도를 다녀올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다. 물론 그 길도 이 세 남자가 함께... / 강찬구 기자

 

   
◇ 강동암님은 레크리에이션 강사이자 교수다. 85년에 시작했으니 30년이 넘었다. 각종 행사나 복지 시설 등을 찾아가 웃음을 선물한다. 지금까지 길러낸 레크리에이션 강사들이 2천여명. 어려운 이들에게 웃음을 주는 행복 속에서 산다. ‘긍정 에너지’가 넘쳐 그와 함께 있으면 누구든 힘이 붙는다.

 

   
◇ 박영근님은 잘 나가던 사업가였다. 하던 사업이 좌초되면서 뇌경색으로 쓰러졌다. 2000년도 그가 40대 초반일 때다. 인생에 큰 전환점을 맞았다. 처음에는 걷지도 못하는 최악의 상황이었다. 2개월 동안 병원 생활을 하고난 뒤 그는 ‘자신과의 싸움’을 시작했다. 지금은 매일 매일 2만보 이상을 걸으며 건강을 유지하고 있다.

 

   
◇ 송창재님은 시인, 수필가로 활동하고 있다. 법대를 졸업했고, 다시 사회복지학을 공부했고, 지금은 방송통신대 국어국문과에 다니고 있다. 약대 입학, 회사 입사, 공무원, 교직도 모두 면접에서 거부당했다. 그런 암흑 같은 시절을 견뎌왔다. 그래서 빵을 파는 노점도 하고, 과외교사도 하면서 호구지책 삼았다. 지금은 개인적으로 신춘문예를 준비하고 있다. 사회적으로 농아들에게 언어 교육을 하고 싶은 꿈을 만들어 가고 있다.  

 

   
인터뷰를 마치며... 왼쪽은 강찬구 기자, 뒷편에 왼쪽부터 박영근님, 강동암님, 송창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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