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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도서관>38. 책 『애도일기』 / 롤랑 바르트, 『아침의 피아노』 / 김진영 : 5
이현옥  |  jbpost201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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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10.22  15:5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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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비

  한동안 꾸지 않던 꿈을 다시 꾸기 시작했습니다. 아마도 어머니께서 저세상 사람 되기 서너 달 전. 싱숭생숭한 꿈들이었지만, 딱히 기억나지는 않습니다. 제 나이 오십 이전에는 꿈도 오랫동안 머물렀고 싸움 뒤끝도 격렬했었습니다. 저도 세상도 참 많이 변했습니다. 엊그제 일들은 깜빡깜빡한데 아주 오래전 일들은 속속들이 떠오릅니다. 나이 먹는 징조라더군요. 맞는 얘기겠지요. 헌데 엊그제 꿈자리는 선명할 뿐만 아니라 통쾌했었습니다. 아범의 문제가 확 풀리는 꿈이었으니까요. 조마조마한 마음입니다.

 

  무서운 지진이 일어났습니다. 오후 그 시각 저는 학교에서 근무하던 중이었는데 사실 젊은 친구들보다 제가 더 소란을 떨었습니다. 몇 년 전 이었던가요? 휴일 아침 설거지 하던 중 제 생애 흔들리는 공포를 처음 경험했지요. 유리잔이며 그릇들이 서로 부딪히며 내던 소리를 가끔 떠올립니다. 지금 포항이 그렇다고 합니다. 네 탓 내 탓 찧고 벼르고, 누구라고 아랑곳 할 수 있겠습니까. 이 세상 참으로 뒤숭숭합니다. 아. 이 꿈이었나 봅니다.

 

   
'아침의 피아노'의 작가 김진영. '아침의 피아노'는 '애도의 철학자' 김진영이 남긴 단 한 권의 산문집이자 유고집이다 . 임종 3일 전 섬망이 오기 직전까지 병상에 앉아 메모장에 쓴 일기다.

  제 집에서 텔레비전을 퇴출시켰을 때 당신은 심히 걱정하셨습니다. 젊은 우리들이 세상 돌아가는 소식을 모르고 살까봐서요. 제가 아침마다 <노컷뉴스>를 들으며 출근하고 인터넷에서 신문에서 너무 많은 정보를 습득한다는 사실을 아실 리가 없지요. 오늘은 ‘세월호’ 5명의 미수습 시신 찾기를 포기하겠다는 가족들의 절규가 출근길을 눈물길로 적십니다. 그 배를 뒤집어 세우는데 100억이 소요된다고. 찾아내리라는 보장도 없는데 국민 혈세를 또 쓰기에는 실로 몰염치하여 이제 목포 신항을 떠나노라. 그들 가족과 인터뷰하는 방송을 듣다가 저는 순간 ‘억’ 갓길에 차를 세우고 멍하니 하늘을 올려 보았습니다. 어머니. 저세상은 과연 있기나 한가요.

 

  스물 대여섯에 제가 쓴 글을 근래 들여다봤습니다. ‘꿈은 가져 볼 만한 것이다. 원망할 세상일이란 끝도 없는 것이다’ 어쩜 그때 그렇듯 잘 여문 애어른이었는지요. 그 나이 때보다 왜소해진 제 모습에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롤랑 바르트의 '애도 일기'
   
김진영 작가의 '아침의 피아노'

 

  어머니. 그렇게 된 지 2년 가까이 되어 갑니다. 창 밖에 가을비가 속절없이 내립니다. 내려다보고 계신가요? 다시는 이런 세상에 오지 말라며 울고불고 아우성치며 저세상으로 떠나보내고도, 아하 시간은 흘러갔지요. 가끔 지하수 뿜어 올리는 모터소리가 적막에 싸인 집안을 깨우곤 합니다. 

그렇잖아도 당신 드나들던 자리 텅 비어 요란한가요. 더군다나 매서운 겨울 시작될 것이라며 온갖 언론들은 걱정을 보태줍니다. 그런데 그런 걱정은 어디로 가버리고 입이 궁금합니다. 어머니께서 끓여주셨던 따뜻한 호박대국을 후루룩 불어가며 먹고 싶습니다. 

연한 새끼 호박 서너 개 손끝으로 자잘하게 뜯어 놓고, 약간 쇤 호박잎은 주물주물 푸른 물을 꼭 짜내어 준비해 놓았다가 쌀뜨물에 멸치 육수내고 된장 풀고 다대기 좀 넣어서 한소끔 끓여내 놓으면 우리들은 땀을 흘리며 맛나게 먹었지요.    

 

  어머니의 내음도 가물가물해지는데 야문 손끝으로 만들어낸 음식들은 그립습니다. 나는 추운 겨울을 딛고 얼굴을 내민 시금치가 가장 맛있다는 것과 겨울 초입에 나온 무는 보약이라는 것 등을 당신께 배웠습니다. 

나는 이제 제철 농작물과 생선 등속을 식구들 입에 넣어주려 애를 쓰고 있습니다. 엄마처럼 절대로 살지 않겠다고 장담했었는데 가만 들여다보니 어느새 당신 모습이 되어갑니다. 혓바닥과 입천정이 온통 헐어 물조차 못 넘기시던 당신. 시래기에 민물새우 넣고 자글자글 매콤하게 지져서 먹고 싶다 하셨는데 그거 한 사발 만들어 바치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가끔 어머니 인생에도 『원더풀 라이프』*가 있었을까를 생각하며 한숨짓습니다. 당신은 아실 리 만무하지만, 저는 당신 생의 행복해 했던 한 순간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왜 그때 논과 밭으로 돌아치느라 뱃가죽이 등짝에 눌러 붙어야 허겁지겁 찬물로 배를 채우고는 하셨잖아요. 다들 그러고 살았잖아요. 

여느 봄날이었어요. 그 날도 당연히 밥 때를 놓쳤겠지요. 밭일을 하다 돌아와 꽁보리밥 한 수저 몰아넣은 후 밥상을 마루 끝에 밀어 놓으시더라고요. 그리고는 토막잠 들었겠지요. 세상 시름 내려놓고 얼빠진 표정으로 말이지요. 이런 말하기 쑥스럽지만, 사실 저는 불안하곤 했답니다. 

엄마를 지켜야 한다는 강박을 떨쳐내지 못하고, 본의 아니게 착한 아이가 되어 집안을 맴돌며 엄마를 도왔으니까요. 우리를 내박치지는 않을까. 이 외딴집을 떠나지는 않을까. 두려웠습니다. 게다가 아무한테나 히죽대는 정신 나간 엄마를 둔다는 것은 얼마나 공포스럽던가요. 

다 큰 어른이 잠자다가 소리까지 내며 어린아이처럼 꺄르륵 웃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슬슬 겁이 났습니다. 모로 누워 단잠에 푹 빠진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흔들어 깨우고 말았지요. 당신은 아쉬워하며 일어나 사방을 두리번거렸습니다. 

정신 줄 놓지 않았다는 사실을 확인하려고 저는 묻습니다. 꿈속에서 누군가가 간지럼을 태워 웃었다는 답변을 듣고 그제야 안도의 숨을 뱉습니다. 그 정도의 웃음소리를 이승에서의 찬란했던 순간으로 기억하고 있다니, 이것 참 시시하지 않습니까?

 

  지금 거기 걱정 근심 없으신가요? 그날 그 소녀처럼 소리 내어 웃으시기를--- 그리고 거기 살만한 곳이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언제 또 기회가 있어 당신께 글월을 올리게 될지. 창 밖에 가을비가 제법 굵어지고 있습니다. (끝) 

*죽은 사람들이 生前 가장 행복했던 순간을 찾아 그 기억을 저승에 가지고 갈 수 있도록 그 과정을 담은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만든 일본 영화. 우리의 씻김굿이 떠올랐음.

/ 이현옥(우석대 도서관 사서)

 

   
글쓴이 이현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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