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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도서관>35. 책 '애도일기' / 롤랑 바르트, '아침의 피아노' / 김진영 : 2
이현옥  |  jbpost201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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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10.01  11:4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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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내 나이 이제 예순 쪽으로 기울어진 지 좀 됐다. 잘 살아왔다고 말하기에는 낯이 뜨겁다. 특히 가족, 그 중에서도 엄마와의 관계가 그러하다. 나이 드는 게 무슨 훈장인 줄 알고 엄마와 잦은 불화가 생길 때마다 아직 내가 너무 젊어 그런가 보다, 저 삶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날이 오겠지 하며 한탄과 모멸감에 빠지곤 했다.

나는 요양병원에 하냥 누워 계실 엄마께 도리랍시고 한 달에 두어 번 바깥 구경에 식사 대접, 목욕탕까지 무슨 코스인 양 의식을 치르고는 했다. 목욕도 하고 식사도 끝내고 마음이 좀 풀리는가 싶으면 돌아오는 차속에서 이 양반 여지없이 그 말씀을 꺼내신다. 예수 잘 믿고 천당 가야 된다. 내 자식들은 제대로 믿는 자식이 없어. 다들 지옥 불에 떨어질 생각하면. 곧 말세라는디.

나는 이 대목에서 번번이 참지를 못하고 백미러를 보며 소리를 지르곤 한다. 내 나이가 대체 몇인 줄 아느냐. 이제 내 인생에 간섭 좀 하지 말라. 천당 지옥 나는 믿지 않는다. 말세는 무슨...

싸했던 차속 공기가 웬만해지고 나니 집에 가서 내복이랑 교회 갈 때 입는 옷을 챙겨 와야겠다고 하신다. 이제 계단도 오르내리질 못하니까 찾아다 주겠다, 앞으로는 집 타령 좀 그만 하시라며 사정도 해 본다. 

 

  그러던 두어 달 전부터 갑자기 레퍼토리에 없는 말씀을 하신다. 용자, 용귀, 용숙이(나의 이복 동기)가 왜 찾아오지 않는지, 뭐 언짢은 일이 있는지, 용숙이 큰자식 결혼식에 못 갔더니 삐쳤는가 보다며 합죽한 입으로 중얼거린다. 

설상가상 오늘은 점례 딸 선영이한테 연락 좀 해보란다. 고 불쌍한 것들 소식이 궁금해 죽겠단다. 무슨 뚱딴지같은 말을 하느냐. 그 애들과 연락이 끊어진지가 언제인데 어디서 찾아내겠느냐며 버럭 큰 소리로 받아친다. 

너무 오랜만에 들어보는 이름. 내가 대학 졸업하던 해 직장암 수술 후 5년 버티다 죽고 만 점례 언니가 낳은 선영, 영훈, 선희를 가슴에 담아 두었다니 내심 놀랍기도 하다.

   

왼쪽에서 두 번째가 본인의 어머니(故 김용례 권사). 머리를 쪽진 어르신들은 내 어머니보다 20년가량 연배가 더 많은 분들로 교회에서 만난 인연들이다. 봉동의 마그네다리 밑으로 나들이를 나오신 듯.

이복 동기간 3명에 아버지가 다른 언니 둘, 그리고, 우리 5남매. 이 복잡한 가족관계 때문에 내가 얼마나 맘 상하고 살았는지 당신은 모른다. 어린 나이에는 가족의 범위에 대한 혼란 속에서 청년기에는 남부끄러움 때문에 얼마나 치를 떨며 숨기고 살았는지. 내가 왜 그렇게 결혼을 망설였는지 당신은 모를 것이다. 

걸림돌이 무엇이었는지도 모를 것이다. 당신이 우리 동기간을 뒷전에 두고 할머니와 고모들, 이복 동기간의 눈치를 보며 부엌 아궁이 앞에서 졸다가 고꾸라지던, 부엌 땔감 옆에서 쓰러져 자던 모습이 엊그제 일 같다.

 

  내 나이 세 살에 아버지 돌아가시고 “남편 복 없는 년은 자식 복도 없다”며 잦은 눈물 훔치던 당신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마당을 쓸다가 마당 가운데 오도카니 앉아서 토방에 놓인 고만고만한 신발들 쳐다보며 “저 신발들 언제 크나” 한숨 내쉬던 모습도 그려진다. 

이제 그들 눈치 좀 그만 보라고, 무엇이 그렇듯 무서워 그러느냐고 쏘아부쳐도 어머니는 뭔가가 아쉽다. 다시는 그렇게 살지 말자. 내가 어떻게 살았는지, 배고픔보다 두려웠던 것이 무엇이었는지 알기나 하느냐. 얽히고설킨 이 질긴 인연이 너무 싫다. 

나는 지금도 누군가 가족관계를 물으면 5명이라고 말하기도 하고, 8명이라고도 하고, 그 언니들 둘은 저세상으로 떠났으니 그나마 다행이지 않은가하며 가슴을 쓸어내리기도 한다는 사실을 어머니는 모르고 있다.

 

  죽을 고비를 넘긴 지난 달. 병실을 방문한 나에게 내가 당신의 엄마 같은 생각이 든다고 하셨다. 자네가 내(당신의 가슴에 손을 대며) 엄마 같은 생각이 들어서 든든해. 그리고 니 집이 꼭 내 집처럼 여겨져. 집에 한번 가고 싶어. 당신 방에 가서 꼭 찾고 싶은 것이 있다고 하셨다. 

그럼. 내가 엄마의 엄마나 마찬가지지. 엄마는 이제 아기가 된 거야. 엄마가 없으면 안 되는 아기. 마지못해 등을 쓰다듬어 주는데 틀니도 없는 잇몸을 내 보이며 환하게 웃는다. 

앞 침대, 옆 침대의 눈동자만 말똥거리는 할머니들을 가리키며 저기저기 아들과 딸들은 자주 와서 얼굴을 손으로 이렇게 만져주고 볼을 부벼 줘. 부러워하는 눈빛이 역력하여 난감하다. 차마 나한테 그들처럼 해 달라는 뜻은 아닌지, 잠깐 혼미해져 먹먹한 기운에 사로잡힌다. 

살가운 표현을 거의 해 보고 산 적이 없는 나는 멋쩍게 웃다가 엄마의 조끼에 붙은 보풀이나 몇 개 떼어내다가 그것마저 어색해 이내 손을 거두고 말았다.

 

   
글쓴이 이현옥

요새 꿈자리가 너무 사나워. 죽은 외할머니랑 외갓집 식구들이 자꾸만 나타나. 걱정하지 마. 외할머니가 빨리 데려가지는 않을 테니까. 날씨 따뜻해지면 더 맛있는 거 사먹고 집에 들르자고 하니 해맑게 웃으셨다. 

병원이 저기 보인다. 집에 당장 모시고 갈까. 집 앞으로 난 도로라도 한번 지나칠까. 나는 순간 집에 다녀가시면 목숨 줄을 놓을 것 같은 예감이 든다. 만감이 교차하는 마음을 순식간 정리하고 모질게 핸들을 확 꺾어 요양병원으로 향한다.

 

  엄-마. 아릿하고 애틋하게 불러보고 싶을 때가 가끔 있다. 아귀다툼, 원망이 묻어 있지 않은 소리로 고요하게 맑게 때로 안개 속을 헤매듯, 그러다가 아주 진하게 “엄---마” 하고. 깊은 울림을 담아 남들이 그러는 것처럼 저세상 사람 되기 전에 꼭 불러보고 싶다. 

뭐 그리 어려운 일이냐고 반문들 하시겠지만, 나는 영 자신이 없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어딘가에 속내를 드러냈으니 이미 치유가 시작됐다는 말을 한 번 믿어 볼 생각이다. / 이현옥(우석대 도서관 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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