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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도서관>33. 영화 '산하고인' / 지아 장커
이현옥  |  jbpost201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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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9.17  10:4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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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동하는 중국, 그리고 세계*

  나는 영화평론가 정성일을 좋아한다. 그의 책 『언젠가 세상은 영화가 될 것이다』를, 그 중에서도 ‘질 들뢰즈’가 한 말을 빌려 썼다는 이 서명이 유독 마음에 든다. 나는 가끔 그의 이 제목을 패러디하고 싶을 때가 종종 있었다. “이미 세상은 영화가 되었다”라고.

이 책은 출판된 지 10년 가까이 되었다. 그때만 해도 나는 영화를 즐겨 보는 편이 못 되었다. 철없는 아이들과 연로하신 어머니, 집안일이라고는 거의 하지 않는 남편 사이에서 부대끼느라, 호사를 누리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도 책은 이리저리 구르고 있는 모습이 보여 잠자리에 들기 전이라도 잠깐 들여다보곤 하였다. 이 책 제목이 내 눈에 번쩍 들어와 구입해 놓고 사실 지금까지도 완독하지 못했다. 양도 만만치 않고 생각보다 어려웠던 것이다. 

그러나 이 책에 실린 영화감독들 중에는 내가 무지해서인지 알 만한 감독들이 거의 없어서 그들에 관한 정보를 먼저 찾아보았던 것 같다. 그리스의 테오 앙겔로풀로스, 대만의 허오 샤오시엔, 일본의 가와미 나오세, 그리고 지아 장커 등이 그들이다. 그 후 지금까지 이 감독들의 영화가 나올 때마다 챙겨 보고 있는 편이다.

 

  아,,, 지아 장커라는 감독과 그의 영화 『스틸 라이프』를 그 책을 통해 알게 되었다. 그동안 내가 경험하지 못한 스토리와 장면을 찍어 대어 책을 멀리하게 만든 장본인을 만나게 된 것이다. 

그 어마어마한 싼샤댐을 만드느라 수몰되었을 수많은 터전들, 그곳을 떠나지 않고 고향 언저리에서 부랑아처럼 떠돌며 살던 청년 마크가 죽자 그의 시체를 배에 태워 고향쯤 되는 물 속에 수장하던 장면은 내 뇌리에 박혀 버리고 말았다. 

그렇잖아도 나는 한번 빠지면 끝을 파고 마는 못된 성질을 가진 인간이다. 지아 장커는 확실히 나에게 덫을 놓고 말았다. 나는 그의 영화를 보고 또 보았다. 나보다 10년이나 어린 그가 바라보고 염려하는 중국이, 유동하는 세계를 그려내는 시선이 그의 발뒤축도 따를 수 없겠다는 사실에 나는 질투해마지 않았으며, 때때로 위축되고는 하였다. 

나는 무엇에 연연하며 살아가고 있는가. 한갓 영화의 관객에 불과한 내가, 향유하고 소비밖에 할 줄 모르는 내가 가당찮은 짓을 일삼은 것이다.

 

   
 

그의 영화를 식자들은 중국의 장예모 감독과 비교하고는 했다. 중국 1세대 감독이라 불리는 장예모는 중국 정부와 타협했으나, 지아 장커는 그렇지 않았다는 것이다. 나는 이 점을 높이 사고 이를 지아 장커에 대한 칭찬으로 받아들였다.  

 

  2016년에 개봉한 『산하고인』을 나는 뒤늦게 보았다. 그를 잠시 멀리하고 다른 누군가에게 또 빠져있던 기간이리라...

전문가들의 혹평이 신경 쓰였는가. 모르면 몰랐을까... 우연히 접하게 된 판에 짜인 듯 떠도는 얘기가 자꾸 목에 걸렸다. 하여 이 글을 쓰는데 꽤나 애를 먹었다. 

롱테이크 기법이니, 화면 비율이 어떻고 하는 전문 용어들이 나를 불편하게 했지만, 저들이 평가한 낮은 평점과 상관없이 지아 장커는 아직도 나를 실망시키지 않고, 많은 것을 시사해 주고 있다. 

다행히 영화평론가 정성일의 생각은 나와 거의 비슷하여 그나마 안심이 되었다. 그는 역시 나처럼 그해 최고의 영화로 뽑았는데 이 평점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이 영화를 저평가했던 사람들에게 일갈하고 싶은 생각이 들 정도였다.

 

  이 영화는 세 가지 이야기를 화면 비율을 달리 하며 보여 주고 있다. 1999년 과거에는 돈이 없었어도, 배가 고팠어도 전통과 꿈, 공동체가 살아 있어 충분히 어여뻤다. 2014년 현재는 돈을 벌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으나 그럭저럭 견딜 만 했다.

2025년 다가올 미래는 돈을 모은 부자들은 유동하는 세계인이 되어, 살기 좋은 나라에 흘러가 국적 불명의 ‘나’가 되어 산다. ‘나’라는 존재는 산산이 부서진 모습이다.

 

   
 

오죽하면 아들 이름을 “달러(dollar)”라고 지었는가. 미국 돈 다 긁어모을 거라며 화폐이름을 갖다 붙였느냐 말이다. 

그 달러가 이혼한 아버지와 함께 호주에서 살아가는 모습이 만만치 않음을, 다가오지 않은 미래 2025년 청년이 되어 세계 속에 던져진 그가 본인의 정체성을 찾아갈 수 있을지 지아 장커는 의문을 던질 뿐이다.  

홀로 중국에 남겨진 달러의 어머니. 중국말도 음식도 낯선 아들이 돌아올 것이라는 꿈을 그녀가 갖지 않기를 나는 내심 바라고 있다. 라스트신에서 환영과 함께 희망을 갖게 하는 그녀의 저 평온한 모습이 자꾸 눈에 밟힌다. 아쉽게도 현실에서는 해피엔드가 잘 일어나지 않더란 말씀이다. 

젊은 시절 꿈을 꾸었고, 아팠노라. 여전히 제자리를 지키고 있는 ‘문봉탑’ 앞으로 그녀가 나아가고 있다. 모두 떠나고 없는 황량한 중국 여느 모퉁이쯤 될 것이다. 눈발은 희끗희끗 흩날린다. 젊은 그네들이 <Go West>라는 노래를 떼창하며 춤추던 것을 이제 그녀 혼자서 춤을 추고 있다. 

그래. 그렇듯 혼자인 게야. 나도 덩달아 침잠해져 견딜 수가 없다.

 

  『산하고인』은 지아 장커가 만든 『스틸 라이프』와 『천주정』, 『세계』등의 영화보다 색감도 등장인물들도 경쾌해 보인다. 실제로 혹자들은 그렇게 본 듯하다. 

그런데 관객인 나는 울고 있다. 웃어야 마땅한데 가슴 밑바닥에서 울컥 슬픔이 밀려온다. 원초적 쓸쓸함을 갖게 하는 무엇이 있다. 

이것이 예술이 지향하는 지점이라면 너무 잔인하지 않은가. 가슴 한 켠이 아릿하다. 나는 그 녀 홀로 춤추던 장면을 돌리고 또 돌려 보았다. 인생이 저렇듯 쓸쓸할 수 있는가... 하고 말이다.

/ 이현옥(우석대 도서관 사서)

*지그문트 바우만, 『유동하는 공포』 참고

 

   
글쓴이 이현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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