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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도서관> 29. 책 '코스모스' / 칼 세이건
이현옥  |  jbpost201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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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8.20  10:5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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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더운 여름 드디어 숙제 끝

  여름밤 해질녘이 되면 분주했던 날들이 있었다. 호박이나 감자를 넣고 수제비나 칼국수 끓이는 날이 그랬다. 누구랄 것 없이 우리들은 몸을 재빠르게 움직였다. 특히 칼국수를 만들 때는 어느 순간 온 가족의 노동이 분담되어 손발이 척척 잘 들어맞아 부엌일을 돕고는 했다. 

엄마의 밀가루 반죽이 시작되면 큰오빠는 비료 푸대를 가위로 자르고 앞면을 깨끗이 닦아 놓았으며(그 위에다 반죽한 밀가루를 방망이로 밀어 납작하게 만드느라 필요함), 작은오빠는 밥상이나 쟁반을 그 옆에 갖다 놓았다. 

그리고 오빠들은 흙담 가까이에 걸어놓은 무쇠 솥단지에 불을 지피고, 멸치 육수를 내느라 진땀을 뺐다. 깨끗이 쓸어 놓은 마당에는 멍석을 펼쳐 놓았다. 언니와 나, 동생은 엄마의 조수가 되어 썰어 놓은 칼국수를 조심스럽게 털어서 밀가루를 뿌려 상위에 좍 늘어놓았다.

 

  칼국수가 솥에서 끓고 있을 즈음 언제 초대를 하셨는지 동네에 혼자 사시는 할머니나, 우리 집일을 가끔 도와주시던 아저씨가 마당으로 들어서기 시작했다. 남자들끼리 여자들끼리 밥상위에 주욱 둘러앉아 우리는 후루룩 소리를 내며 이마의 땀을 닦으며 칼국수를 먹었다. 

지금 생각해 보니 그때가 우리 집의 여름 한철 가장 멋진 잔칫날이었다. 호박과 감자가 남아 있던 말복이 지날 때까지 서너 번 이 음식을 만들어 먹었던 것 같다. 아! 그러고 보니 이것이 복달임 의례상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 외 나머지 여름 음식은 거의 찬물에 꽁보리밥을 말아(특히 냉장고가 없던 시절 보리밥을 소쿠리에 담아 부엌의 북쪽 기둥쯤에 매달아 놓은 보리밥이 상하여 미끈덕거리는 기미가 보일 때는 이것을 찬물에 씻어 먹음) 우물에서 건져 올린 시어터진 열무김치를 얹어 먹거나, 고추장과 된장 넣고 비벼먹기, 이도 저도 없을 때는 맨밥이라도 우겨 넣어야만 했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어질머리가 돌아 핑핑 쓰러졌던 것이다.

 

  그 무엇이라도 배가 터지게 먹어 본 적은 여름밤 칼국수 잔치가 벌어진 날이었다. 손님들은 돌아가고, 우리 5남매는 멍석 위에 벌떡 누워 밤하늘을 올려보곤 했다. 

달이 구름 속을 지나가고 다시 우리들의 얼굴을 비쳐주고 봐도 봐도 진기한 풍경 아래서 무슨 얘기들을 나눴던가. 달나라에서 토끼가 방아를 찧고 있는 장면을 찾으려고 눈을 크게 뜨고 오랫동안 뚫어지게 보았던가. 저 달은 내가 움직일 때마다 따라서 움직이는지, 여러 차례 가던 길을 멈추곤 했었다. 

별들은 또 얼마나 반짝이며 예뻤던가. 반딧불들은 여기저기 흩날렸던가. 나는 별똥별과 반딧불을 구별하지 못하고 그 시절을 통과했던 것 같다. 그래도 중학교 문턱을 밟고 있던 큰오빠가 북두칠성이니 북극성을 카시오페이아를 손가락으로 가르쳐 주었다. 그러다 깜빡깜빡 졸기도 했을 것이다. 

뭇 짐승들의 울음소리에 놀라 눈을 뜨고 하늘을 올려다보면 달은 저만치 달아나 있는 듯 했으나 별은 가늠하기가 힘들었던 것 같다. 밤이 깊어갈수록 더 영롱했고 차가웠으며, 나의 것이라고 점 찍어놓았던 별이 어느 틈에 숨어 버렸는지 분간하기가 어려워졌다. 모깃불은 거의 사그라들고 모기들이 온 몸을 쑤셔 놓을 무렵에야 우리들은 방안의 모기장으로 기어들어갔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하늘에서 펼쳐지는 향연들이 궁금하지 않았다. 그리고 마루 끝에 앉아서 인간들이 만들어내는 불빛들을 바라보며 그것들을 쫒기 시작했다. 세상에는 밤하늘보다 재미있는 일들이 많아졌다. 

나는 동네에 한 대 두 대 들어오기 시작한 텔레비전을 밤늦도록 보고 다녔으며, 라디오를 들었다. 너덜너덜해진 만화책을 읽었다. 교회에서는 계속 이 세상은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 창조했다고 가르쳤다. 그런가 보다... 나는 의심하지 않았다.

 

  이번 여름 방학 나는 또 사람들을 괴롭히고 말았다. 『코스모스』를 함께 읽자고 방학이 시작되자마자 숨 돌릴 틈을 주지 않았다. 10여 년 전에 나는 600 쪽이 넘는 이 책을 빌려서 읽기에 무리라 생각되어 구입해 놓았다. 보무도 당당하게 혼자서 읽어보겠다고 말이다. 

그 기간 동안 예닐곱 번은 1장을 넘기지 못하고 펼쳤다가 닫았을 것이다. 그런데 이번 여름 방학에 완독한 것이다. 그것도 6주가 채 걸리지 않았다. 그 사이사이에 추리소설을 포함하여 3편 정도의 다른 책도 읽었다. 

무엇보다 나에게 박수를 보낸다. 이과(理科)적 요소라고는 손톱만큼도 없는 내가 이 책의 끝을 본 것이다. 그리고 나는 오래전에 버려 둔 밤하늘을 올려다보기 시작했다. 옥상에 돗자리를 깔고 모기 쫓는 향을 몸에 뿌리고 달과 별들을 헤아리고 있다. 

어느 것이 화성인지 명왕성인지 지금도 찾을 길이 없지만 나의 상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저 깜빡이며 북쪽으로 달아나는 비행기는 어디로 가는 것일까. 필리핀으로 가고 있을지 캄보디아를 향해 가고 있는지 아직도 나는 인간이 만든 불빛에 더 오랫동안 눈길이 머물고 있음을 부인하지 못하겠다. 그들처럼 나도 어디론지 멀리 날아가고 싶은 모양이다.

 

  “자연에는 신비와 경외의 대상이 아닌 것이 하나도 없다. 인간은 지구 이외의 다른 곳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인간은 이 지구에만 있다. 인간은 지구라고 불리는 이 자그마한 행성에서만 사는 존재이다. 우리는 희귀종인 동시에 멸종 위기종이다. 우주적 시각에서 볼 때 우리 하나하나는 모두 귀중하다. 그러므로 누군가가 너와 다른 생각을 주장한다고 해서 그를 죽인다거나 미워해서야 되겠는가? 절대로 안 된다. 왜냐하면 수천억 개나 되는 수많은 은하들 중에서도 우리와 똑같은 사람은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함께 읽고 있는 12명의 친구들. 힘내시라. 끝까지 읽기가 버겁거든 마지막 13장 <누가 우리의 지구를 대변해 줄까?> 이 부분은 꼭 읽기 바란다. 이렇게 읽어도 되느냐고 손가락질할 권리가 그 누구에게도 없느니. 무더운 여름 나는 드디어 10년이라는 길고 긴 시간 미뤄놨던 숙제를 마친다. 

홀가분하다. 그리고 비로소 교양 있는 사람 축에 들게 되었다? ‘페터 비에리’는 그의 『교양 수업』이라는 책에서 교양을 갖추기 위해서는 “우주의 나이가 백만 년 정도가 아니라 몇 십 억 년 정도는 되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하지 않았던가?

한편으로 이 심오한 책을 너무 가볍게 다루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스며든다. 언젠가 기회가 되면 이 책에 너덜너덜하게 붙여 놓은 포스트잇의 페이지를 열어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누고 싶다.  / 이현옥(우석대 도서관 사서)

 

   
글쓴이 이현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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