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리틀포레스트'의 한장면

- 나만의 리틀 압력밥솥 1-

  나는 영화 『리틀 포레스트』를 일본판과 한국판 모두 보았다. 원작은 일본 만화라는 사실을  알고 계시리라. 

젊은 여주인공은 도시생활 중 취업문제와 사람들과의 관계에 치여 그녀가 태어났던 농촌으로 귀향한다. 어렸을 적 엄마가 만들어줬던 음식을 떠올려서 손수 만들어 먹기도 하고, 소란스럽지 않은 자연 속에서 농사를 지으며, 고향을 떠나지 않은 그곳 친구들과 조우한 뒤 다친 마음들을 어루만지는 영화라 해도 무리가 없을 듯하다. 

일본판 2부 끝부분에서는 계몽주의적 성향이 일부 보이기도 했으나 그럭저럭 참을 만 했다. 그리고 수제비와 식혜, 특히 인절미 만드는 장면은 어렸을 적 내 어머니가 집에서 만들던 모습을 재현한 듯 했으며, 겨울나기 야채 저장 방법 등도 우리의 식문화와 비슷하여 조금 놀라웠다. 

한국판은 배우들이 깎아 놓은 듯 예쁘거나 잘생기지 않아서 굉장히 친숙하게 느껴졌다. 우리나라 배우가 끌리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리라.

영화 '리틀 포레스트'의 한 장면.

  나는 꽤 오래 전부터 구내식당을 잘 이용하지 않게 되었다. 그 이유 중 하나는 일단 내가 근무하는 건물 바깥에 식당이 자리 잡고 있으며, 나이가 50이 지나고부터는 추운 겨울과 더운 여름 한 끼니를 때우고자 움직이는 것이 귀찮아졌던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평소 어울릴 일이 없는 사람들과의 형식적인 인사말과 과장된 몸짓이 다소 불편해서 한두 번 피하다보니 지금은 거의 가지 않게 되었다. 더구나 나는 아침식사를 꼭 챙겨먹고 출근하는 타입이라 단체급식 느낌이 나는 구내식당 음식이 내 입맛에 맞지 않았을 수도 있겠다. 하여튼 억지 춘향 격으로 음식을 우겨넣지 않고 점심을 가볍게 때워도 견딜 만했다.

물론 나는 집에서 점심때우기용 먹거리를 챙겨온다. 대부분 우리 집 냉동고와 냉장실에 묵혀 있는 것들인데, 지금 생각하면 내가 이것들을 먹어치우지 않았으면 어찌 됐을까 싶다. 끔찍한 생각이 들기도 한다. 

전 세계 인구 중 10억 명이 기아에 허덕이고 있는데, 아니 오늘도 우리나라 젊은 청년들 중에는 편의점에서 유통기한이 지난 싸구려 음식을 냉동시켜 먹고 있다는데, 일말의 죄책감도 없이 버리고 말았으리라. 

나는 이를테면 우리 집의 잔반 처리사인 셈이다. 무슨 먹을 것이 그리 많으냐고 궁금해 하실 것 같아 말씀드리겠다. 첫 번째는 김치 등속이며 야채를 덥석덥석 안겨주는 손이 큰 내 시어머니와, 어느 순간 그 분과 거의 비슷해진 나 자신 때문이다. 그리고 누군가가 그런 것들을 줄 때 거절하지 못하고 냉큼 받고 보는 욕심쟁이 심보도 한 몫 차지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러다 보니 냉장고에는 시든 야채와 과일 떡 등이 수두룩하게 되었다. 그렇다고 잘 버리기라도 하면 오죽 좋으랴. 냉장실 물건들은 썩어나야 버리고, 냉동실은 썩을 리 만무하니 아마도 십 년 가까운 그 무엇들이 처박혀 있을지도 모르겠다.  

  일 년이면 두세 번 이것들을 처리하고 정리해 주는 대단한 특기가 있는 아들이 있어 그나마 다행이다. 그렇게 깨끗이 정돈하고 웬만한 것들 버리고 나서 자리가 넉넉해 진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냉장고는 원래의 모습으로 복원되고 만다. 

아들이 이 모습을 보고 짜증을 내기에 나는 라이프 스타일을 바꾸지 않으면 안 되었다. 냉동고에 있는 떡이나 만두 등을 점심으로 가져가자. 먹다 남은 야채나 과일, 요구르트 등을 해치우자며 한 개씩 나르고 있는 중이다. 그래도 여전히 냉장고 속은 줄어드는 낌새가 느껴지지 않지만 말이다.

영화 '리틀포레스트'의 한 장면.

  이제 자식들은 장성하여 둥지를 떠나고 부부만이 집을 지키고 있다. 더군다나 우리는 주말 부부로서 나 혼자 집을 지키고 있을 때가 더 많은 편이다. 10년 이상 사용하던 커다란 압력밥솥이 말썽을 일으키자 나는 제일 작은 사이즈의 밥솥을 새로이 장만했다. 

요것 아주 물건(?)으로 요긴하게 쓰고 있다. 어떻게 사용하고 있는지 어디 한번 들어 보시라.

이 압력밥솥에다 밥을 짓는 동시에 계란찜과 감자, 고구마, 옥수수, 단호박 얹어 쪄먹기, 그리고 보온 중일 때는 주로 냉동 떡과 찰밥, 만두 등을 넣어서 데워 먹고 있다. 겨우 이 정도에서 멈출 내가 아니다. 

장차 이 곳에 해볼 음식은 어렸을 적 어머니가 해 주셨던 황석어를 쪄내고 어린 생강 대궁 종종 썰어 된장에 묻혀 찌기 등이다. 호박잎과 가지찌기 이것은 조금 고난이도로 약간의 실험이 필요하다. 

어머니께서 무쇠 솥에 이것들을 찌는 모습을 보고 자랐는데 밥이 한번 끓어오른 후 뜸 들기 시작할 때 넣었던 것 같다.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압력솥은 중간에 뚜껑을 열 수 없기 때문에 이 부분이 난감하다. 그래서 나는 거듭 궁리 중이다. 

처음부터 넣으면 물러터질 것 같고, 뚜껑이 열리는 타이밍에 넣으면 설익을 것 같아, 후반 시점에 넣어 재가열을 해 볼 것인지 조만간 실험에 돌입할 예정이다. (계속) / 이현옥(우석대 도서관 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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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이현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