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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익어가는 삶'... 책방에서 찾은 두번째 인생<일터 삶터>-전주 송천동 동네 책방 '잘 익은 언어들' 책방지기 이지선
전북포스트  |  jbpost201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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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7.02  15:1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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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일’이라는 것은 무엇이었을까?

글을 쓰고, 이야기 지어내는 걸 좋아했던 나는 고등학교 때부터 친구들이 방송작가나 드라마작가가 되어야 한다고 해서, 막연하게 ‘작가’를 생각했었다. 그러다가 고3 무렵, 우연히 신문에서 본 ‘광고 카피라이터’ 구인 광고를 보면서 나의 진로를 결정하게 된다.

 

   
전주 송천동에 있는 동네 책방 '잘 익은 언어들'

그 직업에 대해 제대로 알지도 못하고 ‘반짝이는 아이디어’가 있으면 다 되는 줄 알고, 글 한 줄을 위해 밤을 새는 직업이 멋져 보이기만 한 것이다. 그렇게 ‘카피라이터’가 되겠다는 결심을 하였는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나쁘지만은 않았다.

국문학과에 입학해서도 마케팅 수업을 들으러 경영대를 오갔고, 월간 마케팅이라는 잡지를 밑줄을 치며 공부했다. 때론 낭만적인 시어와 상업적인 문구들 속에서 허우적대기도 했다. 전주대를 다니며 라디오광고 아르바이트를 시작했고, 졸업 전에 작은 광고회사에서 일을 배우기도 했다.

하지만 졸업과 동시에 나는 부모님께 서울로 올라가겠다고 했다. 그 때가 1997년 겨울, 즉 대한민국은 IMF로 금모으기 운동을 한창 하고 있을 때였다. 부모님은 한 달 치의 고시원비와 약간의 생활비를 주고 딸을 서울로 올려 보냈다. 당시의 부모님은 ‘한 달도 못 버티고 내려오겠지’라는 생각을 하셨다고 한다.

서울에 올라간 나 역시 사실은 많이 힘들었다. 낯선 고시원 환경도, 강남 한복판에 즐비한 전광판을 보면서 멀미를 느낄 정도로 말이다. 물어물어 찾아간 처음 만나는 광고계 선배한테는 쓴 소리도 들어야 했다.

 

   
'잘 익은 언어들'에서는 작가와의 만남 등 문화행사 외에 동네 반상회가 열리기도 한다. 

“돈도 없고, 빽도 없고, 학력도 없고...서울 만만치 않다, 다시 전주로 내려가라”라는 소리를 들은 날은 고시원에서 한참을 울었었다. 하지만 들고 온 아주 작은 압력밥솥에 쌀을 앉혀서 밥을 지어 먹으며, 나는 이상한 오기가 생겼다.

 

고시원비도 내고 생활비도 내려면 무조건 취직을 해야 했다. 돈이 필요했다. 당시엔 하이텔과 천리안을 통해 ‘구인광고’를 힘들게 알아내던 때라, 아는 언니한테 동전을 주면서 10분, 20분 단위로 후다닥 구인광고를 찾아 메모하고 면접을 보러 다녔다.

당시 서울은 IMF한파로 광고회사 구직은 쉽지 않았었다. 그러던 차에 꽤 좋은 조건의 회사에서 나를 채용했다. ‘광고마케팅팀’으로 채용이 되었다.

나는 광고를 만들게 되어 좋아했지만, 광고는 한 달에 한 건 정도나 만들었고, 그건 회사 영업을 위한 광고였고, 나는 매일 영어교재를 파는 텔레마케팅도 해야 했다. 하지만, 회사에서 광고기획사에서는 줄 수 없는 월급을 주었고, 수당에 따라 보너스가 붙었다.

나는 고민을 했지만 다녀보기로 했다. 그리고 한 달 월급을 통째로 ‘광고카피교실’을 등록하는데 썼다. 전혀 아깝지 않았다. 같은 꿈을 꾸는 친구들과 밤에 수업을 듣고, 선생님이 내주신 숙제를 참으로 열심히도 했다.

 

   
'잘 익은 언어들'이 진행한 북토크.

황순원의 ‘소나기’를 전체 필사해오라는 숙제가 있었는데, 지금도 보관중이지만 글씨체를 보면 얼마나 열심히 베껴 썼는지 알 수가 있다. 그 회사를 생각보다 오래, 1년이나 다녔다. 광고학원 교육도 끝나고, 이제는 광고회사에 들어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이력서를 냈고, 사보와 광고를 만드는 작은 기획사에 들어가게 되었다.

월급은 반토막이 났지만, 디자이너와 기획자가 있는 그 회사가 맘에 들었다. 그렇게 신입 카피라이터의 생활이 시작되었고, ‘카피’가 무엇인지 얼마나 ‘어려운’ 일이었는지 몸으로 체험하게 되었다. 그렇게 시작된 카피라이터의 명함은 이 회사, 저 회사를 거쳐서 꽤 굵직한 광고주를 가진 광고대행사까지 오게 되었고, 나는 쉬지 않고 일한 덕분에 많은 광고 인맥들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전주에 내려온 지 벌써 꽤 되었지만 지금도 연을 맺은 감독들, 디자이너들, 기획자들이 연결해주는 일들로 프리랜서 카피라이터 일을 하고 있다.

이게 사실 나의 1차적인 직업, 광고카피라이터라는 직업에 대한 이야기다. 벗어나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여전히 악착같이 하고 있는 일이다. 아니, 하지 않으면 생계가 안 되는 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요즘, 나의 머릿속은 온통 ‘책’과 ‘책방’으로 가득하다.

약 5-6년 전부터 우리나라에 작은 동네책방들이 여기저기 생겨나는 것들을 보며, ‘동네책방’과 ‘도서관’ 등에 관련된 책을 보게 되었다. 그리고 우리 동네에도 ‘작은 책방’ 하나 있으면 참 좋겠다라는 생각을 막연히 하게 되었다.

   
최근에 열린 동네 책방 행사 

그러던 차에 책을 읽으며, 이미 ‘책방지기’를 꿈꾸고 있는 나를 보게 되었다. 동네사람들과 옹기종기 함께 하는 작은 책방, 나는 나보다 먼저 대전에서 책방을 꾸리고 계신 '우분투북스'의 이용주 대표님을 만나 이야기를 들으며, 책방을 결심하게 되었고, 집에서 가까운 곳에 점포를 얻었다.

누구라도 와서 ‘위로’를 받을 수 있는 공간이면 좋겠다라는 생각으로, ‘책’이 매개가 되지만 결국 ‘사람이야기’가 주렁주렁 열리는 공간이 되길 바라면서 ‘잘 익은 언어들’의 문을 2017년 10월 열게 되었다.

일 년 반이 어떻게 지나간지 모르게 흘러갔다. 좋은 책들을 선별하여 SNS에 소개하고, 그 책들을 팔고, 작가님을 모시고, 다양한 행사를 기획하면서. 때로는 하루에 한 명도 만나지 못하고 가는 날도 있었지만, 그래도 일 년 반이 지난 지금은 그런 날이 대체로 줄어들어서 감사하는 마음으로 지낸다.

온라인 서점의 편리함을 뒤로하고 불편하고 느린 책방을 찾아주는 단골들이 생기고, 진심으로 책방을 응원해주는 사람들이 생겨서, 하는 일에 비해 밑지는 장사임에도 불구하고, 하루하루를 보람으로 마감할 수가 있었다.

 

아직은 책방이 어떻다라는 이야기를 사실 감히 할 수 없는 시점이라고 생각한다.

적어도 3년차 정도는 되어야 무슨 말을 할 수 있을 듯 하다. 지금은 열심히 이 공간에서 사람들과 책으로 ‘따뜻한 관계’를 맺고, 인연을 쌓아가면서 ‘책이 주는 소중함’을 전파하는 ‘책방지기’로서 열심히 살아갈 뿐이다.

하지만 확신할 수 있는 건, 책방지기를 하면서 얻는 보람과 즐거움이 남다르다는 것이다. 인건비도 나오지 않지만, 책방은 나에게 그 이상의 힘을 주고 에너지를 준다. 요즘 한창 다양한 행사를 진행하며, 혼자 몸으로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일들을 하고 있다고 주변 사람들이 건강을 걱정하기도 한다. 하지만, 할 수 있어서 하는 것이니만큼 즐기면서 하고 있다는 걸 알아주었으면. 더 많은 사람들이 동네의 책방들을 찾아 응원해주고 지지해준다면 3년, 5년, 10년을 함께 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글쓴이 / '잘 익은 언어들' 책방지기 이지선씨

아직 동네 책방이 먹고 사는 일에서 걱정을 덜기 위해서는 구조적인 많은 문제들이 산처럼 쌓여있지만 차근차근 풀어가 보리라 생각한다. 동네에서 책방이 지닌 역할, 한창 자라고 있는 우리 아이들에게도 중요하다고 생각하며, 일상에 지친 누구에게나 힘이 되는 그런 오아시스같은 공간이라고 생각한다.

동네책방이 있는 동네야말로 참으로 복 받은 동네라고 생각하며, 그 복을 많은 사람들과 나눌 수 있는 책방지기의 삶으로 두 번째 인생을 열어가려 한다. 송천동의 뒷 골목, 뜬금없는 책방이, 누군가에게는 인생의 환한 빛으로 자리하기를... 이 글을 쓰면서 소망해본다. / 이지선 

* '잘 익은 언어들' 네이버 블로그(https://blog.naver.com/gicopy) 

 

   

전주시 덕진구 송천동 '잘 익은 언어들' 위치 (카카오맵에서 따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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