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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도서관>15.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 I, DANIEL BLAKE' / 켄 로치
이현옥  |  jbpost201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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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5.14  11:4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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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은 실업급여를 받기 위해 찾아간 관공서에서 복잡하고 관료적인 절차 때문에 번번이 좌절한다. / 

 

묻고 또 묻다

 

  이런 영화를 보러 올 때는 꼭 혼자 와야 한다. 자막이 다 올라갈 때까지 엔딩음악이 끝날 때까지 우두커니 앉아 있다가 속으로 삼킨 울음이 멈춰진 마지막에 퇴장해야 한다. 그런데 이 영화는 순식간 엔딩 자막이 올라가고 음악(Sailing by)은 비교적 짧고 슬프기 짝이 없다. 함께 온 사람은 벌써 옷과 가방을 챙기느라 분주하고 이 비극의 속울음을 마무리할 틈을 내게 주지 않는다.

일행들의 뒤통수나 바라보며 나오는데 도무지 엘리베이터를 탈 수가 없다. 계단으로 내려가자고 그의 어깨너머로 화가 난 듯 툭 던지니 다행히 내 말을 알아듣는다. 내려오는 도중 눈가를 몇 번 훔치고서 1층 유리문을 통과한다. 언제부터 내리기 시작했는지 비바람이 얼굴을 때린다. 몽롱하던 정신이 웬만해 진다.

이 영화의 줄거리라고 해봐야 질병수당 등을 받고자 복지국가로 알려진 영국의 사회복지시스템에 종횡무진 도전하다가 너무도 높은 문턱 앞에 무너지는, 죽고 마는, 늙고 무지하고 병들고 가난해 터진 목수의 이야기일 뿐이다.

 

  이 영화 본 지 꽤 시간이 흘렀는데도 관공서 외벽에다 스프레이로 내갈긴 “I, DANIEL BLAKE ~, 나, 다니엘 블레이크는 ~” 가 빙빙 맴돌고 있다. 그의 이웃이었던 가난하고 불행한 ‘케이티’ 그녀가 다니엘 블레이크의 초라한 장례식에서 생전에 그가 써놓았던 편지를 소리 내어 읽던 장면.

‘~~ 난 굽실대지 않았고 이웃이 어려우면 그들을 도왔습니다. 자선을 구걸하거나 기대지도 않았습니다. 나는 다니엘 블레이크. 개가 아니라 인간입니다. 이에 나는 내 권리를 요구합니다. 인간적 존중을 요구합니다. 나, 다니엘 블레이크는 한 명의 시민,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도 뇌리에서 좀처럼 사라지지 않았다.

나, 이현옥은 친구를 속였고, 동료를 비난했고, 흙수저로 태어나게 한 내 부모를 원망했으며, 적당히 노동해도 먹고 사는데 지장 없는 그런 세상을 꿈꾸었습니다.

나, 이현옥은 너무 이기적이었고, 고집불통이었으며, 코앞의 먹이를 찾느라 급급하여 자존감이 끝도 없이 추락한 자신을 알지 못했습니다.

나, 다니엘 블레이크에 비하여 나, 이현옥의 삶은 한 마디로 졸렬했습니다. 뒷담화에나 목소리 톤이 올라가는 형편없는 인간이었습니다.

나, 이현옥은 한마디로 수치스럽습니다. 괴롭습니다.

 

  켄 로치 감독님! 다니엘 블레이크를 통하여 나, 이현옥에게 얼마나 많은 질문을 하실 작정인가요?

아무래도 나는 나 자신을 질책하고 학대하는데 이골이 나 있는 사람인 듯하다. 거대한 자본과 권력 앞에서는 전혀 작동하지 못하고 웅크리고 있다가, 찌질하게 나 자신이나 탓하는 못나터진 소시민일 뿐이다.

그런데 알고 보면 나만 그렇지 않아서 얼마나 다행인가 안도하기도 한다. 시인 김수영조차도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에서 “왜 나는 조그만 일에만 분개하는가.”하지 않았던가. 김수영 시인과 내 입장이 같을 리 없지만 이렇게라도 자신을 위로해 본다.

하지만 나는 아직도 세상물정을 잘 모르겠고 이런 생각에 부닥칠 때마다 가슴이 답답하다. 어느 곳에 해답이 있는지 손에 쥐어지지가 않는다.

   
평생을 성실하게 목수로 살아가던 다니엘. 지병인 심장병이 악화되어 일을 계속 할 수 없는 상황이 된다.

  이른 초저녁 봄비가 추적추적 내린다. 나는 지금 오랜만에 후배들과 함께 순대국밥에 소주를 시켜 놓고 웃픈 시간을 보내고 있다. 딸내미로부터 자꾸만 눈치 없이 카톡이 날아온다.

온라인으로 청년 구직수당 신청하던 중 앱 설치하랴 동의하랴 등등 복잡하여 포기하고 있던 차, 가까스로 취업이 되어 사회에 갓 발을 디딘 후 봉급쟁이 애환을 자주 토로해 왔었다. “사는 일이 쉽지 않다. 장난이 아니다. 온몸이 부서질 것 같다.”

나이 오십 이쪽저쪽의 그들과 나의 삶도 만만치 않은데 나이 어린 딸내미는 한술 더 뜬다. 나는 딸내미의 카톡을 무시한다.

각자 이고 짊어진 인생의 무게에 짓눌려 원망하다가 자책하다가 때로 소리를 지르기도 한다.

시를 쓰는 후배 한 명은 내일 아침 실업수당 인터뷰에 가야 한다며 일찍 귀가하고 남은 몇몇은 빗속을 뚫고 노래방을 향했다. 이것은 숫제 노래가 아니다. 우리는 지금 화가 뭉크의 <절규>를 온몸으로 보고 듣고 있다.

나는 노래방 한쪽 구석에 앉아 딸내미와 카톡을 주고받는다. “내가 얼마나 곱게 살아왔는지 알겠어.” 나는 답한다. “곱게 키우면 고운 놈 될 줄 알았지.” “ㅋㅋ” “근데 세상은 그렇지 않나 벼.” “ㅠㅜ”

지린내 풍기는 지하 노래방을 나오니 여전히 비가 내리고 있다. 다니엘 블레이크마냥 실업수당 인터뷰에 성실히 임하기 위해 일찍 귀가한 후배 시인이 집에 잘 도착했는지... / 이현옥(우석대 도서관 사서)

 

   
글쓴이 이현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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