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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회 혼불의 메아리 우수상_ 영원히 사는 길
김미영 기자  |  jjtoro@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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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5.13  11:5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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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히 사는 길(대상작품: 나라 없는 나라)

 

글: 오은혜(28세, 전라북도 전주시)

•희망의 봄, 절망의 겨울

최고의 시절이자 최악의 시절, 지혜의 시대이자 어리석음의 시대였다. 믿음의 세기이자 의심의 세기였으며, 빛의 계절이자 어둠의 계절이었다. 희망의 봄이면서 곧 절망의 겨울이었다. 우리 앞에는 무엇이든 있었지만 한편으론 아무것도 없었다. 우리 모두 천국으로 가고 있었고, 우리 모두 반대 방향으로 가고 있었다.

1789년 프랑스 혁명을 다룬 소설 『두 도시 이야기』의 첫 시작에서 찰스 디킨스는 극명한 대구와 대비로 당대 상황을 묘사했다. 1789년 여름 파리 시민들이 구시대의 악습에 저항하여 바스티유 감옥 문을 부순 지 백여 년 후, 지구 반대편 조선에서도 봉건 질서에 저항하여 새로운 나라를 꿈꾸는 동학농민혁명이 일어났다. 백여 년의 시차를 두고 두 나라에서 일어난 혁명 모두 그 과정에서 수없이 많은 ‘희망의 봄’과 ‘절망의 겨울’을 겪었으나, 혁명 이후 두 나라 앞에 펼쳐진 길은 극명히 갈라졌다. 시민혁명을 토대로 근대 부르주아 사회로 진입한 프랑스가 산업혁명을 거쳐 식민지 제국으로 나아갔다면, 백성들의 꿈을 처절히 짓밟은 조선은 결국 제 나라 백성들의 운명처럼 뼈아픈 침략과 망국의 역사를 겪어야 했다.

어릴 적부터 나는 역사를 좋아했다. 초등학교 시절 삼국시대 기행을 한다고 가족끼리 신라·백제 유적지를 탐방하기도 했고, 황토현 이모저모를 돌아보며 옛 동학의 발자취를 느끼는 황토현 역사 기행에 부모님 손을 잡고 참가한 적도 있었다. 우리 조상들이 걸어온 역사 앞의 수많은 시간들 속에서도, 우리 근대의 역사는 참 묘하다. 역사 과목을 좋아하던 나조차도 근대의 역사를 마주할 때면 마음 한구석이 이상하게 저리고 찌릿해져 오는 탓에, 내 마음을 보호하기 위해 일부러 외면하기도 했고 마주치지 않으려 한 적도 있었다. 비단 나뿐만 아니라, 우리 근대의 역사는 대중적으로도 가장 인기가 없고 치욕스럽게 여겨지는 시대이다. 부패와 무능의 역사, 혼란의 역사, 망국의 역사로 여겨지는 탓이다.

   
오은혜 씨는 대학원에 다니고 있다. 은혜 씨는 “교과서 흑백사진 속 전봉준의 강렬한 눈빛에 담긴 그의 영혼과 염원을 소설 『나라 없는 나라』는 너무도 섬세하게 그려냈다. 작품을 읽는 동안 단숨에 읽어 내려가는 대신 문장 하나하나를 음미했듯, 작품에 대한 감상문을 쓰는 동안에도 꽤 오랜 시간에 걸쳐 내 마음 속 우물로부터 한 문장 한 문장을 최선을 다해 길어 올렸다. 한 구절을 생각하는 데 며칠이 걸리기도 했으며, 섬광처럼 문장이 스치고 지나가면 혹여 놓칠세라 부리나케 적어두기도 했다. 그것이 소설 속 한 문장 한 문장으로 내 마음을 울린 작가에 대한 독자로서의 예의이자, 앞선 시간을 실제로 분연히 살다간 이들에 대한 후손으로서의 예의라는 생각으로, 한 자 한 자 정성껏 길어 올렸다. 공모전을 통해 세상에 조심스레 내놓은 감상문이었으나, 동시에 나 자신에게 들려주고 싶었던 이야기이기도 했다. 잊지 말아야 할 이름들과 잊으면 안 될 이야기들을 스스로 기억하려고 글을 썼더니, <혼불의 메아리> 공모전 수상이라는 잊히지 않을 순간을 선물로 받았다. 앞으로 무슨 삶을 살든 어떤 공부를 하든, 가슴에 늘 문학과 역사를 향한 뜨거운 덩어리를 간직하며 살라고 주신 귀한 선물인 듯싶다.”라고 소감을 말했다.


어릴 적 황토현 탐방 당시, 역사에는 가정이 없다지만 그때 만약 일본군이 개입하지 않았더라면, 그때 만약 우금치에서 동학 농민군이 일본군을 꺾고 서울로 진격했더라면 결과는 달라졌을까, 하는 아쉬움에 가슴이 찌르르했던 기억이 난다. 조금 더 세월이 흐른 학창 시절, 근현대사 교과서에 실린 유명한 흑백사진 한 장을 보았을 때 느꼈던 그 강렬하고도 묘한 기분 또한 생각난다. 체포된 후 가마에 실려 옮겨지는 전봉준의 사진. 사진 속 그의 눈빛 속에는 기개, 포부, 당당함, 못다 이룬 꿈에 대한 애석함 모두 들어 있었다. 압송되어 가는 와중에도 그의 눈빛은 한없이 당당했으나 어딘지 모르게 처연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사람의 눈빛은 그 사람의 영혼을 담고 있다고 했던가, 사진 속 그의 눈빛은 수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 온 힘을 다해 그는 눈빛으로 그의 영혼을 내뿜어내는 듯 보였다. 사진 속 그의 눈빛이 품은 사연의 깊이를, 못다 이룬 열망의 크기를, 백성들의 리더로 짊어졌어야 할 고뇌의 무게를 나는 감히 헤아려볼 수도 없었다.

 

 

•꿈 너머 꿈, 나라 너머의 나라

소설 『나라 없는 나라』는 한 장 흑백사진 속 전봉준의 눈빛을 통해 내가 가늠하기를 원했던 그의 영혼에 관한 이야기이다. 백성이 주인 되는 세상을 위해 분연히 일어섰다 찬란히 부셔져 내린 이들의 염원에 관한 이야기이다. 내가 본 것처럼 작가도 사진 속 전봉준의 눈빛을 읽은 것인지, 이 책에는 유독 그의 눈빛에 관한 묘사가 많이 등장한다. “체수는 작달막하였으나 가슴을 뚫어 꿰는 듯하던 눈빛”과 “사람을 압도하던 설법”을 가진 그는 “눈빛부터가 끓는 물 같아” “안광을 쏘아대므로” 상대편이 누구이든 간담을 서늘하게 했으며, “광대뼈가 툭 불거진 (…) 눈빛이 유독 후비고 들어와” 보는 이의 몸을 뜨겁게 만들기도 했다. 사람의 영혼이 눈빛을 통해 빠져나오듯, 소설 속 전봉준의 눈빛이 품은 그의 영혼 또한 끓는 물과 같이 뜨겁게 느껴졌다.

학창 시절 역사책에서 배운 동학농민운동은 이렇다. 1894년 격동의 시기 조선, 고부 군수 조병갑의 횡포를 견디다 못한 농민들이 고부에서 1차 봉기했다. 탐관오리 처벌과 부패 척결을 내건 농민들은 2차 봉기에서 파죽지세로 전주성까지 점령했으나, 청군이 아산만에 상륙하자 외세의 개입을 막기 위해 관군과 전주 화약을 체결하고 전라도 지역에 집강소를 설치해 운영했다. 그러나 청군과 일본군이 물러가지 않고 오히려 남의 나라 군대가 조선 땅에서 싸우는 청일전쟁이 일어나자, 외세로부터 나라를 구한다는 명분으로 다시금 3차 봉기가 일어났다. 공주 우금치 전투에서 일본군에 패한 후 전봉준, 김덕명, 손화중 등을 포함한 동학 농민군 주요 인사가 잡혀 처형당함으로써 동학농민운동은 미완의 혁명으로 마무리되었다. 이후 이들이 내건 강령의 일부는 갑오개혁에 반영되었다.

역사책에 쓰인 이 몇 줄의 역사를 삼백여 페이지의 소설로 만났을 때, 역사 속 인물들의 이름은 딱딱한 활자처럼 굳어진 대신 독자인 나와 함께 살아 움직였다. 흑백사진 속 인물이었던 전봉준이 뜨거운 피가 돌고 강인한 살이 붙은 한 인간이 되어 내 앞에 나타났다. 동학농민운동이 우리와는 동떨어진 초인들·영웅들의 비장한 결연함만으로 이루어진 게 아니라는 것, 혁명의 과정 속에서 그들도 우리와 똑같이 날숨과 들숨이 있는 사람들이었다는 것, 대의 앞에 초연하다가도 때로는 일상 속의 비겁함과 무서움 속에서 끝없이 고뇌하고, 그러면서도 서로의 체온에 기대어 한 발 한 발 나아가던 지극히 평범한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라는 것을 이 소설은 말해 주고 있다. 교과서 속 몇 줄의 역사에 피와 살을 붙인 작가의 노고가 대단하다.

역사소설은 실제 일어난 역사에 뿌리를 두고 상상력의 가지치기를 해 나가는 이야기 형식이다. 인물들에게 피와 살을 입혀 살아 있는 생명을 불어넣는 것은 작가의 몫이나, 아무리 유능한 작가라도 실제 역사의 물줄기를 뒤집거나 거슬러 올라갈 순 없다. 독자로서 이 이야기가 어떤 끝맺음으로 흘러갈지를 이미 알고 있는 상태에서 등장인물들의 운명을 읽어내려 가야 한다는 것은 사실 쉽지 않은 일이다. 역사 자체가 스포일러라는 말이 있듯, 이들이 어떻게 스러져 갔는지는 이미 백여 년 전 실제 망국의 역사가 처절하게 말해주고 있기에. 그러나 동시에 역사는 새로운 꿈 그 자체이기도 하다. 버겁도록 큰 역사의 물줄기가 그 안을 살아가는 개개인들의 삶마저 다 삼켜버리던 시대에, 그들이 어떻게 저마다의 선택으로 역사의 물줄기를 바꾸고자 했는지를 읽는 것만으로도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는 참 많은 것을 배운다. 사람의 마음을 얻는 일이야말로 세상을 바꾸는 일의 시작이자 궁극적인 끝이라는 것, 이것이야말로 백여 년 전 격동의 시대를 살아간 그들이 우리에게 전해준 푸른 꿈이었다. 나라 없는 나라 속에서 그들은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고자 싸웠다. 나라 너머의 나라를 만나고자 꿈 너머 꿈을 꾸었다.

두려움을 이기는 길은 두려움에 정면으로 맞서는 길뿐임을 그들은 알고 있었다. 또한 두려움에 맞서는 길은 함께 가는 길뿐임을 알고 있었다. 사람의 마음을 얻어 함께 갔기에 그들은 가장 약했으나 가장 강했으며, 가장 여렸으나 가장 단단했다. 이룰 수 없는 꿈을 꾸면서도 그들이 기꺼이 그 길을 걸을 수 있었던 이유이다. 이겨낼 수 없는 대상에 대한 공포조차도, 죽음에 대한 두려움조차도 모두 안고 나아갈 수 있었던 이유이다. 그들이라고 왜 두렵지 않았으랴. 왜 외롭지 않았으랴. 첫 전투를 앞두고 “사시나무”같이 떨던 을개의 가슴에 어느 순간 “더 이상 거짓말처럼 두려움이 사라져”버린 것처럼, 서로의 힘으로 함께 나아갔기에 그들은 어느덧 혼자가 아닌 모두가 되었다. 죽음으로써 그들은 영원히 사는 길을 택했다.

전주 화약 당시 도집강으로서 감사와 협의할 수 있는 권력의 자리를 마다하고 가장 고되고 낮은 자리에 있기를 자처한 소설 속 전봉준의 모습에서 나는 군주보다도 더 군주다운 리더십, 괴물과 싸우는 과정에서 스스로 괴물이 되는 것을 경계하고자 절제하는 책임감을 보았다. 또한 손아랫사람에게도 함부로 대하는 법 없이 예를 갖추고 존중하던 김덕명의 모습에서 나는 인간으로서의 품격을 보았다. 정치 체제의 경장만이 아닌 내면의 진정한 경장을 목표로 했기에, 안으로부터 사람을 진심으로 위하고 존중하는 법을 알았기에 그들은 사람들의 마음을 얻을 수 있었다. 그리고 사람의 마음을 얻는 일이야말로 어떠한 정치 체제에서든 최고의 이상향으로 치나 가장 얻기 어려운 궁극적인 지향점이다.

소설 속 전봉준이 오롯이 짊어져야 했던 고뇌와 책임감의 무게처럼, 혁명가는 외로운 법이다. 기존 사회에 만연한 사고방식으로는 감히 상상할 수 없는 사회, 상상하는 것만도 발칙하게 여겨지고 부정당하게 마련인 이상향을 간절히 꿈꾸기 때문이다. 역사상 수많은 혁명가들이 기존 사회의 부정의를 타파하고 모두가 잘 사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새로운 이론과 사상들을 제시해 왔지만, 그중 변혁에 성공하여 역사에 남은 사례는 손에 꼽을 정도로 적다. 인류의 역사가 발전된 방향으로 서서히 변화해온 데에는 수많은 세월 동안 좌절당한 혁명가들의 아픔이 깃들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혁명가로서의 삶은 슬프다. 그러나 아직 오지 않은 세상, 당시로서는 전혀 불가능해 보이는 세상을 꿈꾼다는 것은 혁명가들만의 황홀한 특권이다.

사람이 타고난 태생과 빈부의 차이로 인해 차별받지 않아야 한다는 이 당연한 가치가 당연시 여겨지지 않았던 시대, 비정상이 정상으로 둔갑한 지 오래인지라 과연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도 알지 못했던 시대였다. 그러한 시대에 자유, 평등, 애민 등의 가치를 바탕으로 사람들 사이의 연대를 통해 나라 너머의 나라를 함께 만들어 나가고자 했던 전봉준의 신념은 인간에 대한 궁극적인 믿음이 없이는 불가능한 생각이었다. 집강소 12개조 행동 강령을 통해 신분제 폐지, 빈부·남녀 차별 철폐 및 악습 타파 등 구시대적인 질서에 저항하며 시대를 앞서간 진보적인 신념은 인간 그 자체를 귀하게 보는 마음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생각이었다. 이러한 점에서 전봉준은 단순히 부정부패를 척결하는 수준이 아닌, 혁명 이후 우리 스스로 만들어 나가야 할 바람직한 사회까지 먼발치서 앞서 내다본 혁명가이자 인간을 사랑한 휴머니스트였다.

고독한 혁명가 전봉준. 그에 대해서는 홍명희가 단재 신채호의 죽음을 애도하며 표현한 문장을 그대로 인용해 보아도 될 듯싶다.

“살아서도 귀신이 되는 사람이 허다한데, '녹두'는 살아서도 사람이고 죽어서도 사람이다.”

 

•잊히지 않는 것들, 잊어선 안 되는 것들

산 이들은 죽은 이들에게 너무나도 많은 빚을 지고 있다. 어제를 살다간 이들이 그토록 바라던 오늘 이 세상을 우리는 당연하게 누리며 살고 있는데, 지금을 사는 우리가 그 모든 걸 잊고 산다면, 부끄럽지 않은가. 정말 부끄럽지 않은가. 나라 가장 낮은 자리에 처한 이들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당시 조선의 모습은 너무나도 숨통 조이게도 아프고 힘겹다. 모두가 이렇게 아픈 역사 속에서 찬란히 부서져 가는 모습이 나는 너무나도 마음이 아프다. 소설보다 실제가 몇 만 배는 더 아픈 역사였다는 걸 알기에, 소설을 단순히 소설로만 받아들일 수 없는 이유이다.

나라를 일제에 완전히 빼앗겼을 때 우리가 당했던 치욕도 치욕이거니와, 나라가 안으로는 제 백성조차 구하지 못하고 밖으로는 바람 앞의 촛불처럼 외세 앞에 하나둘씩 무너져가던 이 시기의 모습 또한 얼마나 큰 위기의식을 느끼게 하는지, 얼마나 그 숨통이 서서히 죄어오는지를 이 소설은 너무나도 잘 표현하고 있다. 소설을 다 읽고도 소설 속 현실로부터 쉽사리 돌아오기가 힘이 들었다. 작품이 주는 여운이 너무도 커서. 작품이 주는 울림과 아픔이 너무나도 무거워서. 절대 잊지 말아야 할 역사이다. 나라는 백성들을 살리지 않았으나, 백성들은 나라를 살리기 위해 일어섰다. 겉으로 보이는 모습으로는 나라에 반기를 들었으나, 궁극적으로는 나라를 돌이키고 살리기 위함이 본질이었기에 그들은 기꺼이 난당이자 역적이 되었다. 나라를 살리고자 하나 그것이 곧 자신들이 죽는 길임을 알면서 마지막 우금치 전투에 임할 때, 그들은 무슨 생각이었을까.

“목숨은 소중하지만 한 번은 죽는 법이다. 조금 당길 때가 오거든 그리하는 것이 사내의 일이다.”라고 을개에게 하던 녹두의 말처럼, 사람은 모두가 한 번은 죽는다. 다만 언제 죽는지 상대적인 시기가 다를 뿐. 중요한 것은 얼마나 생을 오래 지속하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강렬한 생을 살았는지가 아닐까. 너무나 가슴 아픈 결말이지만, 전봉준, 을개, 더팔이, 막동이, 김개남, 김덕명, 손화중, 이철래 등등의 주인공들 모두 자신들 각각의 생을 심지로 삼아 불태운 촛불이었기에, 그들은 짧은 시간이었으나 그 누구보다도 더 충만하고 더 뜨거운 생을 살았다. 대한제국 시기와 일제 강점기 때의 항일의병, 3·1 만세운동, ‘독재 타도’를 외친 4·19 혁명, 5·18 민주화 운동, 그리고 2016년 전국의 광장을 가득 메운 촛불집회까지, 사람 사는 세상을 꿈꾸었던 그들의 영혼과 염원은 우리 안에 살아 있다. 영원히 살아 있다. 그리고 그 기억으로, 정열로, 희망으로, 아픔으로, 지금의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 또한 그들이 그랬던 것처럼 또 다른 희망을 꿈꾸게 될 것이다. 사회의 진보란 끊임없이 노를 저어 강물을 거슬러 올라가야 하는 배와 같아서, 전봉준과 민초들의 꿈은 지금 여기 우리에게도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잊지 않아야 할 이름들과 잊을 수 없는 역사를 기억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우리 앞을 먼저 치열하게 살다간 이들에 대해 우리가 져야 하는 최소한의 책임감일 것이다.

정말 대단한 작품이다. 단숨에 읽어 내려가는 대신, 문장 하나하나에 들어 있는 소리와 빛깔과 분위기 이 모든 것들을 천천히 음미하며 읽었다. 전투 장면에서는 매복을 하며 기다리고 있는 봉준과 을개가 된 듯 나도 숨을 죽인 채 다음 장면에 촉각을 곤두세우기도 했고, 운현궁에 찻잔을 놓고 앉아 시 한 수를 적어 내려가는 대원군에게서 외로움의 향기를 느끼기도 했으며, 김개남에게 자신의 신념을 이야기하는 전봉준의 모습에 감탄하기도 했다. 교과서에서 읽던 동학 농민군의 격문을 소설의 맥락 속에서 읽을 때엔 가슴 한구석에 뜨거운 덩어리가 올라오는 것처럼 벅찬 감정마저 들기도 했다. 책장을 내려놓았음에도 나는 아직 작품의 여운으로부터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꿈 너머 꿈을 꾸다 스러져 간 수많은 이들을 보내지 못하고 있다. 소설 속 모든 인물과 사건과 대사들의 얼개가 이야기의 처음부터 끝까지 아주 촘촘한 실타래처럼 종과 횡으로 얽혀 있다. 불필요하게 끄는 대화 없이, 함축적이지만 그 안에 모든 진심과 애정과 고뇌와 아픔과 해학을 담은 문장들 또한 수작이다.

문학이 주는 힘은 참 크다. 그 어떤 진지한 강의보다도 역사에 대해 생각할 거리를 더 많이 안겨 준다. 사실을 건조하게 서술한 교과서 속 열 마디 말보다, 작품 속 인물들의 눈빛과 말투와 손짓과 숨소리와 소리와 빛깔 이 모든 것이 다 합쳐져 우리의 머리를 아주 강하게 망치로 내려치는 효과가 있다. 내가 이렇게 잊고 지냈던 역사의식을 되찾았듯, 어느덧 현실 속에서 딱딱하게 굳어 버린 가슴에 다시금 뜨거운 덩어리가 생겼듯, 그래서 다시금 그 시대를 알고 싶다는 목마름을 느꼈듯, 글 하나가, 소설 하나가 이렇게 한 사람 한 사람의 가슴을 뜨겁게 한다면, 이렇게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다면, 그렇게 하나하나의 꽃이 모인다면 결국 다시 꽃밭이 되리라. 기억할 수 있으리라. 그때의 기록들을, 아픔들을, 외침들을, 그리고 희망들을. 세상을 더 좋은 방향으로 변화시키는 것은 결국 사람들의 선하고 굳센 노력이라는 것을 이 소설을 통해 다시 한번 깨닫는다. 그 시대의 이들을 살아가게 한 꿈이 지금의 우리를 살아가게 하는 힘이 될 것이며, 그들의 염원은 언제까지나 우리의 눈빛 속에 담겨 영원히 살 것이다, 우리가 그들의 간절했던 푸른 꿈을 잊지 않는 한.

 

이룰 수 없는 꿈을 꾸고

이뤄질 수 없는 사랑을 하고

견딜 수 없는 아픔을 견디며

싸워 이길 수 없는 적과 싸움을 하고

잡을 수 없는 저 하늘의 별을 잡자.

/ 세르반테스, 『돈키호테』 중

 

*제2회 [혼불문학상 수상작 감상문 공모전] 혼불의 메아리 대상 수상작품

•주최: ㈔혼불문학 다산북스 전주MBC

•주관: 최명희문학관 혼불기념사업회

•후원: 전라북도 전주시 남원시


▲ 오은혜 씨는 대학원에 다니고 있다. 은혜 씨는 “교과서 흑백사진 속 전봉준의 강렬한 눈빛에 담긴 그의 영혼과 염원을 소설 『나라 없는 나라』는 너무도 섬세하게 그려냈다. 작품을 읽는 동안 단숨에 읽어 내려가는 대신 문장 하나하나를 음미했듯, 작품에 대한 감상문을 쓰는 동안에도 꽤 오랜 시간에 걸쳐 내 마음 속 우물로부터 한 문장 한 문장을 최선을 다해 길어 올렸다. 한 구절을 생각하는 데 며칠이 걸리기도 했으며, 섬광처럼 문장이 스치고 지나가면 혹여 놓칠세라 부리나케 적어두기도 했다. 그것이 소설 속 한 문장 한 문장으로 내 마음을 울린 작가에 대한 독자로서의 예의이자, 앞선 시간을 실제로 분연히 살다간 이들에 대한 후손으로서의 예의라는 생각으로, 한 자 한 자 정성껏 길어 올렸다. 공모전을 통해 세상에 조심스레 내놓은 감상문이었으나, 동시에 나 자신에게 들려주고 싶었던 이야기이기도 했다. 잊지 말아야 할 이름들과 잊으면 안 될 이야기들을 스스로 기억하려고 글을 썼더니, <혼불의 메아리> 공모전 수상이라는 잊히지 않을 순간을 선물로 받았다. 앞으로 무슨 삶을 살든 어떤 공부를 하든, 가슴에 늘 문학과 역사를 향한 뜨거운 덩어리를 간직하며 살라고 주신 귀한 선물인 듯싶다.”라고 소감을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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