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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초의 성장통>15. 집 3
이병초 시인  |  jbpost201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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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4.24  11:0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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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그러던 나비가 잡혔다. 품 팔러 온 길수 아제가 헛간에서 산태미를 들고 나오는 데 쥐를 입에 문 나비와 맞닥뜨린 것이었다. 아제는 산태미를 던져 나비를 덮쳤다. 우리 집 사정을 환히 알고 있는 아제는 괭이로 나비의 목을 누른 뒤 나일론 끈을 나비의 목에 걸었다. 나비는 미친 듯이 발버둥을 쳤다.

그러나 아제의 악력握力을 당해 낼 수는 없었다. 어느 순간 나비는 발톱으로 아제의 팔뚝을 그악스럽게 그어버렸다. 아제는 핏방울이 돋아나는 팔뚝을 보고 있더니 솥뚜껑 같은 손으로 닭장 옆 살구나무 굵은 가지에 나비를 대롱대롱 매달아버렸다. 나비는 캑캑대며 공중에서 이리 뛰고 저리 뛰면서 헛발질을 했다. 그러나 나일론 끈은 질겼다.

나비는 이제 죽을 것이었다. 시간이 갈수록 나비의 몸은 아래로 축 처져버렸다. 밤이 되었다. 식구들은 나비를 잊어먹고 마루에 앉아서 시장에 내갈 고구마순을 세려서 다발을 짓고 있었다. 그때 난데없이 지독하게 젖에 굶주린, 그악스런 애기 울음소리가 들렸다.

 

   

나비는 밤하늘이 찢어지게 두어 번 길게 울더니 담 너머로 사라져버렸다. 집에 흉한 일이 생긴 것은 여기부터였다. <본문 중에서>

우리 집에 웬 애기 울음소리냐? 식구들이 소리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리니 아, 살구나무에 목매달려 죽은 줄 알았던 나비가 나일론 끈을 풀고 마당에서 날뛰고 있었다. 제 목을 조이던 나일론 끈을 풀어내느라고 죽을똥 쌌는지 눈에서 푸른 불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미친 듯이 이리 뛰고 저리 뛰면서 하얗게 이빨을 보였다. 그러다 나비는 밤하늘이 찢어지게 두어 번 길게 울더니 담 너머로 사라져버렸다.

 

  집에 흉한 일이 생긴 것은 여기부터였다. 감나무 살구나무가 말라 비틀어졌고, 아버지는 벌이는 장사마다 때려 엎었으며, 우리 집은 셋방으로 물러났다.

내 집은 왜 이렇게 되었는가, 가난에서 벗어날 수는 없는가를 따져볼 때마다 나는 밤하늘이 찢어지도록 울고 집을 떠났던 나비를 떠올렸다. 셋방으로 쫓겨난 우리 가족의 불행 - 그 원인이 나비에게 있을 것 같은 확신이 들 정도였다.

그러나 그깟 고양이 한 마리가 집안을 절단 낼 수는 없었다. 속신화가 된 상상력은 그것만의 상상력으로 그치는 것이 순리일 것이었다. 속신화된 얘기들이 뿜어내는 시원의 건강성은 우리의 삶을 정서적으로 풍요롭게 해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임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하지만 우리는 깨쳤다. 세상은 신神 또는 속신의 섭리로 가득 찬 것이 아니라 우연의 연속일 뿐인 경우가 더 많다는 것을... 내가 누구를 만났든 어떤 일에 휘말렸든 그것이 행운이든 불행이든 그 일의 자초지종을 따지다 보면 사람의 지각으로 이해 못할 것들 투성이인데 그것을 죄다 신의 섭리도 돌리는 것은 억지스럽다 못해 불순하다는 것까지를.

우리 집에 나타나서 말썽이었던 구렁이와 고양이가 우리 집이 겪었던 일의 필연적 원인이거나 불행의 서곡일 수는 없었다. 더구나 그날 밤에 보여줬던 나비의 행위는 저주나 해코지가 아니라 제 삶의 또 다른 동력으로 작동되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인간이 그토록 얻고자하는 ‘복’과 동물은 아무 관계가 없으며 동물은 해코지할 능력을 아예 갖고 있지 않을 뿐만 아니라 애정결핍증을 갈갈이 찢어버리듯 밤하늘에 울려 퍼졌던 제 울음소리의 끝 거기에서 - 나비는 진정한 자유를 찾아냈을지도 모를 일이기 때문이었다.

   
우리 집에 나타나서 말썽이었던 구렁이와 고양이가 우리 집이 겪었던 일의 필연적 원인이거나 불행의 서곡일 수는 없었다. <본문 중에서>

동물의 행위를 인간의 불행한 삶에 접목시키려는 시도가 인간이 가진 이기성을 자복하는 것 같아서 입맛이 쓰다. 해코지로 친다면 사람같이, 사람에게 잔인하게 해코지하는 동물은 없을 터, 사람을 제외한 타 동물들 사이에는 평등이나 평화 이런 말의 느낌조차 없을 터여서 입맛이 더 쓰다. 

누구 얘기인지 기억이 안 나지만 “신神이 인간을 창조했다는 게 사실이라면, 신의 인간 창조 그것은 실패가 아니라 저주이다.”라고 쏘아붙였던 말이 요즘처럼 제대로 들렸던 적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구렁이가 저주를 했든 고양이가 해코지를 했든 비가 쏟아지는 날이면 아궁이에 고인 물을 바가지로 퍼내고 밥을 해먹었던 집. 탱자나무 울타리에 머루가 열려서 가을이면 입에 신물이 고이던 집. 6·25전쟁 때 후퇴하는 인민군들의 동상을 치료해주었다는 집. 하루가 멀다고 동냥아치들이 쪽박을 내밀었다는 집. 펑펑펑 쏟아진 눈에 집이 갇히면 참새 떼가 유난히 짹짹거리던 집. 큰고모가 멧방석만큼 큰 홍어를 사오면 삽으로 거름자리를 판 다음, 그 속에 깨끗한 재를 깔고, 그 위에 깨끗한 보릿대나 짚을 깔고, 그 위에 홍어를 놓고, 그 위에 다시 보릿대나 짚을 덮고, 그 위에 거름을 또 덮어서 너댓새 삭혔던 집.

우리 집은 망했다. 우물가에 있었던 확이며 절구통이며 소나무로 지른 선반 위에 놓였던 체와 얼레미들과 헛간에 걸렸던 산태미들은 죄다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다. 우리와 함께 살았던 구렁이와 고양이는 어디에서 잘들 사는지. 헛간에 나뒹굴었던 발통기 부서진 것들과 증조부가 남겼던 그 많던 한문책들이며 서안이며 벼루며 곱자며 돌을 갈아서 만들었다던 안경테는 어디에서 옛주인을 기다리는지.

내 나이 열다섯 살 되던 해에 전주시 팔복동 유제리 3가 448번지, 내 본적지는 남의 집 번지수가 되었다. / <다음 편에 계속>

 

   
이병초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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