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이었던가. 가족들 앞에서 선언을 한 적이 있다. 이제 1년에 한 번은 여행을 다녀와야겠다고... 혼인 이후 월급 한 번 떼이질 않고 내 밥벌이 이상을 해왔고, 가족 끼니를 충분히 챙겨줬으므로. 당당하게 큰소리를 쳤다. 

‘나도 쉬고 놀 권리가 있단 말씀이야’ 말인즉슨 해놓았지만 실천하기가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다.

올해는 어쩌다보니 두 번 가게 되는 횡재를 만났다. 이번 일본 다카마쓰 소도시여행은 오랜 시간 준비한 것이 아니라, 핸드폰에 날라 온 싸구려 비행기표 안내를 보고 정한 것이었다. 3일 전 정보를 입수하고 순식간 발동한 역마살. 

딸과 나는 이런 면에서 궁합이 척척 맞는 편이다. 작년 겨울 제주도와 부산, 경주 여행도 아주 재미있게 마쳤더랬다.

왜 가장 가까워야 할 가족끼리 상처를 주고받을까? .

  딸내미가 대학 3학년 때까지 우리는 엄청 싸우는 모녀지간이었다. 특히 딸내미가 고등학교 재학 중일 때, 남편은 우리 사이에 끼여 방문도 맘껏 열지 못하고, 그 애 방 앞을 지날 때는 발꿈치를 치켜들고 다녔다는 고백도 했다.

그 얘기를 이제야 듣던 딸내미는 “하하~~ 내가 그랬었던가?” 하고 멋쩍게 웃는다. 인생 더 살아봐야겠지만 나는 이제야 동지를 만난 듯하다. 아들만 키우는 엄마들이 딸 두어서 얼마나 좋으냐고 부러움을 표시할 때마다 나는 그걸 립 서비스로만 알았다. 그렇던 관계가 어떤 터닝 포인트를 만나 개선되었는지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는다. 

감히 짐작하건대 아마도 내가 딸내미를 향한 기대치를 낮추고 나의 욕망을 딸내미에게 투사시켰던 자신을 깨닫고 맘을 내려놓으니 관계가 좋아졌지 싶다. 그런 딸내미와 여행하는데 어찌 즐겁지 않겠는가. 서로 양보하고 싸우지 말자. 우리는 눈으로 약속하며 떠난다.

  나와 딸내미는 공항 검색대를 빠져 나와 희희덕거리며 쇼핑을 했다. 특히 쇼핑할 때는 호흡이 척척 맞는다. 꼭 물건을 사지 않아도 좋다. 그저 뭔가에 달뜬 느낌이랄까? 발바닥이 노긋노긋해 질 때쯤 우리는 대합실에서 신발도 살짝 벗고 허리는 느긋하게 자유로운 영혼처럼 늘어진다. 눈꺼풀도 사르르 내려앉는다.

그런데 신경질적인 여자 목소리가 귀에 거슬린다. 그래도 나는 눈을 딱 감고 버티고 있다. 하지만 이건 아닌데 하며 가까스로 눈을 뜨지 않을 수 없었다. 일방적이면서도 일관적인 짜증이 잔뜩 묻어있는 목소리의 주인공을 보고 싶었기 때문이리라. 삼십대 중반쯤의 젊은 여자였고, 상대에게 계속 면박을 당하고 있는 사람은 70대의 남자였다.

글쓴이 최광현은 한세대학교 상담대학원 교수이자 트라우마 가족치료 연구소장.  그는 가족치료에 관한 오랜 연구와 10여 년의 상담 사례를 바탕으로 쓴 전작, 『가족의 두 얼굴』에서 우리 마음에 생긴 가장 깊은 상처는 대부분 가족과 연결돼 있다고 말하고 있다.

  “아빠, 여권을 가방 속에 넣어 두면 어떻게 해! 곧 비행기 탈 텐데.”

  “쓰레기 들고 있지 말고 버리고 와!”

  “서 있지 말고 잠깐 앉아!” 등등.

고양이 앞의 생선을 연상케 하는 부녀지간이었다. 우리는 그들 눈에 띄지 않게 그 장면을 목도할 수밖에 없었다. 괜스레 마음이 불편해 질 즈음 우리는 비행기 타기 전 화장실에 들르자며 그 자리를 피했다.

  딸내미는 역곡역 근처에서 자취를 하고 있다. 방학이니까 집으로 함께 내려가자고 해도 막무가내다. 자신의 공간, 『자기만의 방』 (버지니아 울프)으로 가고 싶다는 말씀이겠지...

우리는 공항 지하철을 타고 가다 헤어지기로 합의했다. 내 옆에 대학생쯤으로 보이는 청년이 앉자마자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있다. 딸내미와 나는 20~30분 후면 헤어질 것을 예상하며 이 얘기 저 얘기를 나누고 있었더랬다. 

어디선가 중년의 남자가 청년 앞으로 다가왔다. 우리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고 딸내미는 내가 갈아타야 할 노선에 대해서 몇 차례나 상기시켜 주고 있었을 것이다.

아빠임에 분명한 그가 아들에게 무슨 얘기를 하고 있었다. 아들이 퉁퉁 부르튼 소리로 대답하는 소리가 우리에게 전해진다. 엄마의 태도가 마음에 안 든다는 것이다. 본인의 생각을 무시하고 자신이 결정한 대로 따르라고 한단다. 이에 청년의 아빠가  

“엄마는 가족들과 잘 지내보려고 많은 돈을 들여 가족여행을 주선했다.”

“외국음식에 싫증이 났으니 집에 가서 김치찌개를 해 먹자고 하신다.”

“아빠도 이번 여행을 통해 반성을 많이 했다. 엄마를 너무 무시하고 살았다. 엄마생각도 존중하자. 니 엄마 고생 많이 했다.”

  얘기인즉슨 아들은 햄버거를 대충 먹고 들어가자, 엄마는 집밥을 먹자며 서로의 감정을 자극했던 모양이다. 그래서 가운데 끼인 아빠가 이쪽에 앉아 있는 아들과 저쪽에 서 있는 아내 사이를 오가며 조율하고 있는 중이었다. 

게다가 아들은 엄마와 쌓아왔던 그간의 억하심정까지 마구 쏟아내고 있었다. 나와 딸내미는 금방 눈치를 채고 딴청을 부렸다.

  딸내미가 하라는 대로 지하철을 갈아타고 고속버스터미널에 도착했다. 터미널은 여전히 붐볐다.고속버스를 타자마자 잠깐 졸았나 보다.

“낯반대기를 한 대 쳐버릴라”

우악스런 남자의 목소리에 눈을 떴다. 이번에는 80 가까운 노부부였다. 

할머니 - 웅얼웅얼(잘 들리지 않음).

“씨부렁대는 주둥이를 문질러 버릴라 …”

그 할아버지 휴게소에서 호두과자 한 봉지를 사 들고 버스에 오르더니 할머니 코앞으로 불쑥 내민다. 여전히 우악스럽게 “먹어--”

  사는 게 왜 다 이 모양인가. 어디서부터 단추가 잘못 꿰어졌는가.

『가족의 두 얼굴』 책이름이 꽤 도발적이다. 이 책에는 얽히고설킨 나의 민낯이, 가족이란 이름으로 자행되는 온갖 폭력들이 아주 쉽게 씌여 있다. 순식간 내리 읽는데 이런 내용이 확 들어온다. 

‘우리는 모두 자신이 성장한 가족으로 회귀하려고 한다. 설령 그 가족이 비참했고, 늘 외로웠으며 불안했을지라도, 그곳은 너무나 익숙한 곳이기 때문이다(p.61)’

반복되고 귀향하려는 본능의 고리를, 악순환을 막아야 한다. 이미 무너진 가족일지라도 지금 쓰러지고 있을지라도 우리는 똑바로 세워야 할 의무가 있다. 

잘 생각해 보시라. 이 사회가 이 나라가 어쩌자고 이 지경이 되었는지 답이 나오지 않느냐 말이다. 그러니 시작의 글이라도 읽어 보시라. 가족문제는 ‘1+1’이라고 적혀 있다. / 이현옥(우석대 도서관)

글쓴이 이현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