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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초의 성장통> 13. 그해 여름 3
전북포스트  |  jbpost201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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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4.01  15:1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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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해 여름 3

 

  짜식들의 눈빛은 설마 꽃뱀 토막보다 맛있으려고? 하는 눈치였다. 내 음식 솜씨가 형편없다는 것을 알아버렸으니 더 그럴 거였다. 하지만 내 표정이 불쌍해보였는지 마지못해서 그러자는 투로 따라나섰다. 저녁참에 병을 놓고 아침에 걷어 올리거나 아침참에 병을 놓고 저녁참에 걷어 올리는 것이니 이보다 쉬운 일은 없었다.

우리들의 조바심은 다음 날 아침 탄성으로 바뀌었다. 비닐 고깃병 두 개에 한 냄비는 족히 될 피라미들 붕어새끼들이 팔딱거렸던 것이다. 그 자리에서 배를 따서 집으로 가지고 올라왔다. 아까운 신 김치를 코펠 바닥에 깔고 고춧잎만 한 붕어새끼들 피라미들을 얹고 그 위에 고추장기 된장기를 했다.

 

  바글바글 매운탕이 끓기 시작했다. 불을 약하게 줄이고 10여 분 더 다갈다갈 지지고 난 뒤 마늘 다진 것과 파를 숭덩숭덩 썰어 넣었다. 아직도 바글바글 끓고 있는 매운탕 뚜껑을 연 순간 우리 셋은 그야말로 밥도둑이 되었다. 맛있다고 뭐라고 얘기할 시간이 없었다. 말도 안 하고 막 퍼먹었다.

물고기들이 헤엄칠 정도로 물만 왕창 잡은, 고추장맛으로 간신히 체면을 세운 매운탕이었지만 금방 바닥이 났다. 매운탕에 곁들인 밥맛이야말로 더 말할 나위가 없었다. 매운탕국물에 밥을 먹는지 밥에 매운탕을 먹는지 분간이 안 갔지만 눈 깜박할 새에 밥공기가 비워졌다. 쌀 걱정을 해야 할 판이었다.

 

   
1987년 여름 변산 해수욕장. 글쓴이 이병초 시인과 채수영 시인, 문병학 시인(왼쪽부터)

우리는 물고기 추렴하려고 작심한 놈들처럼 아침저녁으로 실상사 앞 냇가를 얼쩡거렸다. 시도 때도 없이 여기를 얼쩡거린다고 해서 누가 안다리 후리듯 덤벼올 리도 없었다. 실상사 앞을 차지게 휘도는 냇물은 우리 발걸음을 이젠 안다는 듯이 아침저녁으로 꼭 한 냄비만큼씩 물고기들을 내줬다.

앞집 방위병 집에서 매운탕 끓이는 냄새를 맡았는지 군둥내 묻은 묵은지 한 포기 주고 갔다. 우리 입이 쩍 벌어졌다. 이 묵은지야말로 매운탕을 매운탕답게 하는 최고의, 최후의 재료가 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아침에 배 딴 것들을 소금 뿌려 햇볕에 말리고 저녁참을 기다렸다. 저녁참에 걷어 올린 것들과 합해서 매운탕다운 매운탕을 끓이기로 했다. 요번엔 물고기들이 헤엄치다 만 매운탕이 아니었다. 탕 끓일 재료에게 미안하지 않을 만큼의 물고기가 준비될 것이었다.

주머니들을 털어서 양념도 제법 갈무리해 뒀고 소주도 다섯 병이나 샀다. 저녁참에 피라미들 붕어새끼들은 우리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고깃병 속에서 팔딱거렸다. 물고기 두 냄비거리가 솔찬하니 이제 묵은지 넣고 끓이면 되는 것이었다.

땅거미가 지고 큰 코펠에 국물이 다갈거리기 시작했다. 묵은지 익는 냄새가 뱃구레를 꼬록거리게 했다. 수저를 들고 때를 기다리는 내 자랑스러운 두 친구는 밥도 안 푸고 매운탕 뚜껑만 바라봤다.

매운탕을 상위로 올렸다. 뚜껑이 열리자마자 우리는 허천들린 듯 탕을 먹어댔다. 소주병이 금세 비워졌다. 매운탕을 안주 삼아서 밥과 소주를 먹는 게 아니라 매운탕과 소주가 주식이고 밥은 반찬이 되어서 그야말로 찬밥 신세가 되었다.

 

  밤하늘에 별이 더 이상 뜰 자리가 없이 반짝이고 있었다. 보름에 가까워지는 달이 산마루에 뼘가웃 올라붙어 있었다. 매운탕은 식어갔지만 술자리는 흥청흥청 달아올랐다. 코스모스가 핀「고향역」으로 목을 푼 뒤「새타령」으로「비 내리는 고모령」으로 “녹슬은 기찻길”이 뚫리고 있었다.

황혼에 바닷가에 ‘좆 단배’를 가만가만 노 저어가며 뒷걸음치듯 들숨 날숨을 땅바닥에 내려놓다가도 냉큼 되돌아서서 “내가 지금 이 세상을 살고 있는 것은 21세기가 간절히 나를 원”하기 때문이라는, 어떤 노래가사의 과대망상증을 물어뜯듯 목타루가 격렬해지고 있었다.

문병학 레파토리로 막 돌아가는「황성옛터」에 휘영청 뜬 달이 흐붓한 빛을 맘껏 뿌리고 두만강에 삼수갑산에 소쩍새가 피 토하듯 자지러지는 그 사이에도 앞산의 딱따구리는 없는 구멍을 파대며 저절로 몸이 뜨거워지고 있었다.

 

  아침 일찍 눈을 뜬 건 병학이었다. 우물로 물 뜨러 간다더니 수대에 물은 안 떠오고 손에 뭘 한 움큼 쥐고 돌아왔다. 그게 뭐냐고 물어도 짜식은 대답이 없이 대뜸 그것을 매운탕 속에 집어넣었다. 이거 넣으면 매운탕이 더 맛있을 거라고 우리의 입맛을 돋웠다.

코펠이 뜨거워지고 있었다. 그런데 탕이 끓면 끓수록 이상한 냄새가 배어나오고 있었다. 그러나 이 정도 냄새쯤이야 우리들 먹성에 문제가 되지 않았다. 없어서 못 먹는 물고기 매운탕 아닌가 말이다. 나는 수저로 매운탕 국물을 떠먹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이냐. 도저히 먹을 수 없었다.

입엣것을 토방에 뱉어냈다. 그거 넣으면 더 맛있을 거라더니 그 냄새는 속엣것들도 죄다 토해버릴 만큼 비위가 상했다. 오만 인상을 다 쓰면서 아까 탕에 넣은 게 뭐냐고 물어봤다. 짜식은 ‘잼피’라고 했다. 아주 귀한 향료라고, 자기네 동네에선 이것을 김치에도 넣어먹는다고 했다. 그러나 나는 냄새조차 싫었다.

 

   
문병학과 박성자의 언약식. 뒷줄 왼편에서 두번째가 문병학, 세번째 한복 입은 사람이 박성자. 

숟가락을 딱 놓고 나는 상 뒤로 물러앉았다. 수영이도 물러앉았다. 병학이는 별 촌놈들을 다 봤다는 듯이 냠냠거리며 매운탕을 먹어치우고 있었다. 아예 국그릇에 탕을 덜어서 밥을 말아먹었다. 아아, 너 다 먹어라. 수영이와 내 여름방학도 너 다 가져라.

물고기 매운탕에 묵은지가 얼마나 귀한 줄 아는 놈이 이럴 수는 없다. 잼피가 도대체 뭣 하는 짜장이란 말이냐. 소설책 몇 권 읽은 것도 시 몇 편 끄적거렸던 것도 밤마다 목청 돋웠던 행복한 순간들도 어디로 다 도망가버렸다.

 

  복수를 하리라. 밥 당번도 안하고 국도 안 끓이고 몇 끼니를 맨입으로 삐대리라. 짜식이 배알 꼴려하는 짓만 골라서 하리라. 흥? 네가 박성자랑 언약식을 한다고? 지난 초여름에 내 인연을 박살낸 놈 문병학.

나를 갖잖네엄마 아들로 만들지를 않나, 내 인연을 박살내지를 않나. 그렇게 나를 외톨이로 만들어 놓은 것으로도 모자라서 제 여자 친구 박성자가 모나지자 같다고 그렇지 않냐고 염치도 좋게 내 속을 긁었던 놈.

혼인식도 약혼식도 아닌 언약식? 그것의 문화적 정체성은 도대체 뭣이란 말이냐. 거기에 안 가리라. 축하봉투도 안 하리라. 갖잖네엄마 아들의 뒤끝이 얼마나 독한지 톡톡하게 보여주리라. 그러나 그런 생각을 아무리 해봐도 채수영과 나만 밑지는 것 같았다.

인간 문병학이는 우리가 그러거나 말거나

“야덜아, 한번 먹어보랑게잉? 아따 맛시따, 어여 뽀짝 와서 먹어보랑게잉?”

약올리면서 그 귀한 묵은지매운탕을 혼자서 몽땅 먹어치웠다. 우리는 얼빠진 꺼병이가 되었다. <다음 편에 계속>

 

   
글쓴이 이병초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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