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발을 신으면 미끄러워서 빨리 달릴 수가 없다며, 무려 35년 동안을 한사코 맨발로 달리고 또 달려 온 인력거꾼 샬림.

숭고한 노동

  언젠가 동남아 여행 중 자전거 인력거를 탄 적이 있다. 어린 두 자녀와 남편, 그리고 나까지 4명이 탑승했었다. 하필 나이 든 아저씨가 우리들 차지였다. 그는 오르막길에서도 가끔 뒤를 보며 ‘나 아직 힘 좋다. 살아있다.’ 안심시키듯 활짝 웃으며, 즐거움까지 선사하며 열심히 자전거를 끌었다. 얼마나 황송하고 무안하던지 목적지에 도착하자마자 나와 남편은 다시는 인력거를 타지 말자고 약속했었다. 걸어서 돌아오는 도중 철없는 어린 것들은 꽤나 불만을 토했었다.

  그로부터 몇 년 후 故 이성규 감독(50세의 나이에 간암으로 죽다)의 다큐멘터리 『오래된 인력거』를 만났다. 하지만 이 영화는 나에게 고민을 안겨줬다. 주인공 ‘샬림’은 맨손 맨발로 인도의 캘커타 시내에서 인력거를 끄는 인력거꾼이다. 신발을 신으면 미끄러워서 빨리 달릴 수가 없다며, 무려 35년 동안을 한사코 맨발로 달리고 또 달려왔다. 돈을 모아 식구들이 모여 살 수 있는 집을 장만하고,병든 아내를 병원에 데려가 치료받게 해 주는 것이 꿈인 평범한 가장일 뿐이다. 그는 오늘도 뼈밖에 남지 않은 늙은 몸으로 그의 뼈처럼 낡은 오래된 인력거에 사람과 짐을 싣고 달린다. 오토릭샤(삼륜택시)를 사서 큰돈을 벌어 모아야만 그 꿈을 이룰 수 있기 때문이다. 그의 꿈을 보태주기 위해 인력거를 십시일반 타 줘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늘 아래 땀 흘려 노동하는 인간들을 보며, 왜 가난은 이들을 비켜 가야만 하는지 한참을 울었다.

  나는 배낭여행 숭배자지만 현실에서는 관광만을 일삼는 어리숙한 인간이다. 동남아 관광 상품 중 거의 빠지지 않는 것이 있다면 마사지다. 스무 살 정도의 어린 청년한테도, 내 나이보다 조금 덜 된 아줌마에게도 마사지를 받아 보았다. 그 때마다 느낌이 다 달랐다. 기록을 남겨놓은 것이 없어서 아쉽지만 그리 유쾌해 본 적은 없었던 듯하다. 겉으로는 시원한 척 피로가 풀린 척했지만 속은 영 딴판으로 흘러가곤 했던 것이다.

  이번 대만 관광에서는 누가 내 발의 피로를 풀어 줄 것인가. 차근차근 순번이 배당되는데 모두 남자였다. 게다가 2~3명은 나이가 60세에서 많게는 70세 이상으로 보였다. 나는 이내 무색해져서 좌우의 일행들에게 허튼 짓을 일삼을 도리밖에 없었다. 불편하다. 미안하다. 염치없다 등등 무슨 말인가를 시부리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다. 인체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있는 분들이라서 제대로 마사지를 해줄 것이라는 가이드의 사전 안내가 도움이 되기도 했다. 나만 혼자서 악악 소리를 낼 줄 알았는데 여기저기서도 괴성을 지른다. 나의 소리가 높아질 때 마다 그의 콧잔등에 땀이 송글송글 맺힌다. 1시간여 동안 저렇듯 성실하게, 자기 일에 자부를 가지고 노동하는 사람을 가까이서 본 적이 드물었나보다. 내 마음은 안절부절못했다. 우리 말을 짧은 토막친 멘트를 날리며 눈으로 웃음도 건넨다.

맨발로 70도 이상이나 되는 아스팔트 바닥 지열을 딛고 인력거를 끌고 달리는 ‘샬림’.

  나는 그의 성이 진 씨인지 임 씨인지 모른다. 나이도 정확히 알지 못한다. 그가 나처럼 30년 이상 한 직장에서 이런 노동으로 가계를 책임지고 살아왔는지, 은퇴 후 인생 후반전을 시작했는지도 모른다. 요샛말로 졸퇴, 명퇴하고 왔는지 그의 이력을 알 길은 없다. 심지어 내가 지출한 마사지비용에서 얼마의 돈이 그에게 건네지는지 장차 지불할 팁은 온전히 그의 주머니로 들어갈 것인지도 모른다.

  다만 나는 소망한다. 그의 이 숭고한 노동에 걸맞은 적절한 대가가 주어지기를. 인간으로서 대접을 받고, 자존심을 잃지 않으며, 존엄과 품위를 유지하는데 쓰여 지도록 간절히 바랄 뿐이다. E. F.슈마허의 『굿 워크』(=좋은 노동)가 맨발로 70도 이상이나 되는 아스팔트 바닥 지열을 딛고 인력거를 끌고 달리는 ‘샬림’에게도, 마사지하며 땀을 뚝뚝 흘리며 웃음까지 파는 안마사들에게도 평등하게 적용되기를 바란다.

  30년 이상을 한 직장에서 한 직종으로 살아 온 내 인생. 나는 제대로 땀을 흘렸는가. 노동의 가치를 인정받았는가. 분배는 정의로웠다고 동의할 수 있는가. 하여 노동은 아름다웠노라며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가.

  ‘샬림’에게 도대체 인생이란 무엇인가 감독이 묻는다. 인력거를 끌고 달리며 ‘샬림’이 답한다.                 

                      “수많은 사람들을 싣고 달렸어요.

                       많은 사람들이 행복하고 또 슬프죠.

                       하지만 모두 같은 길을 달렸다는 거예요.

                       행복과 슬픔이 함께 가는 같은 길을 말이죠“

/ 이현옥(우석대 도서관 사서)
 

글쓴이 이현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