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과 직장을 쳇바퀴처럼 돌기만 했던 도나가 '수영장'이라는 이질적인 공간에 도전한다.

“사람들 속으로 걸어 들어가니 ~ 다른 모든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 영화『다른 모든 것들』은  2017년 전주국제영화제에서 관람한 10여 편 중 내가 뽑은 최고의 작품이다. 영화광에 끼이지도 못하는 처지라 누군가 나의 선택을 보고 지극히 주관적인 평가라며 코웃음을 칠 지 모르겠지만 신경 쓰지 않겠다. 다르덴 형제 감독의 『언노운 걸』도 괜찮았지만 『다른 모든 것들』의 신인 여감독과 주인공 여배우에게 듬뿍 점수를 주고 싶다.

영화제 출품 영화를 재상영할 때 좋은 점은 인기가 높아 티켓을 예매하지 못했을 때 뒤늦게라도 볼 수 있다는 점인데, 불행하게도 이 영화는 그리 높은 점수를 얻지 못했는지 재상영 소식이 없다. 한 번 더 관람하고 놓친 부분과 그때 느끼지 못한 부분을 더듬고 싶은데 기회가 영 오질 않는다. 하여 이 글을 쓸 때는 여간 조심스럽지가 않았다. 

내가 잘못 본 것은 아닌 지 검증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서너 명이 더러 블로그에 올려놓긴 했더랬다. 그래서 약간의 도움을 받긴 했다. 2016년엔가 본 우크라이나 민주화운동을 다큐로 만든『마이단』도 그렇다. 시위를 시작하기 전 국기를 향해 모자를 벗어 가슴에 얹고 국가(國歌)를 부르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다.

나는 공무원 조직과 비슷한 구조 속에서 살아 온 도서관 사서다. 30년 이상 꼬박꼬박 월급을 챙겨왔다. 아침마다 일정한 시각에 나가 해질녘에 돌아왔다. 자연의 한 현상처럼 공장의 기계처럼 작동하고 살았다 해도 할 말은 없다. 때때로 비오고 바람 불었지만, 녹슬어 잠깐 멈추기도 했지만 반복적으로 끊임없이 생은 계속 되었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도나’, 그녀는 전형적인 공무원이다. 나보다 4~5년가량 더 나이도 있어 보이고 직장생활도 더한 듯하다. 남들이야 배가 고프든 고통을 당하든 상관하지 않고 타성에 젖어 살아 갈 뿐이다. 직장에서 그녀는 때때로 본인의 감정 상태에 따라 고객들을 대한다. 

가령 별것도 아닌 일에 트집을 잡기도 하고 간혹 그럭저럭 눈감아 주기도 한다. 틈틈이 불편한 화장실 변기에 앉아 립스틱을 덧바르고, 스타킹을 신는 불편한 장면도 있다. 남의 시선에 전혀 신경 쓰지 않겠다는 태도요, 어느 누구와도 관계하지 않겠다는 강한 표현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강력한 조직사회의 일원임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인간은 없고 오로지 개인만이 존재한다. 집에서도 몇 가지 일을 관성의 법칙에 따라 행동을 한다. 생명체라고는 고양이 한 마리 뿐. “내 아들”이라고 다감하게 부르는 유일한 존재다. 

똑같은 행위를 반복하며 로봇처럼 되어버린 그녀. 이 세상에 있는 듯 없는 듯 그림자처럼 살고 싶었던 그녀. 하지만 세상은 그녀를 존재감 없이 살아가도록 내버려 두지 않는다. 그까짓? 하찮은? 고양이의 죽음에 유난을 떠는 모습에서 과거 그녀의 상처를 짐작하게 하는 복선이 분명 있었을 터이나 불행하게도 나는 그 장면을 놓쳐 버렸다.

고양이의 죽음 이후 그녀는 수영장에 등록한다. 집과 직장을 시계추처럼 왔다 갔다 했던 그녀의 생활패턴이 조금씩 바뀌기 시작한다.

그 나이 들도록 꽃길만 걸어 왔으랴. 상처 없이 고통 없이 결코 살아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녀의 자아에 균열을 불러 온 사연이 비단 고양이의 죽음이었을까. 나에겐 별 것 아닌 고양이의 죽음이 그녀에게는 커다란 터닝포인트였던 셈이다. 

그 사건 이후 그녀는 수영장에 등록한다. 집과 직장을 시계추처럼 왔다 갔다 했던 그녀의 생활패턴이 조금씩 바뀐다. 그러면서 사람과 사물을 대하는 태도도 조금씩 달라진다.

수영장 샤워실에서 망연자실 그녀가 앉아 있다. 누군가가 다가온다. 등을 밀어준다. 피도 눈물도 없어 보이던 그녀가 울음보를 터트린다. 그래. 그렇듯 한바탕 울고 누가 나를 일으켜 줄 때 손 내밀면 되는 거지. 인생이 뭐 별건가...? 화면 속 그녀의 등을 어루만져 주고 싶다. ‘도나, 당신이나 나나 참으로 버거운 짐 이고 지고 살아왔군요.’

아마도 그녀는 사람들 속으로 세상 속으로 더 깊숙이 걸어 들어갈 것이다. 그리고 이래저래 피하면서 한쪽으로 밀어놨던 다른 모든 것들과 해후하게 될 것이다. / 이현옥(우석대 도서관 사서)

이현옥 사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