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지향하는 삶, 함께 책읽기 공동체 2                          

 - 제주 4·3항쟁, 너븐숭이 애기들 돌무덤 앞에서 울다

소설『태백산맥』을 읽노라면 제주 4·3 항쟁과 여순사건이 자못 궁금해진다. 아니 좀 더 깊이 알고 싶어진다. 공부란 것이 이런 것 아니겠는가. 모르는 것이 더욱 많아지고, 자꾸만 궁금해지고, 알고 싶은 것을 쫓아 파고 들어가다 보면 빠지게 되는 것. 그래서 계속 읽고 탐구하게 되는 것이리라. 

이것을 재미있어 하는 우리 팀은 방학이 시작되자마자 제주도로 역사문학기행을 가기로 맘먹었다. 우리는 기행을 가기 전에 몇 가지 약속을 했다. 맛집 순례하지 않기, 폼 나는 장소에서 자지 않기. 허튼 곳에 돈 쓰지 않기 등이 그것이다. 

사실 나 빼고는 돈도 없는 학생들 처지인지라 이런 제안은 환영해마지 않았다. 꽉 찬 2박 3일 동안 우리는 1인당 18만원을 사용했으니 그럭저럭 별점 4개 정도를 줄 만한 여행이었지 않은가 나름 자부한다.

  기말시험이 끝나자마자 나는 서두르기 시작했다. 방학이 이슥해지면 딴 생각들이 도질 것이므로 얼른 초반에 해치우자. 일단 비행기표를 예매할 돈을 갹출하여 표를 사 놓자. 현기영의 중편소설「순이 삼촌」을 읽자. 오멸 감독이 만든 영화「지슬」은 모여서 함께 보자. 그리고 기획과 리더는 ‘정심’이가 맡기로 하자 등등. 

‘서당 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는 속담을 예를 들면서 일을 맡기니 정심이의 환한 얼굴이 더 밝아진다. 함께 읽기 한 세월이 3년차로 여하튼 시간은 흘렀고 오늘도 우리들은 몸을 움직이며 뭔가를 도모하고 있다. 

이번 기행에는 모두 6명이 함께 하기로 했다. 이번 지면에서는 지난번 ‘책읽기 공동체1’에서 스쳐 지났던 친구들 얘기를 잠깐 소개할 수밖에 없음을 양해하시기 바란다.  

  나는 ‘선구’ 언니(50대 중반의 만학도)에게 미안해 죽을 지경이다. 그녀는 지난번 노고단과 이번 제주도에 갈 때 택시비로 거의 10만원을 썼다. 집이 군산으로 새벽에 나서야했기 때문이다. 안타깝기 이를 데 없지만, 그 비용을 감수하고도 참석하는 그녀의 의지가 대단하다고 할 밖에 딱히 설명할 길이 없다. 

제주에서의 마지막 날 ‘문학의 밤’에 낭독할 만한 자신의 변변한 글이 없다며 현기영 작가의 글을 발췌해 가도 되겠는지 조심스레 묻던 언니(나보다 어리지만 마땅한 호칭이 없어 그렇게 부름). 영화「지슬」은 너무 무섭고,「순이 삼촌」은 가슴이 아파서 읽느라 힘들었다고 했다.

너븐숭이 기념관 옆『순이 삼촌』문학비.

  ‘수연’이는 우리의 보배다. 아직도 젖살이 빠지지 않은 것처럼 통통해서 귀여운, 하는 짓이 너무 예쁜 1학년 막내. 겨울방학을 야심차게 보내겠노라 다짐을 보여줬는데 우리들은 모두 웃었다. 어디 계획대로 되는지 두고 보겠다며 약을 올려줬다. 

그녀는 집단학살의 현장 조천읍 북촌초등학교. 그 옆 너븐숭이 애기들 돌무덤 앞에서 눈물 콧물을 찍어냈다. 나잇살 먹은 우리들을 울컥하게 만든 장본인. 이런 친구가 천제연 폭포에서 고난의 계단을 오를 때 ‘준호’ 오빠가 또 손과 발을 이용해 기어 올라가자, 팩 토라져 “나는 인간의 존엄성을 지킬 거예요” 하며 그 힘든 계단을 2개씩 건너뛰며 올라갔다. 그 모습을 보고 정심이와 나는 한 달 동안 웃을 양을 다 웃어버렸다. 폭포소리를 능가하는 두 여인의 웃음소리는 이곳이 학살의 현장이란 사실을 알고 온 사람들이 맞는지 의심하게 만들었다.

북촌리 너븐숭이 애기 돌무덤 : 순례객들이 쌓아 놓은 돌단, 그리고 선물들.

 이번 기행의 하이라이트는 4·3 평화공원과 너븐숭이 애기 돌무덤 등, 제주도라는 섬 전체라 해도 과언이 아니라는데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좀 다르다. 시간과 공간을 함께 나눈 ‘우리들’이 최고였음을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학과, 성별, 나이와 무관하게 오로지 “함께 읽기”로 만난 다양한 사람들.

  제주에서의 마지막 밤. 자신이 쓴 부끄러운 글을 낭독하고 박수로 격려해 줬던 시간도 감동이었지만, 뒤풀이 과정이 너무도 뭉클하였다는 사실을 고백한다. 

사춘기 때 부모와의 갈등으로 입을 닫은 이후 말할 때마다 버벅대는 준호의 얘기를 끝까지 들어주고, 몸이 약한 그를 배려해 주며, 특히 그가 노래를 많이 부를 수 있도록 양보하고 환호해 마지않던 젊은 그대들. 문학의 밤이 끝나고 잠자리를 찾아 퇴장했던 나는 결국 가수 임재범의「비상」이란 노래를 부르며 목 메여 하던 그들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나도 그들과 함께 눈시울을 적셨다. 선생님은 왜 그러느냐고 의아해 하기에

  “나도 너희처럼 세상에 나가고 싶어. 날고 싶어. 나의 꿈을 펼치고 싶어. 엄마, 아내, 며느리, 환영받지 못한 조직 속 아웃사이더 이런 역할 말고~~”

  “몇 십 년 동안 온데 간 데 없어진 이현옥을 찾아야 해…”

  나는 아직도 질문한다. 나는 누구인가. 어떻게 살 것인가. 무엇을 할 것인가. 스무 서너 살 때부터 해 온 질문의 해답을 찾지 못해 헤매고 있다.

  이번 기행은 정말 수월했다. 최형석 기사와 정심이가 시키는 대로 따라 하다 보니 노동이 아닌 휴식을 취하고 온 듯하다. 앞으로 젊은 친구들에게 자꾸 일을 맡겨야겠다. ‘꿩 먹고 알 먹고’라는 표현은 이런 때 하는 거다. 이번에도 역시 많은 혜택을 덤으로 가져간 사람은 나 자신임을 밝힌다. 

/ 이현옥(우석대 도서관 사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