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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핍은 나의 힘 - 정지월
Jiworl Seok 편집위원  |  jbpost@hanmae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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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9.02.11  17:3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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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전업주부다.

일주일에 한두번쯤 남편 오피스에 나가 잠깐씩 돕기도, 뒤에서 많은 자질구레한 일들과 때론 큰결정들을 맡아 하긴 하지만 매일 정해진 시간에 출퇴근하지 않으니 굳이 일한다고 할 수가 없다. 

멋지고 폼나는 커리어 워먼을 꿈꾸며 유학길까지 오른 나인데 왜 그럴까 곰곰이 생각해보면, 교육에 투자한 시간과 비용에 비해 한없이 빈약한 나의 직업 이력의 원인은 끈기도 전투력도 부족한 나의 성격탓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가장 큰 이유는 아마도 내가 크게 원하지 않았기 때문인 듯하다.  

 

   
정지월 전북포스트 편집위원

미술학교 재학 시절, 후배 동생이 내게 물었다. " 언니, 십년 후의 언니의 모습을 그려보면 어떤 풍경이 떠올라요?"

"창밖에 눈이 내리고, 난로불이 따듯하게 타오르는 실내에서 나는 뜨개질을, 남편은 책을, 아이는 놀고 있어."  

밖엔 똑같이 눈이 내리고 있지만 조각을 전공하던 후배는 혼자서 열심히 조각을 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얘기했다. 둘 다 눈내리는 배경을 택한 걸 보면 질문한 시기가 겨울이었나 보다. 난 내 상상대로 그때로 부터 십년 후, 책을 읽지 않는 남편만 빼곤 비슷한 모습으로 살고 있었다. 물론 나도 뜨개질따윈 하진 않았다.

후배는 졸업 후 뉴욕으로, 그 후 한국으로 떠났고 소식이 끊겼지만 미혼으로 작품생활을 하고 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우리 엄마는 IMF로 명퇴를 하실 때까지 35년도 넘게 학교에 계셨던 직업 여성이셨다. 아무리 가사를 도와주는 언니와 애 봐주는 할머니가 계셨어도 우리 기억 속의 엄마는 맨날 동동거리시며 부엌과 학교를 오가며 식구들을 돌보느라, 우리와 긴 이야기 한번 나눌 새 없는 바쁜 엄마셨다. 우릴 혼낼 때를 빼곤...  

선생님하시며 자식을 다섯이나 두셨으니 오죽하셨겠나! 그래서 나와 내 동생들은 항상 엄마가 고팠다. 그래서인지 우리집 세 딸은 다 전업주부고, 아들들은 와이프가 집에 있기를 바랐다. 아마도 우리형제들의 무의식속에 유년기 엄마의 부재가 트라우마였나 보다. 

반대로 전업주부인 나를 엄마로 둔 내 두 아이들은 아들도 커리어 워먼을 아내로 원하고, 딸도 자신의 커리어를 중요시한다. 집에만 있는 엄마가 모자라 보였나 보다. 자신들이 얼마나 평화롭고 편안한 인생을 살아왔는지 모르니 하는 소리다.

남편과 아이들은 집에 오자마자 가지가지 잘 차려진 밥상을 받고 세탁기, 다리미 한번 안만지고 살아왔다. 뭐 빠뜨리고 가는 날에도 전화 한 통이면 신속 배달해 주고, 자신들이 가고 싶은 곳, 하고 싶은 방과 후 프로그램에 다 날라다 주는 기동력을 갖춘 잉여인간을 대동한 부러울 것 없는 삶을 살아왔다. 그래 놓고 이젠 전업주부는 'no thanks' 란다. 

난  이들이 나중에 내게 구조 요청을 할 때 쌤통을 외칠 날만 학수고대하고 있다. 이렇듯 사람들은 가지고 있는 것엔 무감각하고 결핍엔 민감하다. 

그래서 오히려 결핍은 삶의 방향성과 원동력의 역할을 한다.

이민자로 어렵게 자란 내 남편에게 있어 경제력은 자유와 안정감의 다른 이름이다. 그는 물질적인 것에 별 관심이 없어 옷도, 차도 한번 사면 기본이 십몇년을 훌쩍 넘긴다. 그러나 그는 내일의 평안을 위해 오늘이 없이 가열차게 일한다.

자신의 아버지와 달리 무능한 남편, 무능한 아버지가 되지 않는 게 그의 삶의 목표다. (한집에 사시는 그 아버지는 이유를 모르시고 쟤는 어머니를 닮아 일 욕심이 많다고 하신다.)

바람둥이 아빠를 둔 딸 친구와 아빠의 부재를 뼈저리게 겪으며 자란 아들의 제일 친한 친구는 좋은 아빠가 되는 것을 인생의 목표로 삼고 있고, 유명화가를 엄마로 둔 내 친구는 딸과 충분한 시간을 보내는 걸 최우선으로 치고 있다. 

이렇듯 사람들은 자신의 결핍을 통해 인생의 목표와 방향을 정하기도 한다. 결핍없는 완벽한 인생이 어디 있으랴...?

 

그러니 살면서 겪는 불편함과 서러움이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니다. 내가 택한 게 아니니 억울하지만 결핍이 분노로 나를 잠식하지 않고 그것들이 나를 나아가게 하는 원동력으로, 내 삶의 보톡스로 작용하게 하는 것은 각자의 몫이다. 

"동쪽으로 휜 나무는 반드시 동쪽으로 쓰러진다" 는 말처럼 내 가슴에 품고 산 그림 하나가 나의 인생의 밑그림이 되기도, 또 완성작이 되기도 하니 말이다. / 정지월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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