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60년대 전주에서 서점을 운영하던 시절의 이정환.

아마 이정환은 지난해에 우리 문단에서 가장 왕성하게 활동한 작가의 한 사람일 것이다. 그가 내놓은 작품집만 하더라도, 지금 검토해 보려는 장편소설 <샛강> 밖에, 이보다 앞서 나온 단편집 <까치방>과 <겨울갈매기>가 있다. 이러한 양으로 헤아려지는 성과 때문만은 아니겠으나, 아무튼 그는 지난해와 올해에 들어 갑자기 우리 문단에서 커다랗게 부각되고 있는 작가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염무웅(문학평론가), 「살아 보려고 발버둥치는 사람들의 생활」(뿌리깊은나무 1977년 2월호)

1970년대 베스트셀러 작가인 전주 출신 소설가 이정환(1930∼1984). 1976년 단편집 『까치방』으로 작가의 입지를 굳히고, 1978년 『창작과 비평』에 장편소설 「샛강」을 연재하면서 인기 작가의 반열에 올랐던 그는 소설가 이문구에 의해 실명(實名) 소설이 쓰일 정도로 문단 안팎의 큰 관심을 받았다. 수감자들과 도시 빈민의 삶을 사회 구조적 시각으로 고발하면서 7편의 장편과 20여 권의 작품집을 남겼지만, 당뇨로 인한 실명과 투병 끝에 타계한 이후 독자들 사이에서 잊혀 갔다.

소설가 이정환을 기억하는 자리가 마련된다. 2018전주독서대전의 사전 행사로 9월 6일(목) 오후 3시 최명희문학관에서 열리는 작고작가세미나 ‘가난도 병마도 글쓰기를 막을 순 없다, 집념의 소설가 이정환’이다.

이날 세미나에서는 소설가 김선경 씨가 ‘소설가 이정환, 죽는 순간까지 나는 소설가였네’를 주제로 소설가의 소설적인 삶을 이야기하고, 전북대 엄숙희 교수가 이정환의 초기소설을 중심으로 ‘실존적 한계 체험과 치유의 서사’를 발표한다. 이정환의 딸이자 시인인 이진 씨는 「고통의 세월은 어디로 흐르는가!」를 주제로 작가 이정환과 아버지 이정환을 소개한다.

특히, 엄 교수는 작가가 자신의 경험인 사형수와 무기수라는 극한의 상황에서 그려낸 이야기들을 꺼내며 “자신의 이야기를 소설로 풀어내면서 자신에게 가해진 불가해한 폭력의 상처를 치유하는 이정환의 초기 소설은 작가 자신의 상처를 치유하는 치유의 서사”라고 소개할 예정이다.

▲ 1970년대 샛강변에서 망중한인 이정환

기획자이자 좌장으로 참여하는 전주대 최기우 겸임교수는 “작가정신이 무엇인가를 묻는 말에 이정환 소설가의 삶과 문학은 통째로 답을 해준다.”면서 “‘책벌레’라고 불리던 전주 성당골목의 어린 시절, 한국전쟁과 학도병, 포로 생활과 탈출, 입대와 탈영병, 사형수와 무기수, 전주 남부시장 덕원서점과 전동의 르네상스서점, 서울 종암동 대영서점, 서울 변두리 빈민, 베스트셀러 작가,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은 실명(失明) 소설가, 구술로 쓴 소설 등 굴곡지게 살았던 작가의 삶을 통해 작가정신이 무엇인지를 경험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한편, 전주시는 매년 전주독서대전에 맞춰 전주 연관 작고 작가 중 한 사람을 선정, 그의 삶과 작품에 대해 연구하고, 그 결과를 나누는 세미나를 진행하며, 전주독서대전 본 행사에서 전시를 통해 작가의 삶과 작품을 소개한다. 문의 063-284-0570

/김미영 기자

• •일시: 2018년 9월 6일(목) 오후 3시(90분)
  •장소: 최명희문학관
  •문의: 063-287-6417(완산도서관) 284-0570(최명희문학관)
  •주최: 전주시
  •주관: 완산도서관 최명희문학관
  •후원: 문화체육관광부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1970년대 문단에서 독특한 위치를 차지했던 소설가 이정환

가난도 병마도 글쓰기를 막을 순 없다, 집념의 소설가 이정환

최기우(극작가, 전주대 겸임교수)

“나는 이정환 시대의 개막의 장을 소홀히 하고는 70년대 문학의 진정한 의미를 파악할 수 없으리라는 것을 서슴없이 예언한다.” ∥이문구, 소설 「이정환, 그는 어떤 사람인가｣(1976)

이정환(1930∼1984)은 금전적으로 가난한 삶을 살았지만, 부친이 전주에서 서점을 경영했고 그 자신도 전주와 서울에서 서점을 경영하면서 산처럼 쌓인 책 속에서 살았다. 전주 역전거리에서 태어난 그는 완주군 초포면과 전주 성당골목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는 자신의 어린 시절을 ‘고서와 신간을 닥치는 대로 읽어대는 책벌레였다’고 밝힌다. 책 읽기를 워낙 좋아해 군대에서도 호주머니에 빽빽하게 책을 넣고 다녔는데, 어느 전투에서 다발총 총알이 책이 든 호주머니를 맞춰 목숨을 구한 일이 있기도 했다.

1959년 남부시장에 덕원서점을 열어 9년 동안 운영하다 전동으로 옮겨 1년 동안 르네상스서점을 경영하면서도 줄곧 책 읽기와 소설 습작에 몰두한다. 1970년 서울로 옮긴 그는 신동아 논픽션 공모에 당선돼 그 상금으로 가판서점을 냈고, 4년 뒤 종암동에 대영서점을 열면서 가업을 재건한다. 『고서점의 문화사』를 펼치면 헌책방 3대를 이어간 이정환이 다시 살아 있다.

그의 삶은 순탄치 못했다. 그의 20대는 1년의 군 생활과 7년의 영어(囹圄) 생활로 가탈이 많았다. 그가 전주농업학교에 다닐 때 터진 한국전쟁은 그의 삶을 송두리째 앗아갔다. 학도병으로 참가해 포로가 되었으나 탈출했고, 그 후 육군에 입대했다가 휴가 중 모친의 숙환으로 귀대날짜를 넘기게 됐다. 결국 ‘탈영병’으로 재판을 받았다. 사형을 선고받았지만, 몇 차례의 감형으로 7년 만에 석방됐다.

1976년 단편집 『까치방』으로 작가로의 입지를 확고하게 굳힌 그는 『창작과 비평』에 장편소설 「샛강」을 연재하면서 인기 작가의 반열에 올랐다. 그러나 10년 넘게 고생하던 병마는 결국 그의 눈을 뺏고 만다. 그래도 창작 열기는 여전해 자를 대고 써내는 원고를 아내가 해독했고, 손가락이 부어 볼펜을 제대로 쥘 수 없을 때는 구술로 소설을 썼다. 소설은 곧 그의 인생이었기 때문이다. 이정환은 작고할 때까지 7편의 장편과 67편의 단편으로 20여 권의 작품집을 남겼다. 수인생활과 빈곤 등 이정환은 굴곡 많은 삶을 살았지만, 이때의 삶이 훗날 소설가로 성공할 수 있었던 직접적인 바탕이 되었다.